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관련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간혹 속이 확 디집어 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솔직히 농촌을 위한답시고 농촌문제를 희화화한 프르그램들이 넘쳐나는 풍토가 못마땅하다. 한국 농업농촌의 문제는 위기라는 말로 표현될 수 없을 만치 생존의 갈림길에 내몰려있다. 그 절박함은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의 농부가 다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절박한 농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기획된 프로그램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구미의 한 마을에서 녹화된 대구KBS의 "농촌탐구생활"에 '귀농"관련 문제로 도지사 등과 패널로 참가해 토론을 하게 되었다면서 농민회 한 동지로 부터 연락이 왔다. 온통 관과 관변인들로 구성된 패널사이에서 홀로 진보적 목소리를 내어야하는 부담감때문인지 방청객 질문으로라도 엄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농사일 하루접고 집을 나섰다.
먼저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진행된 야외무대 녹화에서 무려 다섯시간동안 방청객으로 사시나무같이 떨어야해서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촬영한 것이 방송 2회분이라고 했고, 전반부는 쌀을 주제로 했지만 내용은 전무했고 그냥 출연한 도지사의 노골적인 홍보방송에 불과했다. 도지사가 떠나고 도청 농정국장이 패널로 나온 후반부는 성공한 귀농을 주제로 했다. 사실 할말이 많았지만 이런저런 개인적 인연도 있는 방송국관계자와 패널의 입장도 있고 해서 최대한 자제를 했고, 나를 청한 패널이 요구한 귀농관련한 주제에 관해 하나의 질문만 던지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한정했다.
사실 우리 농민은 그나마 농촌문제를 다뤄주는 방송관계자에게 무조건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려야할 형편이다.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PD 등 관계자는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엄청난 난관을 뚫고 노력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고 싶지만 나름의 제약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제의에 따라 출연할 것인지 말것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고, 출연했을 때 어디까지 건드려야할지도 판단이 쉽지 않다. 사실 하고싶은 말 다하고 난뒤 편집의 절대권력에 휘둘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어렵다. 방송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클 것이다. 농촌문제를 다루는 진지한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없을 것이고, 농촌문제를 쇼화한 프로그램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그렇다고 농촌문제를 외면하다보면 지면이든 방송이든 모든 정보의 흐름에서 농촌문제가 사상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 나름 엄청난 고뇌의 산물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번 녹화과정에서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 한가지는 FTA 그것도 농산물시장 개방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장의 파고에 맞서 경쟁력있는 한국 경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농산물 시장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농업을 시장 바같에 남겨두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스위스가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EU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스위스 경제가 망한 것은 아니다. 재벌의 시장을 확보해주기위해 농업시장 개방을 선제적으로 하는 한국정부는 이마트가 농산물을 헐값에 내어놓고 미끼상품으로 사용하는 것과 별반다르지 않다. 그런 천박한 재벌의 상술을 차용해 마구잡이로 농업시작을 개방하는 정부를 제어하지 않고는 미시적 농촌보호정책을 아무리 내어놓아도 아무소용이 없다.
사실 귀농정책 관련해서 제기하고 싶었던 질문이 두어개 있었다.
첫째. 두어가지 귀농성공사례를 보여주며 '농촌에 희망이 있다'고 호도하는 것을 비판하고 싶었다. 농업정책이 개별적 성공사레 만들기로 흘러가서는 안된다. 많은 경우 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억지로 성공사례를 만들고 이를 내어밀면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는 일반 농민들에게 상처를 줄뿐 희망의 메시지가 결코될 수 없기 대문이다. 모든 성공사례가 다 그런것도 아니고 이번에 소개한 사레중에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성공사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평생농사를 지어오신 우리 동네 어르신이나 형님 등 이웃 농민들은 유명호텔의 세프출신도 아니고, 박사도,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살아남으란 말인가? 그런데 몇몇 성공사례를 보여주면서 귀농하라고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녹화가 끝나고 참석했던 귀농인들의 볼멘소리도 바로 그점을 지적했다. 명문대 박사출신이나 유명호텔 세프출신은 그렇게 했다지만 그럼 평범한 우리는 어떡게하란 말인가를 되불었다.
사실 귀농정책은 농정의 하위 단위일뿐이다. 나는 경북 농업농촌의 미래상에서 귀농정책이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 궁금하다. 우리 농촌이 잘 살고 있고, 희망이 넘치는 곳이고, 농민들이 농부로서의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고 우리 농민의 자식들이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는 세상이라면 별도의 귀농정책이 필요 없을 것이다.그런 면에서 경북 농촌의 미래상이 어떠한지 그 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귀농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두번째, 귀농인과 원주민사이의 마찰이 일부 있는데 여기에는 귀농정책이 초래한 측면이 있지않나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삶의 가치지향이나 의사소통방식 등이 다른데서 오는 면이 클 것이긴하지만 귀농정책면에서도 이를 부추키는 면이 있어 보인다. 귀농인은 정책자금 수혜 등에서 소외된다고 느끼고, 마찬가지로 원주민은 평생농사지어 온 우리를 외면하고 귀농인만 챙긴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귀농인은 원주민의 일부가 관과 유착되어 독식한다고 느끼고, 원주민은 정보 취득에 능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귀농인이 정책수혜를 독점한다고 느낀다. 이는 개인의 인격이나 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금전적 인센티브에 집중된 귀농정책이 야기하는 측면도 있고, 지역내 정책관련한 정보의 흐름과 하부 행정의 결정과정이 왜곡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고 귀농인과 원주민이 어울려 함께살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귀농정책을 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참 아쉬움이 많이 남은 방송녹화였지만, 고생하는 스탭들을 보니 가슴 징한 면도 있었다. 그분들께는 감사할 따름이다. 바라건데 농촌관련 방송이 지위가 높은 분을 초대해 추켜세워주는 대신에 우리 농촌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애원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 도시민 여러분 우리 불쌍한 농촌을 도웁시다는 불우이웃돕기 홍보식 방송이 아니어도 좋은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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