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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좀솜에서 출발하여 Syang이라는 마을을 지나 마르파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차이로 숲길을 따라 투구체에 도착하여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투구체를 출발하여 코켄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칼로파니 지나 가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침 일찍부터 좀솜공항에는 비행기가 도착하고 이어서 이륙을 준비했다.  공항과 붙어 있는 숙소다 보니 비행기 소음이 장난이 아니었다. 숙소 옥상에 나가 가까이서 프로펠라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장면을 구경했다. 포카라와 좀솜을 잇는 정기항공노선이지만 좁은 계곡을 오르내리는 항로가 위험하다보니 사고도 잦은 구간이다. 쏘롱라를 넘은 대부분의 트레커는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비행기로 포카라로 빠져버린다. 우리는 가능한한 포카라 가장 가까이 까지 고집스럽게  걸음을 계속하기로 했다. 다울라기리 쪽으로 올라 포카라로 향하는 비행기가 사라져 간 깔리깐다끼 강을 따라 우리도 길을 나섰다. 

 

 

 

좀솜을 벗어나자마자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듯 거친 지형의 계곡 합류점을 건넜다. 그리고 바로 깔리깐다기를 벗어나 오른쪽 가파른 언덕길을 통해 Syang으로 향했다. Syang은 전날 들렀던 티니가온과는 다른 또 다른 멋이 있는 마을이었다. 골목은 정갈했고 마을은 훨씬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떠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머물고 살아가고 자자손손 이어갈 마을로 사람의 훈기가 느껴졌다.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 해바라기를 하고 마을의 느낌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평온한 마음으로 마을을 걸었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한 네팔리 아가씨가 학교앞에서 등교하던 아이들과 과자를 난주어 주면서 놀고 있었다. 우리의 가이드는 금방 그 아가씨랑 친해져 좀솜으로 올라간다는 사람을 왔던 길을 되돌아 우리와 합류하게했다. 이날 걸음을 멈춘 투쿠체까지 같이 걸었던 그 아가씨는 무슨 연유로 가던 길을 되돌아 우리와 합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다시 떠나갔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Syang을 지나 마르파까지 가는 길은 초록이 완연했다. 해발 고도가 3000m이하로 내려 온 뒤로 늘어가던 초록빛이 네팔 사과의 최고 생산지인 마르파가 다가오자 더욱 진해졌다. 2월에도 아랑곳없이 마르파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멀리 설산을 등지고 깔리깐다끼 강을 안은 초록 밀밭과 살구꽃이 어우러진 과수원의 풍경이 평화로웠다. 네팔 사과 브랜디의 산지로 유명한 마르파가 다가오자 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마르파가 브랜디의 산지라서가 아니라 네팔 사과의 주산지라는 사실이 사과 농사를 짓는 한국 농부에게는 각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르파의 사과농사에 대한 기술적 경영적 정보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없겠지만 사과나무가 자라고 계절이 오면 꽃이 피고 잎이나고 열매가 달려 빨갛게 익어갈 네팔의 한 마을을 만났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는 소중했다. 마르파는 좀솜에서 거리 멀지 않았다. 점심무렵 좀솜 베니간 도로를 벗어난 우리의 걸음은 마르파를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과의 산지로만 알고 있던 마르파는 한적한 농촌 마을이 아니라 트레커의 발길이 머무는 주요한 거점도시였다.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 코스로 들어가는 체크포스트가 있고 따라서 호텔과 레스토랑은 물론 트레킹관련 용품 가게까지 즐비했다. 도시가 번화한 만치 공동체 도서관과 교육 시설도 갖추어져있고 한때 일본인의 발길이 붐볐는지 '사꾸라' 라는 이름의 호텔도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 마르파를 벗어나기전에 마르파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위에 자리잡은 사원을 방문했다. 계단을 통해 사원에 이르자 많은 신도들이 마당에서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중인 무리를 가로질러 지나가기가 불편했지만 마르파를 조망할 수있는 위치까지 올라가 전체가 한 덩어리로 붙어있는 듯 꽉짜인 마르파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마르파에서 애플브랜디를 사고싶었지만 그 무게에 지레 겁이나 포기하고 다음 행선지인 차이로를 향했다. 차이로는 깔리깐다끼를 서쪽으로 넘어 티벳탄 캠프가 있는 숲속마을이었다. 이때부터 이날 오후는 투쿠체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편안한 숲길이 계속 이어졌다. 고개를 들어 멀리 설산을 보지않는다면 길은 한국의 야트막한 야산의 숲길과 진배없었다. 오후내내 길은 평탄했고 녹색의 숲은 짙고 싱그러웠다.

투쿠체에 들어설 무렵 오후가 깊어져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비시즌이다보니 몇몇 숙소는 아예 문을 닫았고 마땅한 숙소를 쉬 찾지 못했다. 가이드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다행히 마을이 끝나갈 무렵 손님을 받는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는 야간 트레킹을 두어시간 더해서 다음 숙소를 찾아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뻔했다. 짐을 풀고나니 가이드 나브라즈는 이곳에서 애플 브랜디 공장을 운영중인 친구가 있다며 몇병 싸게 해줄테니 사기를 권했다. 우리는 사고싶지만 아직 걸어야할 길이 많은데 짐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나브라즈는 자신들이 그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 강권하는 바램에 한명당 두어병의 브랜디를 사게 되었다.

