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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8년전이다. 지역을 좀더 알고 건강도 챙기자는 마음으로 마을길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행없이 우리 부부만 걸었는데 두번째 부터는 이웃들과 같이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지를 했다. 예상밖으로 많은 분들이 걸음에 동참했던 첫길이 북곡리 윗뒤실 길이다.

처음 시작한 마을길 걷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중단되었지만, 2년전 좋은 친구들 덕분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덕분에 어제 다시 8년전 그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난 8년의 세월을 지고 걸었다. 그때 손을 잡고 같이 걸었던 이웃 아이들은 다 자라 마을을 떠났고 40대 중반의 동행들은 오롯이 50대 중반의 중년으로 바뀌었다. 그땐 분명히 지역학교와 교육의 문제가 화두였었는데 어제는 건강이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투병중인 동행이 있어 더 그랬겠지만 어떻게 건강한 삶이 가능한지 그리고 현대 의료의 문제와 대체의학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산길 내내 이어졌다.

걷기는 아침 9시 명호면 북곡리 소재, 폐교된 북곡분교에서 시작했다.  목적지 재산면 남면리에 있는 역시 폐교된 남면분교장까지 10km의 거리를  청량산과 문명산이 만나는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이었다. 북교초등학교를 나와 윗뒤실까지 가파른 마을길을 걸으며 고개를 돌려 멀리 만리산자락의 마을을 건너다 보는 것도 좋았고, 청량산 북쪽 사면의 언덕길을 오르며  햇살속에 번지는 청량산의 자태를 바라다 보는 것도 너무 좋았다. 게곡에는 아직 두터운 얼음이 얼어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봄기운을 느낄수 있어 좋았고, 끝나가는 겨울과 아직 시작하지 못한 봄이 만나는 경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 더욱 좋았다.

윗뒤실 마을 입구 당나무 아래서 간식을 나누며 쉬다가 마을을 가로질러 비포장을 길을 접어들었다.  청량산 자소봉과 장인봉 사이의 하늘다리가 보이고 봄의 기운이 번지는 탓일까, 엷은 안개가 산을 휘감고 역광 속에서 겹겹히 드러나는 청량산의 자태가 너무나 신령했다.  길의 정상부위였던 지명이 '옥새이'에 펼쳐져 있던 빈밭이 인상적이었는데 새로 난 길은 옥새이를 거치지 않고 거리를 줄이며 바로 천애수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천애수를 지나며 뒤돌아 보는 천량산의 산새가 아름다웠는데 남면리 쪽으로 난데 없는 댐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100억원의 돈을 들여 작년 연말에 완공했다는데 댐의 용도는  '다목적 농촌용수 댐'이라고 했다. 완공된지 얼마되지 않아서겠지만 댐은 비어 있었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시야를 압도했다. 하지만 저 정도의 돈으로 산과 계곡을 밀어 만들어진 댐이  얼마나 소용에 닿을지는 알 수 없었다. 자연과 마을을 만나기 위해 걷던 중에 만난 이질적인 풍경은 뒷맛이 무지 썼다. 

