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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들른 봉화장은

연두빛 머금은 봄나물 향기가 넘쳐나고

막 농번기를 끝낸 산골할머니의 여유로운 발길이 모여듭니다.

함지박 가득 미나리며, 철늦은 두릅이며,막 캐온 도라지가 넘쳐나고

멀리 남쪽지방에서 올라온 햇마늘이며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풋고추가 작은 소쿠리에 이쁘게 담겨

산골할머니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봉화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간

산골짜기 끝 어느 마을에서

평생을 호미질로 산전을 일궈 자식 먹이고 가르쳤을

등굽은 할머니께서도

봄산 가득한 뻐꾸기 소리에 가슴 울렁이고

갑자기 세상사 궁금한게 늘어나

굽은 지팡이 딛고 산굽이 걸어,

한참을 기다린 버스를 타고 봉화장엘 나왔습니다.


할머니 살아 생전 인연들이 갈수록 줄고,

이제 귀도 눈도 어두워, 기억마저도 가물거리지만

그래도 남은 기억의 한 자락을 움켜지고

먼 친구들의 안부를 나누고,

이제 인적이 사라지고 녹음방초만 우거진

친정마을 소식을 더듬어 봅니다.

     

한번씩 들러는 봉화장에서

나는 눈을 씻고 마음을 씻고

다시금 사람사는 맛과 멋을 되찾는 의식을 치룹니다.


늦은 봄, 봉화장에서 여러분을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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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때문에 겨우내 철시되었던 봉화장이 얼마 전부터 문을 열었습니다. 오랜만에 열리는 장터에서 사람구경도 하고 봄을 알리는 산나물도 사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미루어 오다가 저번 장날에나 시장 구경을 갈 수 있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찾은 봉화장은 아직 구제역의 여파 때문인지 썰렁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봄은 문턱까지 왔다지만 장을 쓸고 지나는 바람은 아직 차갑고, 괭한 장터에 사람발길조차 드뭅니다. 장을 보러 온 사람보다 장에 물건을 팔러 온 할머니들이 더 많은 봉화장터엔 지난 가을 거두어 두었던 말린 무청이며 겨우내 잘 간수해온 사과랑 고구마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건을 펼쳐놓은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은 돈 욕심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어 보입니다.

그래도 장터를 쓸고 지나는 찬바람 사이에 봄 내음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부지런한 할머니의 손길에 첫 선을 보인 한소쿠리 씩의 냉이와 달래 때문입니다. 장터를 거닐며 새삼 깨닫게 됩니다. 봄은 결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봄은 그렇게 부지런한 할머니의 손길 덕분에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언 땅에 호미질을 하시며 냉이를 캐는 할머니의 손길이 언 땅도 녹이고, 천지신명의 언 마음도 녹일 것입니다. 그렇게 강이 풀리고 햇살이 풀려 마을 안길에 사람의 발길이 늘고, 마을을 가로 지르는 개울에 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얼음이 녹아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잠든 나무를 깨우고, 깊은 잠에서 깬 개구리가 마실을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실 나온 개구리 소리에 산수유 꽃봉우리가 깨어나고 봄꽃 향기에 나비들이 날아들면 세상천지에 봄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봄을 만들어 가는 할머니의 손을 다시 봅니다. 달래를 다듬는 할머니의 거친 손이 가슴 아프지만, 그 거친 손으로 생애 내내 이루었을 많을 것들을 생각합니다. 그 거룩한 손으로 이룩한 창조물들은 참으로 크고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친 할머니의 손은 어떤 예술가의 손보다도 더 거룩한 손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섭리는 할머니의 위대한 손이 만들어 낸 창조물들을 천시합니다. 할머니가 지고 오신 광주리에 담긴 농산물을 다 팔아봤자 돈으로는 정말 몇 푼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지고 온 광주리에 담긴 농산물들이 다 팔려 좀 더 가벼운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멀린 도시에서 자라고 있을 손주를 생각하며, 차창 넘어 봄이 오는 먼 산을 보시는 할머니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져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또 한번 주어진 봄의 의미를 생각하고 충만한 하루하루의 삶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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