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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4일 유후인을 떠나 후쿠오카의 엑셀도큐하카다호텔에 짐을 풀고,
텐진거리와 캐널시티 등 도심을 둘러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다음날 일찍 텐진역에서 기차로 한시간 거리인 운하의 도시 야나가와로 향했다.
나카야마 미호가 출연했던 [도코맑음]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했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야나가와 수로이야기]로 알려진 야나가와는  
최근 MB표 운하를 선전한는데 이용되면서 한국인에게 더욱 친숙해진 곳이다.


이번 규슈여행에서 야나가와 코스를 선택한 것은
도시를 실핏줄처럼 잇는 수로를 따라 가와쿠다리라는 뱃놀이를 즐기며
가족이라는 인연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면서
결혼 생활 20년이라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위해서 였다.
또한 아직도 개발광풍이 몰아치고
개발만능이라는 야만이 지배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개발과 환경,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구현한
아름다운 도시의 한 전형을 보고싶고 또 걷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MB의 야만적 토건주의를 옹호하기위해 이용했다는 야나가와 운하는
환경재앙적 개발주의와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 친화적 개발의 산표본이었다.
야나가와 운하가 생기게 된 배경부터가 4대강사업과는 극단적으로 판이했다. 
한때 도시를 가르는 물길이 쓸모가 없어지고 오염되어 흉물이 되어가자 
시당국은 수로를 콘크리트 관으로 다 대체하고
묻어버리는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하려 했다고 한다.
이때 야나가와의 한 말단 공무원이 이 계획을 반대하고 나서서
손수 혼자서 도랑을 치우고, 물길을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시민들이 호응하면서 개발계획은 철회되고 쓸모가 없어진 운하가
야나가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가게 되었다.
오늘날 물의 도시 야나가와를 상징하는 운하는 
바로 그와같은 반개발주의 시민운동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야나가와는 상징적인 친환경적 도시로 부각되면서
년 100만명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텐진역에서 가와쿠다리 티킷을 산뒤, 기차를 타고 한시간을 달린 뒤 야나가와 역에 내려섰다. 조그만 시골 기차역같은 한산함과 소박함이 묻어나는 역사를 벗어나오자 가와쿠다리를 안내하는 안내원이 10분뒤에 셔틀버스기 온다며 대기실로 안내했다. 조그마한 대기실은 훈기가 넘쳤지만 야나가와 안내 팜플릿 몇 종류와 야나가와를 홍보하는 영상을 내보내는 TV가 전부인 소박한 공간이었다. 젊은 한국인 커플 한쌍과 관광객이 아니라 바같 추위를 피해 들어온듯한 일본 노인 한분이 전부인 탓에 자그마한 대기실도 조금은 허전해 보였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셔틀버스가 도착했고, 셔틀 버스에 오른지 5분도만에 드디어 가와쿠다리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나루터에는 같은 모양의 작은 배들이 나란이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쌀쌀한 날씨와 이른 시간때문인지 한산하기만 했다.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다가,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아이와 함께 나온 일본인 가족과 한국인 커플 그리고 우리 가족해서 8명이 한 배를 탔다. 신발을 벗고 배에 오르자 작은 배는 한사람 한사람이 탈때마다 좌우로 크게 흔들려 금방이라도 뒤집어 질듯했다. 배의 중간에는 일본식 난방탁자인 코타츠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코다츠에 발을 넣었다. 이내  할아버지 사공이 삿대를 젓자 배는 수로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야나가와를 물의 도시, 운하의 도시라고 하지만 야나가와의 운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운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친환경적인 작은 수로에 불과했다. 이들 수로들은 집과 집을 잇고, 길과 길을 이으며 야나가와 항구까지 이어지는 작은 뱃길이면서 동시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랑이기도 했다. 수로를 따라 늘어진 나무와 숲,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작은 집들의 아기자기한 정원들, 그리고 그 수로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라 오리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라는 사실을 시위하는 오리떼 가족... 배는 물위를 흐르듯 나아가고, 나의 상념은 지난 세월을 지나 다가올 먼 미래를 오가며 흔들렸다. 수로의 폭은 점점 넒어지고 물길이 깊어지다가 어느새 샛강으로 접어 들기도하고, 다시 넒은 수로로 나아가기를 여러번  능수능란한 늙은 사공의 숨결이 가빠져 갔지만 작은 배는 물살을 일으키며 중심을 잡아 흔들림이 없었다.    


