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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런 날이 온다.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가던 길을 그냥 가기에는 왠지 억욱한 순간.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그런 날"
경향신문에실린 "[세계의 컬드여행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 800km도보 순례" 의 한 구절이다.
작년 어느날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저 한 구절에 나는 갑자기 '산티아고 데 카미노'에 빠져들었다. 저녁 내내 인터넷을 뒤지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의 블로그 순례기를 쫒아 산티아고 길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이렇게 살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는 순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순례기를 서핑하는 일을 포기하면서 하나의 다짐을 하고 한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하나의 다짐은 2010년 가을 걷이가 끝나면 나 역시 먼저 떠난 순례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나서겠다는 것이었고, 한 권의 책은 바로 그 길의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만날 때마다 내가 산티아고 이야기를 해대는 통에 도무지 궁금해서 베길수가 없었던 친구가 사서 읽고 나에게 선물한 책이다.
블로그의 짧은 순례기를 부담없이 읽다가 갑자기 한권의 책으로 다가온 산티아고 순례기가 사실은 좀 부담되었다. 미지의 길을 나서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이상의 것을 취한다는 것은 그 길을 떠나느 설레임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금방 사라지고 서서히 책 속으러 빨려 들어갔고, 필자 최미선의 꽁무니를 쫒아 구멍난 운동화를 싣고 카미노를 쫄레쫄레 따라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점점 더 구체화되는 스페인의 들녘, 마을들 그리고 순례객들의 표정은 나의 마음속에 큰 흔적을 남겼다. 눈을 감으면 파스타의 향기가 코끝에 느껴졌고, 잠이 들면 생장 피드포르를 지나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덮으며 다시금 '길'과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사실 '여행'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여행은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필자가 전하는 산티아고 보다 그 글을 통해 받아들이는 독자의 산티아고는 더 절실함을 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은 생각한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는 의문을 10대에 가져 내일모레 오십이 다 된 지금까지 짊어 지고 온 인생길은 사실 좀 팍팍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11월이면 산티아고 길을 떠나 2011년 신년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지나 '피니스테레'에서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멀리 석양에 젖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나의 짐들을 내려 놓고 싶다. 짐을 가득 담은 배낭보다 더 무거운 '왜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는 강박을 낡은 운동화와 함께 불사르고 그 연기 냄새만 코끝에 조금 남겨서 지금 이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읽는 책이 아니라, 같이 떠나는 책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돈과 명예, 지위를 지키는 사람이 줄어들고 이 모든 것을 다 가볍게 여기고 같이 길을 떠나는 도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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