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간단한 식사후 쏘롱라를 향해 출발, 하이캠프를 지나 해발 5,416m인 쏘롱라에 정오무렵 도착, 이후 묵디나트를 향해 하산하여 저녁무렵 Ranipauwa에 도착 Hotel North Pole에서 짐을 풀고 이틀을 머물렀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점심으로 빵을 챙겨 5시에 롯지를 나섰다. 사방은 암흑천지지만 머리에 해드랜턴을 단 10여명의 트레커와 더댓명의 가이드 포터가 나란히 쏘롱라를 향해 출발했다. 좁고 가파른 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다행히 바람도 눈도 없고 기온도 차갑지 않았다. 다리 아프고 숨이 찬 것 말고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눈앞만 비추는 핸드랜턴에 의지해 오직 발디딜 곳만 확인하고 걸어야 했다. 설사 주변이 밝았다고 해도 발이라도 미끌어지는 순간 천길 낭떨어지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경치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긴 했다. 긴 침묵 속에 해드랜턴의 불빛이 점점이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어둠에 묻힌 절경을 보지 못하고 세 걸음 걷고 한숨을 돌리고 다시 세 걸음을 걷고 동행의 상태를 살피고 그렇게 계속해서 걷다보니 어느새 먼동이 트고 주변이 밝아 왔다. 갑자기 암흑 속에서 산들이 기적같이 살아났다. 산중에서 이런 일출을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안나푸르나는 덤으로 가슴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침 여명이 히말라야를 깨우고 우리의 걸음은 좀더 자유로워졌다. 출발하고 1시간 15분 남짓 지났을까 해발 4950m의 마지막 롯지가 있는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짧은 시간에 고도를 무려 400m나 올린 셈이었다. 전날 하이캠프에서 잠을 잔 트레커들은 이미 다 출발하고 한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쏘롱패디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들만 롯지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숨을 고른뒤 다시 길을 나섰다.
중국인 커플과 뉴질랜드인 커플 그리고 우리 한국인 4명에 3명의 포터가 나란히 출발했다. 음지의 위험한 눈길이 계속 이어지고 고도를 높일수록 시야는 더 넓고 자유로워졌다. 왔던 길을 뒤돌아보면 멀리 Chulu East(6429m)의 자태가 공룡 등짝같이 경이로웠고, 우리가 가는 길의 왼쪽으로는 Khumjungar(6759m)로 이어지는 산세의 흐름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트래커들은 모두 지쳐가기 시작했고 걸음은 쳐졌고 숨은 가파졌다. 그리고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아까운 체력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 걸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올라가자는 마음으로 다른 팀들을 추월해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쏘롱라에 다가 갈수로 나는 나도 모르게 호흡과 다리, 그리고 시간과 거리에만 정신이 쏠렸다. 가쁜 숨과 아픈 다리가 해가 지기전에 묵디나트로 나를 데려다 줄수 있을까하는 사실만 중요해지고 더 중요한 나머지는 사소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였다. 걸음을 통해 산의 기운을 느끼고, 안나푸르나가 선물하는 절경에 취해 생명의 환의에 들뜰줄 알았는데 나의 걸음은 고난의 구간을 벗어나기에 바쁘기만했다. 하이캠프를 나선지 꼭 4시간만에 쏘롱라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안도감도 잠시 걷기를 멈추자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쏘롱라 옆 언덕까지 올라 왔던 길을 되돌아봐도 일행의 흔적은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되돌아 가보기엔 올라온 길이 너무 아까웠다. 무려 한시간이나 지체한 뒤에 먼저 나의 일행이 거의 탈진 상태로 도착했다. 11시 30분이었다. 자신의 작은 배낭마저 포터에게 넘기고 몸만 겨우 올라왔지만 막상 도착해서는 그랟 기운을 차렸다. 같이 간식을 나누고 사진을 찍는 사이 뉴질랜드 커플과 중국인 커플도 도착했다. 어떻게 된 것이 나이와 역순으로 쏘롱라에 도착하는 걸 보니 젊다고 튼튼한 것은 아닌게 확실했다. 우리 부부는 괜한 우쭐함에 어깨 힘이 들어갔다.