이번 마을길 걷기는 아이들이 떠나고 없는 빈 교정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마을의 빈교정에서 끝났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서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며 끝나가는 겨울의 하루를 만끽했다. 이제 곧 봄이오면 교정에는 다시 풀이 자라고 들꽃이 피어나겠지? 그렇다고 떠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햇살 가득한 봄 교정에서 좋은 친구들과 다시 한번 마을의 삶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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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걷기가 끝난뒤 쓴맛은  남긴 또 하나의 화두가 있었다. 소위 귀농자와 현지 주민과의 갈등에 관한 것인데 내 스스로 봉화에 농부로 정착한지 20여년을 넘기다보니 양쪽으로 부터 다른 입장의 말을 들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나는 귀농인과 현지인을 나누는 것 자체를 반대할 뿐아니라, 각각이 상대를 이해하는 부정적인 내용의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농업농촌정책에서 귀농정책으로 특화해 차별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의 정책에도 동의하지 않으며, 농업농촌의 문제가 해결될 때 농민의 재생산 문제는 큰 틀에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사실 귀농인에 대한 차별적 지원이 현지인에게는 박탈감을 주고, 현지인의 귀농인에 대한 시각을 왜곡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지방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가로막기위해 귀농인을 관변화하고 또 하나의 기득권으로 육성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현주민들은 귀농자들이 원재 자신의 몫이어야할 농업 예산을 따 빼아간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귀농자들은 자신이 막닥뜨리는 지방 유지나 토호의 특권적 행태를 현주민 일반의 경우로 확대 해석하게 된다. 대부분 갈등의 경우 각자의 인격이 문제겠지만 제도적 문제는 이와 같은 갈등을 조장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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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관련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간혹 속이 확 디집어 지는 경우가 많다나는 솔직히 농촌을 위한답시고 농촌문제를 희화화한 프르그램들이 넘쳐나는 풍토가 못마땅하다한국 농업농촌의 문제는 위기라는 말로 표현될 수 없을 만치 생존의 갈림길에 내몰려있다 절박함은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의 농부가 다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절박한 농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기획된 프로그램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이번에도 그랬다구미의 한 마을에서 녹화된 대구KBS "농촌탐구생활" '귀농"관련 문제로 도지사 등과 패널로 참가해 토론을 하게 되었다면서 농민회 한 동지로 부터 연락이 왔다온통 관과 관변인들로 구성된 패널사이에서 홀로 진보적 목소리를 내어야하는 부담감때문인지 방청객 질문으로라도 엄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정말 가기 싫었지만 농사일 하루접고 집을 나섰다

먼저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진행된 야외무대 녹화에서 무려 다섯시간동안 방청객으로 사시나무같이 떨어야해서 너무 힘들었다그리고 이번에 촬영한 것이 방송 2회분이라고 했고전반부는 쌀을 주제로 했지만 내용은 전무했고 그냥 출연한 도지사의 노골적인 홍보방송에 불과했다도지사가 떠나고 도청 농정국장이 패널로 나온 후반부는 성공한 귀농을 주제로 했다사실 할말이 많았지만 이런저런 개인적 인연도 있는 방송국관계자와 패널의 입장도 있고 해서 최대한 자제를 했고나를 청한 패널이 요구한 귀농관련한 주제에 관해 하나의 질문만 던지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한정했다



사실 우리 농민은 그나마 농촌문제를 다뤄주는 방송관계자에게 무조건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려야할 형편이다프로그램을 만들려는 PD 등 관계자는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엄청난 난관을 뚫고 노력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더 나아가고 싶지만 나름의 제약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그래서 어렵다제의에 따라 출연할 것인지 말것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고출연했을 때 어디까지 건드려야할지도 판단이 쉽지 않다사실 하고싶은 말 다하고 난뒤 편집의 절대권력에 휘둘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어렵다방송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클 것이다농촌문제를 다루는 진지한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없을 것이고농촌문제를 쇼화한 프로그램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그렇다고 농촌문제를 외면하다보면 지면이든 방송이든 모든 정보의 흐름에서 농촌문제가 사상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나름 엄청난 고뇌의 산물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번 녹화과정에서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 한가지는 FTA 그것도 농산물시장 개방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시장의 파고에 맞서 경쟁력있는 한국 경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농산물 시장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농업을 시장 바같에 남겨두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스위스가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EU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스위스 경제가 망한 것은 아니다재벌의 시장을 확보해주기위해 농업시장 개방을 선제적으로 하는 한국정부는 이마트가 농산물을 헐값에 내어놓고 미끼상품으로 사용하는 것과 별반다르지 않다그런 천박한 재벌의 상술을 차용해 마구잡이로 농업시작을 개방하는 정부를 제어하지 않고는 미시적 농촌보호정책을 아무리 내어놓아도 아무소용이 없다.



 

사실 귀농정책 관련해서 제기하고 싶었던 질문이 두어개 있었다.

