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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노발대발’하며 하나가 되었다!

[2013 자원봉사자 봉하캠프 회원후기] “내가 좋아서”라는, 놀라운 힘 확인한 1박2일

회원 ‘송화’님

 

 

노란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하나,
태양 볕을 홀로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큰 바위 둘,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 셋,
수많은 장면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 곳에 오롯이 머물고 있었다.

지난 주말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1박2일 캠프가 열렸다. 실은 나는 자원봉사자에게 마련된 캠프인지 모르고 신청했다가 운 좋게 얻어 탄 외부인이었다. 그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였을 뿐 제대로 자원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 타인 아닌 타인으로 캠프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이번 여행은 봉하마을에 머물게 된 것만으로도 참으로 고마운 여행이었다.

8월 10일 토요일 아침.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봉하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막상 버스가 출발하고 나니 기대감보다 큰 초면의 어색함이 엄습해왔다. 어리둥절하게 서서 사람들이 서로 인사 나누는 모습을 구경하고, 그들이 흥겹게 어우러지는 것을 그저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다. ‘혼자라도 봉하마을을 실컷 즐기다가 가야지’하던 중에 불행 중 다행으로 같이 점심을 먹자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고마운 언니 둘. 통성명을 하고 갖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색함 속에 작은 물꼬가 트이자 친해지는 건 순간이었다.

대학 3학년 영화학도가 만난 ‘내마음속 대통령’

마침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먼저 오신 자원봉사자 여러분이 우리를 반겼다. 언니 오빠들도 있고, 삼촌과 이모뻘 되는 분들도 많다. 직업과 사는 곳도 참 다양했다. 대구에서 두 딸과 함께 열심히 노무현 대통령님을 응원하고 계신다는 분, 남자친구와 지지하는 당이 달라 고민이시라는 분, 부모님과 정치성향이 달라 갈등을 겪고 계신다는 분, 주변사람들 몰래 오셨다는 분, 매주 한 번씩은 꼭 봉하에 와야 마음이 놓인다는 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뒤부터 습관처럼 봉하마을을 찾는다는 분, 온라인 활동만 하다가 처음 나오셨다는 분…, 다들 처음 뵌 분들이었지만 모두가 참 좋은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나같이 유쾌하고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소중한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1박2일 내내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다녔다. 처음엔 내 스스로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의식을 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잘 다가갈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싫어하시거나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꺼림칙해 하실 수도 있다는 우려감, 촬영을 하면서도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촬영을 아예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다. ‘저기요 학생, 촬영 말인 데요…’하는 부름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오히려 사람들이 먼저 호기심 있게 다가와주었고, 응원을 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도와주겠다는 분도 계셔서 나는 점점 더 대범해질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방궁(?)에 들다

대통령님 묘역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예를 표하는 모습, 영상 40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대통령 길을 오르는 모습, 봉화산에 올라 평화롭고 아늑한 대지 본연의 풍경도 감사한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앞사람과 뒷사람이 하는 농담과 산속 가득 울려 퍼지는 유쾌한 웃음소리, 방문하는 곳마다 대통령님의 관한 갖가지 숨은 일화가 영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대통령의 길을 걷기 전 노무현 대통령님의 사저를 직접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더위에 지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권양숙 여사님께서 시원한 차와 수박을 내어주셨다. 환한 웃음, 따스한 그 마음은 카메라에 담지 않기로 했다. 온전히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은 마음이었다.

사저는 목재로 벽이 둘러싸여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부엌과 방이 분리된, 조금 불편하지만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잘 정돈된 마당엔 꽃과 들풀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지붕이 낮은 게 눈에 띄었는데,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다고 한다. 대통령님이 업무를 보고 책을 읽으셨던 서재, 사자바위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의 사랑방, 소담하지만 기품이 있는 정원. 곳곳에서 소탈하고 진실된 마음이 느껴졌다. 집 안팎의 풍경만 보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떤 이가 살고 있는지 절로 느껴질 만했다. 아름다운 집이었다.