 

숙소의 옥상에는 다이닝룸으로  사용되는 유리온실같은 작은 공간이 있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인데 다이닝 룸은 따듯했다. 그 시간까지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보니 우리는 다이닝 룸을 우리만의 공간인양 점령했다. 늦게 칠레 트레커 한팀이 합류하기 전까지 우리는 다이닝 룸에서 커피와 담배를 나누며 해지는 다울라기리를  바라다보는 호사를 누렸다. 강길에서 숲길로, 좀솜에서 시작해 상과 마르파와 차이로를 지나 투쿠체까지 참 많이 걷고 행복했던 하루를 나브라즈가 사온 애플브랜디를 한잔 나누며 마무리했다. 룸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서 처음으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관계, 환경, 그리고 삶에 대해 더 사랑하게 될 것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집이 그리워졌다.

2월 13일의 아침이 밝자 간단한 조식을 해결하고 짐을 싸는데 우리 가이드와 롯지 주인간에 싸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이드는 식사도 거부하고 빨리 떠나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대충 파악한 바로는 어제 저녁 외부에서 사온 브랜디를 마신 것에 롯지 사우니가 기분나쁜 소리를 한것 같았다. 롯지도 브랜디를 파는데 왜 외부에서 사온 술을 마셨냐고 사우니가 따진것 같았다. 우리는 나름대로 양해를 구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와 가이드, 가이드와 사우니, 그리고 우리와 사우니간의 삼각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투쿠체를 출발해 얼마지나지 않아 라르중이라는 마을에서 식당에 들러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숙소의 사우니와 틀어진 가이드가 아침을 굶고 출발한 덕에  우리까지 든든한 참을 먹고 다시 길을 이어갔다. 라르중을 지나 점심을 해결한 코켄탄티까지 이어지는 길은 어제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강을 따라 평탄한 초록 숲길을 걸었고 걸음이 이어질수록 나무는 높고 초록빛깔은 더 짙어졌다.  숲길을 벗어나면 하상으로 내려와 사막같은 강바닥을 자갈을 밝고 걷고 다시 길을 만나면 초록 숲으로 걸음을 이어갔다. 깔리깐다끼의 오후 바람이 워낙 유명해 오전동안 걷고 오후에는 걸음을 멈추라는 가이드북의 안내에 잔뜩 긴장했는데 우리 일정 동안에는 그렇게 험한 바람을 만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전에도 걷고 오후에도 깔리깐다끼를 따라 마냥 걸었다.

까그베니를 지난 뒤로 깔리깐다끼강을 도대체 몇번을 건넜는지 모른다. 강의 왼편길을 걷다가 다시 강을 건너 오른편 길을 걷고, 그리고 언덕을 만나면 강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강둑을 올라 또 강을 건넜다. 코켄탄티을 만나기 위해서 찻길을 벗어나 다시 강의 동쪽으로 건넜다. 코켄탄티 마을은 몇 가구되지 않는 소박한 마을이었다. 그나마 강쪽으로 붙어있는 집들은 수해로 무너져 내려 지난 홍수의 흔적을 안고 있었다. 강과 마을이 너무 붙어있고 강과 길이 거의 수평에 가까운 마을이다 보니 또 언제 수해를 당할 지 위태로워 보였다. 우리는 조그만 롯지에서 점심을 주문하고 덜마른 빨래를 배낭에서 꺼내 햇볕에 늘었다. 차를 마시며 지도를 보고 다음 일정을 검토하며 점심을 기다리는 시간이 충만했다. 걸어서 좋고, 걷다가 쉬어서 좋고, 쉬다가 다시 걷는 것 또한 좋으니 어쩌면 걷기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고도를 낮추고 길이 산에서 멀어지는 만치 사람의 발길과 마을의 훈기는 늘었다. 코켄탄틴을 지나면서부터 마을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찻길과 트레킹코스를 교차하며 우리의 길을 찾아나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활기가 달랐다. 산에서 만나 사람들은 아직 겨울에 갖혀 추위에 웅크리고 봄을 잊고 있었다면 고도가 낮아지고 벌써 봄이 느껴지는 지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걸음걸이도 씩씩해졌다. 초록색이 들판에서 시작해 산으로 번져감에 따라, 봄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해 몸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코켄탄티를 출발해 오후의 휴식을 깔로파니에서 커피를 마시며 보냈다. 커피를 마신 깔로파니 게스트하우스는 규모도 있고 시설도 고급스러웠는데 우리 가이드는 하루 일정을 거기서 멈출 것을 제안했다. 좋은 숙소에서 지내고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걸음을 멈추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일정상 너무 일찍 걸음을 멈추면 다음날 일정이 늘어나 고생할 수밖에 없어서 제안을 받아들일수 없엇다. 아쉬워하는 가이드와 함께  예정된 숙소가 있는 가사까지 다시 걸었다. 

 

 

가사에 도착해 "플로리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미지근한 물이 나오다 찬물로 바뀌어 버린 수도꼭지에 몸을 맡기고 나니 온기가 절실했다. 다행히 우리에 이어서 두어팀의 트레커도 들어섰고 같은 숙소에 지내게 된 손님이 늘어나니 다이닝룸에 숯불 난로가 들어오고 온기가 흘렀다. 너무 붐비지도 않고 쓸쓸하지도 않을 정도의 손님이 함께 하는 숙소가 딱 좋았다. 

 

 

 

롯지와 가까운 안나푸르나 산자락에 산불이 났다. 불길이 커졌다 작아졌다 살아 움직이고 흰 연기가 쉼없이  피어났지만 산불을 꺼기위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질 않았다. 네팔리들은 아무도 산불을 의식하지 않는듯 태연했는데, 산불이 번져봤자, 눈이 쌓여 있는 고도에서 멈출 수 밖에 없고 우거진 숲이 없어 크게 신경쓸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험준한 산악지대에 산불을 끌 소방헬기도 없고 인력으로 끈다는 것도 불가능하니 그냥 방치하기 때문인지는 알수 없었다. 불 타는 산 아래 마을의 숙소에서 조금은 불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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