첫째두어가지 귀농성공사례를 보여주며 '농촌에 희망이 있다'고 호도하는 것을 비판하고 싶었다농업정책이 개별적 성공사레 만들기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많은 경우 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억지로 성공사례를 만들고 이를 내어밀면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는 일반 농민들에게 상처를 줄뿐 희망의 메시지가 결코될 수 없기 대문이다. 모든 성공사례가 다 그런것도 아니고 이번에 소개한 사레중에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성공사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평생농사를 지어오신 우리 동네 어르신이나 형님 등 이웃 농민들은 유명호텔의 세프출신도 아니고박사도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살아남으란 말인가그런데 몇몇 성공사례를 보여주면서 귀농하라고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녹화가 끝나고 참석했던 귀농인들의 볼멘소리도 바로 그점을 지적했다. 명문대 박사출신이나 유명호텔 세프출신은 그렇게 했다지만 그럼 평범한 우리는 어떡게하란 말인가를 되불었다

사실 귀농정책은 농정의 하위 단위일뿐이다나는 경북 농업농촌의 미래상에서 귀농정책이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 궁금하다우리 농촌이 잘 살고 있고희망이 넘치는 곳이고농민들이 농부로서의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고 우리 농민의 자식들이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는 세상이라면 별도의 귀농정책이 필요 없을 것이다.그런 면에서 경북 농촌의 미래상이 어떠한지 그 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귀농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두번째귀농인과 원주민사이의 마찰이 일부 있는데 여기에는 귀농정책이 초래한 측면이 있지않나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삶의 가치지향이나 의사소통방식 등이 다른데서 오는 면이 클 것이긴하지만 귀농정책면에서도 이를 부추키는 면이 있어 보인다귀농인은 정책자금 수혜 등에서 소외된다고 느끼고마찬가지로 원주민은 평생농사지어 온 우리를 외면하고 귀농인만 챙긴다고 불만을 제기한다귀농인은 원주민의 일부가 관과 유착되어 독식한다고 느끼고원주민은 정보 취득에 능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귀농인이 정책수혜를 독점한다고 느낀다이는 개인의 인격이나 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금전적 인센티브에 집중된 귀농정책이 야기하는 측면도 있고지역내 정책관련한 정보의 흐름과 하부 행정의 결정과정이 왜곡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고  귀농인과 원주민이 어울려 함께살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귀농정책을 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참 아쉬움이 많이 남은 방송녹화였지만고생하는 스탭들을 보니 가슴 징한 면도 있었다그분들께는 감사할 따름이다바라건데 농촌관련 방송이 지위가 높은 분을 초대해 추켜세워주는 대신에 우리 농촌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애원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도시민 여러분 우리 불쌍한 농촌을 도웁시다는 불우이웃돕기 홍보식 방송이 아니어도 좋은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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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서울 신도림의 '디큐브 아트센타'에서 있은 '귀농귀촌토크쇼'에 출연했다.  귀농 15년차로 귀농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지화된 사람이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아 청해준 SBS와 농림부에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다. 오후 4시에 출연자와 연출자 등 관계자가 미팅을 갖고, 오후 6시부터 7명의 출연자와 함께 토크쇼를 가지기로 되어 있었다.

 

오전에 집을 나서 봉화읍에서 볼 일을 보고 영주 터미날에서 서울 강변터미날행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시외버스로 서울까지 가는 2시간 20여분 동안 김정헌님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을 가다]를 다 읽었다. 혹시 귀농귀촌토크쇼 출연에 재미를 못보더라도 덕분에 책 한권을 읽은 것 만으로도 본전을 건질 수 있게 되었다.

 

버스는 오후 3시 조금 지나 강변 터미날에 도착했고, 터미날을 나와 지하철로 이어지는 짧은 시간이 아쉬워 길가 쉼터에 잠시 멈춰 혼잡한 서울 거리를 구경하며, 서울에 살았던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약속시간에 개의치 않고 느린 걸음을 걸어 강변역사에 들어서자 티켓팅도 노선도 낯설게 다가왔다. 한참을 두리번 거린뒤 1회용 티킷을 한장 끊어 승강장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2호선 순환열차를 어느쪽에서 타야하는지 혼란스러웠고 폰을 통해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한뒤 다시 반대편 승강장으로 건너가서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지하철 안의 풍경도 참 낯설었다. 오래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신문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 제일 많았는데 지금은 승객들이 다 스마트 폰 삼매경이었다. 