자원봉사자 60여 명이 한목소리로 ‘노발대발’했던 밤

그리고 두 번째 날, 아니 봉하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명계남 선생님의 명강연, 김정호 대표와 김경수 본부장과의 살가운 대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었던 ‘별밤 운동회’ 그리고 뒤풀이까지… 밤 깊은지 모르고 ‘노발대발’(무현재단이 전해야 한민국이 전한다)를 외치며 보낸 탓에 표정들이 다들 가관(?)이다. 눈곱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채 부어있는 얼굴들이 하나 둘 마당으로 모였다. 마치 오래 함께 산 한식구들처럼 격의 없는 모습. 우리들 사이의 작은 벽은 밤사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 길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싱그럽고 향기 좋은 풀 냄새와 흙내음이 아침잠을 깨웠다. 마음이 정화되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달리는 길이 노무현 대통령님도 자주 산책하며 오갔던 길이라고 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화포천 자전거 산책을 마치고 방앗간에 들러 김정호 대표에게 친환경 농사와 봉하쌀의 이모저모를 배워 듣는데 특별한 손님이 우리를 찾아주셨다. 어제 권양숙 여사님에 이은 두 번째 깜짝손님의 등장이다. 문재인 의원님이셨다. 최근 좋지 않은 일들이 이어져서 그런지 조금 수척해진 모습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강한 의지와 힘 그리고 희망이 실려 있었다. 어렵지만 함께 이겨나가자는 말에 용기가 솟았다.

꿈같은 1박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캠코더의 촬영 표시등에도 이내 불이 꺼졌다. 솔직히 더운 날씨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고, 등산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은 주저했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드러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가는 봉하버스에 앉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뭔가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못 다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봉하로 간 까닭은?

버스 안에서 대통령님의 애창곡 ‘작은 연인들’을 합창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내 나이보다 오래된 노래라 가사도 음정도 잘 모르지만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가슴 뭉클했다.

이제는 좀 더 속내를 터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캠프에 참여 신청을 한 건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다른 마음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내 욕심은 봉하마을을 향해 움직이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그 사람들을 봉하로 모이게 하는 ‘그 어떤 것’을 카메라에 담아가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지. 그러나 아직 잘 모르겠다. 1박2일 동안 많은 자원봉사자 분들이 나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분명한 대답을 주진 않았다. 대신에 묘하게 자꾸 떠오르는 대답이 하나 있다. “내가 좋아서.”

많은 분들이 같은 말을 했다. 내게는 복잡한 퍼즐 같은 그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본다. 내가 좋아서? 그냥 좋으니까 봉하에 온다? 봉하에 무엇이 있기에 그리 좋을까. 퍼즐을 잘못 맞췄는지 애초에 맞출 필요가 없던 것인지, 나 역시 ‘내가 좋아서’라는 말밖에는 별다른 게 생각나지 않는다.

사람들 속엔 씨앗이 있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른 씨앗. 우리는 느리지만, 또 생각보다는 빨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닮아가면서 말이다. 다음번 봉하행에서는 어떤 느낌이 들까? 내 카메라에 담길 풍경도 지금과도 또 다를 테지. 아름다운 세상, 봉하와의 재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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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환경 농업 마을 하면 가장 먼저 문당리가 떠오른다. 나아가 문당리는 환경농업 말고도 여러가지 정부 지원 마을 사업을 시도하고 지역 공동체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가장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화천의 토고미마을, 이천의 부래미 마을, 그리고 단양의 한드미 마을까지 성공적으로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다양한 사업을 수행해 온 마을 을 보면 어느 마을이나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문당리도 마찬가지다.  한국 환경 농업의 메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바로 주형로선생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오늘의 [문당환경농업마을]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책 [작은 농부의 100년계획서]는 희망제작소에서 기획된'희망을 여는 사람들' 시리즈 중 9번째 책이다. 희망제작소는 주로 우리 사회의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지역사회나 농업, 그리고 퇴직자 등에 주목하고 그들을 통해 우리사회의 대안적 희망을 모색해 왔다. 그와같은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희망을 여는 사람들' 시리즈는 그동안  옥천신문을 만든 오한흥님, 장성 한마음공동체를 만든 남상도님, 바보군수라 통하는 완주군수 임정엽님 등을 취재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각각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 왔다.



이 책은 어떻게 인간 주형로가 농부가 되었는지, 그것도 환경농업을 선도하는 환경농업운동가로 변신하여 문당리를 중심으로한 지역사회일원을 환경농업단지로 만들고 전국적으로 환경 생태농업의 중요성을 확산시키는데 몰두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 준다. 또한 그가 매 순간의 선택의 귀로에서 어떻게 옳은 길을 선택했고, 그렇게 선택한 길을 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알아가는 만치 작은 농부 주형로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고, 한명의 훌융한 농촌운동가의 삶에는 또 다른 수많은 동반자가 같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와 함께한 동반자중에는 누구보다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있을 것이고, 또한 그의 뜻을 함께한 이웃 농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작은 농부 주형로를 바른 삶의 길로 인도하고, 좌절의 순간 일으켜세운 스승 홍순명을 빼고는 오늘의 주형로, 오늘의 문당리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스승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는 스승 홍순명과 제자 주형로의 관계는 스승도 드물고 제자다운 제자 역시 귀한 세태에서 큰 귀감이 된다. 거의 극적이다시피한 오리농법의 도입 계기가 바로 그의 스승 홍순명선생에 의해 주어졌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그와같은 계기로 도입된 오리농법이 고 노무현대통령에 의해 봉하마을에 도입되는 과정 역시 감동적이다. 의인은 의인을 알아본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모두가 버리다시피한 농업/농촌에서 새 희망을 찾아 먼길을 걸어온 주형로의 발자취를 정리한 이책에서 주형로에 의해 오리농법이 우리나라에 보급되는 데 있어서 스승 홍순명의 극적인 역할 못지 않게 감동적인 것은 바로 [문당리 100년 계획서]다. 이 역시 일본의 농촌에서 벤치마킹해 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마을의 미래를 구체화한 '꿈'을 담고 정리하는 노력이 향후 마을 공동체의 이상을 구현하는 데 있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챈 주형로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래가 없다는 농촌에서 한권의 보고서로 구체화된 마을의 꿈은 지친 농민에게 희망을 주고, 지표를 상실한 마을 공동체에 구체적인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동력을 일으켜세우는 지대한 역할을 해내었을 것이다.

