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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의 여행서적들이 생겼다. 만만찮은 책값때문에 구입을 망설여왔던 걷기길 관련 여행서적들을 공짜로 얻어다가 책상위에 쌓아놓았다. 책무더기를 바라 보니 마음 든든한게 올해 겨울나기는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았다. 망설임없이 첫 책으로 서명숙의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을 집어 들었다. 재작년에 한번 그리고 작년에 한번 다녀온 제주 올레길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어서이기도 했고, 요즘 내가 맡아 하고 있는 일이 [외씨버선길] 봉화구간의 스토리 자원조사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제주 올레길은 단지 걷기길의 성공적인 개발사례만이 아니다. 올레길은 '길'을 떠나서도  단연 최고의 '지역 개발' 분야의 성공사례이다. 지역 개발 현장은 항상 "가치의 실현과 주민의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에 대한 욕구"가 충돌하는 현장이기도하다. 그런데 어떻게 필자 서명숙은 우리 사회를 온통 지배하고 있는 스스로 이름 붙인 '공구리주의'에 맞서 올곧게 생태적 가치, 원시적 공동체성을 지켜내면서도 '올레길'을 통해 지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적으로도 풍성한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 경이롭기만하다. 나의 올레길에 대한, 올레길을 일구어낸 필자에 대한 놀라움과 존경의 마음으로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 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은 서명숙 자신이 기록한 올레길의 역사이자 올레주의의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걷기길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시된 실무지침서이다. 이책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난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 작당을 하고 어떻게 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봉착한 난관들을 헤쳐나갔는지 읽어 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에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길에 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필자 개인의 삶의 과정 속에서 얽힌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한 에세이 인지 혼동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은 올레길이 구상되고 현실화 되는 과정 맡바닥에 놓여 있는 가장 중심적인 토대가 바로 사람에 대한 그녀의 사랑임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서귀포 시장 한 구퉁이에서 [서명숙상회]를 꾸려왔던 어머니, 그녀의 든든한 동반자인 두 분의 남동생, 그리고 대포동의 네 여자, 그리고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고 힘이 되어 주었던 기업가들의 이야기들.  그러나 무엇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름없는 올레꾼들의 가슴저미는 구구절절한 삶의 이야기들이 나닐까 한다.  병든 육체와 상처입은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올레길을 걸으며 병을 치유하고 생명의 건강성을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한쪽 구석이 따뜻해져옮을 느낀다. 

올레길은 경쟁만능주의와 속도전에 지쳐 병들어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원시성을 회복케하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그녀의 애틋한 인간애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올레길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무엇보다 그녀 자신을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한 구도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야심가의 욕망의 실현과정과 또 한 연약한 인간의 구도과정 사이에서 그녀의 올레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올레길은 '옳음과 현실적 욕망'을 통일시킨 건강한 지역개발의 사례이듯 그녀에게 이 길은 자아실현과 구도의 과정이 통일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 서명숙은 올레길의 제안자이자 기획자이고, 사람을  모아서 일을 도모하는 조직가이자, 구상을 실무적으로 처리해 현실화시켜내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온갖 모습으로 이 책의 갈피갈피마다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그 모든 아이텐티티를 떠나 그녀는 그냥 "제주의 여자"라고 부르고 싶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거센 파도를 맞서 삶을 일구고 지켜내온 제주의 여자는 모두 '설문대 할망'이다.  설문대할망같은 파워와 카리스마을 가지고 제주를 깊이 사랑했기에 '올레길'이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첫번째 올레길에서는 그저 풍광에 넋을 잃고 길이 좋아, 마냥 바닷바람에 취해 아무 생각없이 걸을 수 있었다. 두번째의 올레길은 봉화군등 4개 시군이 함께 만들려고 하는 [외씨버선길]을 위한 워크삽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이 때도 나는 그냥 한도  끝도 없이 올레길을 걷고싶었지만 [워크삽] 일정때문에 길걷기 욕구를 제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았지만 다행히 처음으로 올레길을 만들어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단법인 올레의 일꾼인 안은주선생의 강의를 통해 감히 [올레주의]라고 이름 붙혀도 좋을 올레길만의 정신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올레길을 필자 서명숙을 통해 더욱 깊이 알게 해준 이 책을 만나게 된 인연이 고맙다.

'올레길'은 걷기길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만이 아니다. 올레길은 반토목주의에 입각한 지역개발사업의 전형을 제시한다. 나는 그것을 '올레주의'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책을 덮으며 외친다.

[올레주의]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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