 

 

강변에서 40여분 걸려 스무개 역을 지나 신도림역에 도착했다.  역사를 나와 디큐브시티  건물앞에서 이번 행사를 진행하는 스텝분에게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 바로 그 건물 7층에 있는 디큐브 아트센타가 이날 행사장이라고 했다.  행사장이 있는 디 큐브 아트센타는 아직 관객이 몰리기에는 이른 시간 때문인지 한산했다. 출연자 대기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서니 이미 다른 출연자들이 도착해 계셨다. 낯익은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 낯설은 분들이었다. 그래도 같은 프로의 출연자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쉬 편안해 졌고 잠깐의 출연을 위해 4시간여를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되었다.

 

스텝이 말한 미팅은 진행되지 않았고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되는 와중에 출연자분들과 귀농 귀촌에 대해, 그리고 농촌문제 일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아까운 시간을 채웠다. 토크쇼의 진행은 농림부 장관을 위시한 출연자들이 한 자리에서 귀농귀촌과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출연자가 차례로 1명씩 나가 공연과 공연사이에 10여분씩 사회자와 대담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토크쇼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귀농 정책과 관련한 농림부장관과의 토론회라도 되는 양 크게 착각한 것이 겸연쩍었지만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으며 유명 가수의 공연도 보고, 유명 MC와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할 수 있어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 귀한 추억이 되었다.

 

토크쇼의 성격상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귀농전문가 교수님들과 나누었다. 이날  공식적인 프로그램 진행중에 발언하고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귀농귀촌정책과 관련한 나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귀농귀촌 관련 정책들을 보면 정책의 기조에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귀농정책을 도입하고 시행하는 전제에는 지금까지 한국 농업 농촌을 지켜오던 기존의 농민으로는 경쟁력있는 한국 농업으로 재편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현실적으로 젊은 인구는 다 이농했고, 노령인구만 남아 한국 농업 농촌을 지키고 있는 셈이니 그런 인식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기존의 농민, 농촌주민의 한국 농업에서 해온 그리고 해나갈 역할에 대한 과소평가가 곧바로 잘못된 귀농정책으로 귀결되었다고 본다. 단순화해서 보면 농촌이 잘먹고 잘살면 귀농정책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농촌이 직면한 위기를 농촌에 남아있는 농민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한국 농업의 미래를 위해 고학력, 고자본의 젊은 인력을 농촌에 유치함으로써 타개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문제의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한국 농업을 지켜온 늙은 농부의 무능이 한국 농업농촌을 망쳐온 것이 아니라, 한국 농촌의 병든 현실이 늙고 병든 농부만 남겨놓은 것인데 그 농부 탓을 하는 것은 전말이 전도되어도 한참을 잘못된 인식이다. 이런 인식에 기초해서 나오는 귀농정책은  농업농촌을 활성화하기위한 정책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농촌이 처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하는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귀농활성화정책은 바로 경제적 유인, 현 주민과의 차별적 혜택을 통한 유인이라는 시혜적 귀농정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혜적 귀농책은 귀농 실패를 부추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귀농 희망자는 어느 지자체가 귀농정착자금을 더 많이 주는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그와같은 수혜에 기반한 귀농은 수혜의 약발이 떨어지는 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농업농촌 정책기조로는 특히 MB정권하의 농업농촌 정책으로는 지금의 귀농인을 다시 그들이 생각하기에 무력한 기존의 농민으로 만들뿐이다. 올해 당장 한미FTA로 연 1조원의 농업손실을 초래하는 한국 농업현실에서 젊고 유능한 귀농인은 머지않아 지금의 무기력한(!) 농민과 똑같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칭 귀농전도사다. 늘 귀농을 준비하시는 분을 만나면 나는 이야기한다. 자연이 아니라 새로운 농촌공동체 속으로 들어간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언제라도 보따리를 싸시라고. 농촌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사는 곳이다. 저 허리 굽은 노인네도 밥먹고 사는데 사지 멀쩡한 내가 밥 못먹고 살겠는가는 생각으로 사전준비 없는 무모한 귀농을 감행한 나는 이제 15년차를 넘기며 현지화에 성공한 셈이다.  귀농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재정적 준비, 농사 기술적인 준비 기타 여러가지 사전 정보 등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최종적으로 귀농은 결단의 문제다. 기존의 농민과 구별되는 다른 마인드의 귀농인이 아니라 동일하게 처한 한국 농업 농촌 현실이라는 조건에서 더불어 문제를  풀어 나가는 귀농인이 늘어간다면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도 그만치 밝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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