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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농사 14년째로 접어 들지만,
정미소는 오다가다 보고 어쩌다 남따라 구경만 갔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직접 이용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미소는 그야말로 쌀을 찧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고
쌀농사를 짓지 않는 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든 것이 작년에 처음으로 수수와 기장, 그리고 조 농사를 짓게 되면서 
정미소와의 생각지도 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남들 다 수확 끝낸 초겨울, 어렵사리 수수와 기장, 조를 수확 해서
거의 한달 가량을 집의 비닐 하우스에 늘어 놓았습니다.
처음으로 지은 잡곡 농사라서 사실 어떻게 수확을 해서 탈곡을 하고,
그리고 정미를 하는지 안무런 감도 없이 오직 이웃어른께 여쭙고 
어림짐작으로 그 모든 과정을 해치워야 했습니다.
다행이 수확한 양이 많지 않아 3~4일을 쭈구려 앉아
일일이 알곡 송이를 손으로 비벼 탈곡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정미를 해야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용 소형 정미기가 있는 동네 형님들 신세를 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계는 조는 되는데 수수는 안되고,
또 어떤 기계는 기장이 잘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저런 기계에 따라 용도가 달라
3가지 곡식을 빻을려고 하면 이집 저집 들고 다녀야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웃 형님 한분께서 소개해 주신 안동에 있는 정미소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잡곡이라도, 그리고 적은 양이라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빻아주는 정미소라는 것이었습니다.


안동 근처에 볼인 보려 가는 길에 소개받은 정미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종류는 3가지나 되는데 양은 얼마되지 않아 못빻아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해서라도 빻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
주인 아주머니가 하도 싸늘하게 말씀하시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나왔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안동의 또 다른 정미소를 찾아 갔습니다만
이번에는 잡곡을 정미하는 기계 자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허탕을 치고, 몇일뒤 봉화읍 나가는 길에 봉화의 한 정미소를 들러 봤습니다.
역시 잡곡을 빻는 기계가 없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잡곡이 건강 식품으로 인기를 회복하고 값도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다른 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이 쉬운만치 가격이 워낙 형편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농사 조건이 열악한 두메산골에서나 조금 지었지 
잡곡 농사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되었고,
정미소에서도 잡곡 정미를 위한 기계를 갖추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가에서는 가정용 정미기를 갖추어 집에서 먹고 자식들 나누어 줄
쌀이나 잡곡을 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일을 트럭에 싣고 다니던 잡곡은 영 엉뚱한 곳에서 정미를 하게 되었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바로  저가 살고 있는 명호면 소재지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국도변에
정미소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없는 잡곡용 정미기가 당연히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에 찾아가 봤더니 잡곡용 정미 기계도 있을뿐아니라
소량을 알곡도 혼쾌히 정미를 해 주시겠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다시 정미소를 찾아 작업을 끝낸 수수와 조를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장은 탈피가 잘 안되어 정미소에 딸린 따뜻한 방바닥에
늘어 놓으시고는 설지나서 정미를 해 놓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집 수수랑, 기장이랑, 조를 정미해 주신
명호면 도천리에 있는 명호정미소 박종석 사장님께 감사드리구요.
올해는 본격적으로 잡곡 농사를 지어 좀 많은 양을 들고
다시 정미부탁드리려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 이 포스트에 나오는 정미소 풍경 사진은 모두 명호 정미소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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