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4일 비나리마을은 첫 비나리초롱축제를 가졌다.
지역 사회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70년대 초까지 이어져 오던 초롱계는
큰일을 치루는 이웃을 위해 마을 주민 모두가 등불을 부조하던 아름다운 전래풍습이었다.
전기도 전기지만 마을 주민의 수가 줄고 농촌이 피폐해 지면서
자연스레 초롱계는 규모가 줄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부조의 전통을 다시금 되살리기 위해
변화된 여건에 맞춰 이웃 7개 리가 함께하는 마을 축제로 승화시키기로 했다.
그 결과 첫 비나리초롱축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사실 전국적으로 축제가 사태가 나면서 예산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질타받고
하나둘 중단하고 있는 실정에 새로운 마을 축제를 하나더 한다는 것은 조금은 무모해 보였다.
대부분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을 통한 마을 축제를 보면
지속가능한 마을 축제보다는 일회성 마을 잔치로 기획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축제 아이템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을 뿐아니라
2~3년간 년 100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아 마을축제를 자리잡게 한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나리마을은 초롱계라는 아름다운 전래 문화에 힘입어
주민 화합의 장이자 나아가
도농교류의 매개가 될 수 있는 비나리 초롱축제를 열게되었다.
이번 축제는 첫회인 만치 7개리의 주민 화합잔치에 초점을 맞춰 기획되었다.
우선 주민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주민 자신이 즐기는 축제가 된 뒤
그뒤 도시민의 방문은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 자신이 즐기지 못하는 축제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 축제라고도 할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마을 경로 잔치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그간에 마을 주민 스스로 참여해온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성과를
총정리하는 그런 자리로 만들었다.
주민 노래자랑과 풍물공연, 먹거리 장터와 등공예 작품 전시,
청량산 풍경사진전과 주민의 생활이 담긴 사진을 모아 연 마을 옛사진전
그리고 호응은 낮았지만 마을정보센타를 영화관으로 만들어
흘러간 60년대의 고전 영화를 보여주는 '마을극장'을 운영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지만
원주 행복 한의원의 재능기부를 받아
마을회관을 [마을한약방]으로 꾸며 주민을 위한 침술봉사 등을 진행했던 것은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하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낮은 경로잔치 분위기로 채웠지만 밤은 젊은 취향의 분위기로 전환했다.
위대권 강미영 가수의 도움으로 포크가 흐르는 밤의 정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이번 초롱축제에 시도한 것 중에 가장 특이한 것은
마을화폐의 제작과 도입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중에 마을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면서 마을 방문자에게
일정한 입장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게 장기적인 목표이기도 하고
또 마을이 이런저런 시설의 이용이나 체험 농산물 구입을 유도하기 위해
마을화폐를 나름대로 만들어 보았다.
사실 마을 방문객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할 지도 모르고
특히 마을 주민들이 잔칫집에서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상황에
불편해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많이 제기했지만
시행결과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엽전을 사용하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고,
소수의 방문자지만 엽전을 바꾸어 음식을 사 드시도록 유도하는데
일정한 효과가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사후적이긴 하지만 비나리마을 화폐가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문의를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50만원어치 정도 판매까지 하게되었다.
많은 가능성을 확인하긴 했지만 첫 축제가 갖는 한계도 많이 노출되었다.
먼저 주민의 참여가 생각만치 충분하지 못했다.
적어도 마을축제에는 7개리 주민이 모두 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지만
어림짐작으로 약 50%정도의 주민이 축제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사전 홍보 부족 등의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계절적으로 축제 시기를 잘못잡은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농사가 완전히 끝나는 철에 맞춰 주민 모두의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던 의도와는 달리
농사는 끝났지만 김장철이 바로 걸려 많은 주민이 이날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요즘 생활패턴이 농촌마저 농한기 농번기 구별없이
일년 내도록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극히 바쁜 농사철 일부를 제외하곤 축제날짜가 언제라도 상관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2회 축제는 비나리가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나 수확기 직후
늦가을쯤 추워지기 전에 잡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이번축제는 애초에 계획잡았던
'청량산비나리권역 비나리마을학교 개관식'을 겸해 열기로 했다가
대통령선거로 인해 관계 기관 기관장들이 참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연기냐 축소냐를 갖고 어물쩡거리다보니
늦게 축제를 열기로 결정하면서 사전 준비가 소홀하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마을극장 장문을 가릴 차광 커튼을 달 봉이
축제 당일날 도착해서 설치도 못한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치밀하게 챙기지 못한 어설픈 모습은
첫 마을 축제라고는 하지만 지나칠 정도였다.
진행 참여자들의 역할분담도 매끄럽지 못했고,
그 연장선에서 방문자에 대한 안내도 소홀했다.
더 중요하게는 축제 준비과정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마을자원을 충분히 동원하질 못했다.
다 예산상의 문제기도 하지만
좀더 성의를 가지고 참여를 독려하는 노력을 기울렸다면
훨씬 더 풍부한 축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마을 축제는 집중적인 준비기간이 따로 필요하긴 하겠지만
연중 마을축제를 염두에 두고 꾸준히 준비하는 것이 꼭 필요해 보인다..
축제의 지속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는 사실 예산상의 문제에 대한 검토도 필요해 보인다.
지원 예산 1,000만원에 청량산비나리마을 자체 수익금을 통한 예산
200만원 정도가 이번 축제에 투입된 예산의 전부다.
사실 지원 예산 1,000만원이라고는 하지만
소프트업체를 통해 집행되다보니 마을에서 받은
실제 적인 도움은 약 600만원 정도라고 보면 될것이다.
수익은 물자 찬조와 조금의 찬조금을 받은 것이 거의 전부다.
문제는 지원예산 1,000만원이 끈겼을 때 조차
축제를 이끌어가기 위한 재정 대책을 어떻게 만들것인가 인데
그래서 2회 초롱축제부터는 마을주민화합잔치 성격과 더불어
도시민 유치 프로그램을 보다 강화해
수익성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뭏튼 오래전에 착상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마냥 미루어져오던 초롱축제를
이번에 불완전한 상태에서나마 개최할 수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첫 마을축제가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비나리초롱축제를 마을축제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잔치상만 받는 마을잔치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축제가 되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사실 마을 축제의 성격상 축제의 내용보다는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가 더 문제가 될것인데
물론 그 존속가능성이 내용에 의해 규정받긴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주민의 참여에 달렸다고 본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나리초롱축제는 이제 시작이다.
10년뒤 20년 뒤에도 비나리마을에서 초롱축제가 열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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