정오가 되자 우리 부부는 제일 먼저 출발했다. 상행길과 마찬가지로 서로 각자의 체력메 맞춰 걸어나갔다. 하행길의 풍광은 상행길에 비할 바는 못되었다. 발을 딛고 선 주변의 풍경은 초라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멀리 병풍처럼 앞을 가로 막고 선 다울라기리 산군의 숨막힐 듯한 풍광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울라기리까지 걸어갈 요랑이었는지 쉼없이 내달려 오후 2시반에 고도 4,200m의 바즈라마을에 도착했다. 파라다이스 롯지에서 시벅쥬스와 정체를 알 수 없는 rhubarb 쥬스를 와이프랑 나눠 마시며 일행을 기다렸다. 롯지주인에게 담배를 요청하니 새갑을 구하지 못해 자신의 담배 2개비를 나누어 주었다. 무려 한시간이 지나서야 일행이 도착했다, 상행길 한시간 하행길 한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냈다. 너무 좋은 체력이 문제였다. 그런데 사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3시반에 도착한 일행과 차를 마시고 4시에 바즈라를 출발하여 5시30분에 묵디나트를 지나 Ranipauwa에 도착했다. Ranipauwa는 네팔여정중 최고의 풍경을 가진 가장 드라마틱한 마을이었다. 꿈속에서나 그리던 풍광을 지닌 Ranipauwa는 높은 설산이 멀리 둘러쳐진 활무지로 형성된 너른 구릉지의 양지바른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마을이었다. 석양을 받으며 꿈속같이 안온한 느낌을 주던 마을은 밤이 되니 설산과 구름 그리고 달빛과 타르초가 어울려 내 눈과 마음을 맑게해 주었다. 어린 시절 골목길을 나설 때 서늘한 밤공기 주던 알 수 없던 울렁거림이 다시 되살아남을 느낄수 있었다.
마을을 관통해 거의 끝에 다다라서야 외관이 조금 낡은 Hotel North Pole에서 방을 구했다. 외관은 낡고 복도 끝에 설치된 세면장과 화장실은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친절한 주인이 피워주는 숯불 난로 하나로 모든 불편함을 잊을만했다. 특히나 생각보다 싼 가격에 맛난 야크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에 고도를 1,000m나 높이고 다시 1,600m를 내린 쏘롱라 패스를 축하하면서 락시를 한잔 나누면 서로의 노고를 격려했다. 고산증으로 인해 배탈과 두통 호흡곤란을 겪은 두 친구와 특히 우리 짐까지 지고 힘든 하루를 용케 견뎌낸 두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만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쏘롱라를 넘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새벽부터 어두워지기 직전까지 이번 여정 중 가장 많이 걸은 하루였고 가장 극적인 최고 고도를 넘어온 하루였지만 의외로 기억에 남는 풍경은 많지 않았다. 나름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은 네팔 여정중 가장 많이 걷고 가장 조금밖에 못본 하루가 된 셈이다.
마낭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이틀을 머문뒤 다시 묵디나트 Ranipauwa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이번에는 고소적응이 아니라 그냥 쉬기 위해서 이틀을 머물기로 했지만 Ranipauwa도 그냥 쉬기에는 가볼 곳이 너무 많았고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틀도 부족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보기보단 차라리 더 많은 휴식을 위해 단촐한 일정을 잡았다.
먼저 전날 지나쳤던 묵디나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원래의 마을 이름보다는 그냥 묵디나트로 불리는 라니포와와 붙어있는 듯 가깝게 느꼈는데 그래도 막상 걸어보니 30여분이 걸렸다. 겨울 사원은 한산했고 엄숙했다. 몇몇 관광객이 말을 타고 사원앞 공터에서 소란을 떨긴 했지만 계절상 많지 않은 순레객이 단정한 몸가짐으로 사찰을 돌고 108갈래의 성수로 몸을 씻어 죄를 씻고 다시 태어나는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늘 죄업을 쌓고 있고 자신의 삶이 부정한 것에 물들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삶이고, 거기다가 어리석기까지 하다보니 늘 후회로 점철된 것이 인생일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묵니나트를 흐르는 108줄기의 물로 몸을 씻고 사원 뒷마당 언덕에 입던 속옷마저 벗어 던지고 나면 저분들은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자신의 현실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복잡한 삶의 방정식에 비해 너무나 단순한 답에 불과하지만 그 소박한 믿음을 통해서마나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묵니나트를 나와 Ranipauwa주변의 작은 사원과 언덕위에 새로 조성된 비슈누상까지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오랜만에 샤워와 빨래를 하고 성대한 저녁상을 받은 자리에서 옆테이블의 한국에서 일하신다는 네팔 노동자 가족을 만났다. 오랜만에 귀국해서 가족들과함께 묵니나트에 참배 여행을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괜히 반가웠다.
술기운에 일찍 잠이 들었다가 불편한 꿈에 쫒겨 새벽 3시에 잠을 깼다. 30대 초반부터 따라다니던 꿈은 늘 나를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 속으로 몰아 넣는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스스로 누구인지 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나는 늘 이십대와 삼십대의 경계에 서 있었다. 꿈을 깨고 나서 나는 스스로 물었다. 결국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세월의 힘에 밀려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내가 하고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했다는 자책감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지금 나의 사회활동이 있고, 농사가 있고, 내 인생을 스스로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생각으로도 내 자신을 위무할 수 없었다. 나는 한번도 뜨거워본 적이 없었고, 그 어디에도 제대로 한번 미쳐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구원의 땅 묵다나트에서도 나는 평화를 얻지 못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초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내 귀에 울리는 타르초 소리는 바람이 불경을 읽는 소리일까 아니면 내 마음에 이는 번뇌와 갈등의 아우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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