농촌마을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온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아직 마을 사업의  방향성마저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독자의 한 사람에게 다가온 작은 농부 주형로의 삶이 시사하는 바가 참 많지만 우선은 마을사업의 과정에서 받는 고통 그리고 즐거움은 이루다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과정이 글의 행간을 넘어 뼈져리게 느껴져 오는 것은 같은 농업인으로서 가지는 동병상린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주형로님은 유별난 구석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결기와 고집으로만 똘똘뭉친 그런 사람은 아닌것 같다. 사실 옹고집으로 똘똘 뭉친 그런 사람이 사람사이에 통로를 만들고, 의기를 투합시키고, 더불어 마을 공동체를 일구어나가는 일은 한다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형로선생은 희망제작소의 주목을 받기 전부터 유명인사다. 그동안 수많은 상을 타고, 언론에 노출되어왔고, 무엇보다 같은 입장의 농민들에게는 하나의 멘토로 자리잡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때 주형로선생에게는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희망을 여는 사람들'에 선정된 것은 다른 모든 보상을 합치고도 남을 경사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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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든 보수든 고노무현 대통령을 철저히 무시하고 저주했고,
그가 죽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지금까지 그를 격하하고 능욕하는데
침을 튀기는 자들이 있다. 
사실 조중동이나 그 추종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여전히 진보세력 중 일부는 한미FTA와 이라크파병, 대연정제안 등의 사례를 들며
삼성과 노무현의 유착, 정치적 무이념, 나아가 진보를 가장한 보수의 간첩 운운 하며
그를 능욕하기에 망설임이 없다.
충분히 근거있는 입장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니깐
그르거니 하고 일단 이들은 도외시 하자.
이들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참 많은 사람들이 고 노무현대통령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에 기대어서나마 나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새로운 사회,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역사적 징조를 보고싶기 때문이다.
[사람사는 세상]은 보편적 인권이 존중되고,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복지제도가 완비된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정의가 통하는 그런 세상이다.
고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인간 개개인의 삶이 보호되고 존중되며,
보다 덜 경쟁적인 사회적 풍토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진실과 정의가, 그리고 옳은 사람이 존중받는
[사람사는 세상]을 예견케하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섰던 정치적 포지션을 문제삼으며
진보의 적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를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재임기간동아 실행한 치적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람됨의 매력에 끌려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궁극적으로 정치인으로 살았던 한 인간에 대한 판단은
그의 정치적 실천과 사람됨을 통일적으로 바라다 보는게 옳다고 보지만
사실 유독 노무현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정서적 판단이 앞선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깊이에서 치미는 울컥함이 있다.
그것은 그가 비겁한 정치검찰의 공작의 희생양이되어서가 아니라
그의 재임기간 내내, 아니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되던 그 순간에 조차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해, 
굴종의 삶을 강요했던 부정의한 역사에 대한 한국민중의 승리의 감격을 나누었고
그리고 끈질긴 지배세력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에 치를 떨고 맞서야했기 때문이다. 
권모술수와 음모가 항상 승리하는 세상,
돈과 권력이 정의를 짓누르고, 거짓과 위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 노무현의 반역의 삶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바라는
민중의 염원을 현실에 구현했기 때문이고
그 지난한 도정에 같이 서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독선과 비열한 음모, 부정의와 거짓이 판치는
MB정권의 치하에서 3번째 5월을 맞았다.  
5월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자기 삶의 모범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의 다하지 못한 정치적 역정을 계속하기로 다짐하고 실천하는 달이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진솔함,
특정 정책적 결정에 대해 철저히 반대하면서조차
그 진정성에 끌려 납득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 노무현이
뼈에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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