약 1시간의 뱃놀이는 금방 끝이 났다. 발걸음은 선착장에 올려놓자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하지만 다 저 물처럼 흘러가는 것. 향유했던 지난 시간의 기억이나마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니겠는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시간을 배로 내려온 수로를 거슬러 이번에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로와 도로가 헤어지고 한참을 주택지 사이를 헤메기도하면서 원래의 출발지인 야나가와 역을 찾아 나갔다. 깨끗하고 소박한 야나가와의 골목골목을 헤메는 재미에 푹빠져 한시간을 넘어 걷다가 결국 길을 놓쳐버려 다시 한시간을 더 묻고 찾고 한 끝에 야나가와 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동안 가졌던 야나가와 방문의 꿈, 카와구타리를 해 보고 싶었던 꿈은 실현되었지만 야나가와를 떠나는 기차를 기다리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찼다. 세상의 모든 삶의 터전이 다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어우려져 사는 삶의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경우인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삶의 터전은 바로 이렇게 가꾸어나가야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이어지고, 기차는 다시 후쿠오카로 향했다.


후쿠오카로 향하는 기차간에서 멀리 일본의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두눈 가득 담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일본이 부러워졌다. 최소한 환경과 전통에 대한 일본인의 애착만큼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배워와야할 것들이 아닌가? 아직까지 박정희식 개발만능주의가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고, 바로 그와같은 국민의 의식이 MB라는 구시대의 괴물을 현실에 불러들이는 악마의 주술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인들 그와같은 개발만능의 시기가 없었겠는가. 시행착오를 피하면 좋겠지만 인간은, 인간의 세상은 그렇게 완벽할 수가 없는걸 어떻하겠는가. 그래서 인간세상인 것을!


하루의 여정으로 끝이 난 야나가와는 하루보다는 훨씬 더 큰 기억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 오랫동안 나의 삶을 데워줄 것이다. 반추할 수 있는 행복했던 시간을 선사한 야나가와와의 인연에 감사하면서 2011년 야나가와 여행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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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재발견>의 저자 이우광은 삼성경제 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본연구팀장이다. 저자는 인본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일본에 대해 더 알고싶은 것들 대부분에 대해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분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한 블로거의 리뷰를 보고 책의 구입을 결정했다.

내가 가진 일본과의 인연은 4일간의 짧은 여행 한번과 와이프의 일본인 친구 두분의 이틀간의 우리집 체류, 그리고 몇편의 소설과 만화영화로 만난 것이 전부다. 사실 일본은 올해초 큐슈의 농촌마을사업에 대한 연수를 다녀오게 되면서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 나라다. 그전에는 일본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다. 일본은 나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양 착각속에 방치된 나라였다. 그런 일본이 한번의 여행을 계기로 갑자기 나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짧은 여행으로 받은  일본에 대한 인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일본은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깨끗한 나라' 였다. 이후 일본은 지속적인 나의 관심국가가 되었고, 올 가을이면 두번째 일본여행도 떠나볼 계획이다. 
   

이 책 <일본재발견>은 일본의 문화, 일본인의 삶 전반을 다루고 있는 일본 안내서는 아니다. 전문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인 필자가 보다 대중적인 필치로 일본경제, 나아가 경제적 측면의 일본문화와 일본 사회에대한 나름의 이해를 피력한 책일  뿐이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항상 '경제'적 라이블로서  먼저 다가오고, 다음으로 우리 자신의 문화적 거울이랄까, 우리를 들여다보고 비교해보고 분석해 보는데 준거가 되는 나라로 받아들여지는 성격이 강하다. 다시말해 일본은 한국인의 의식속에서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 비교대상, 경쟁대상인 것이다. 거기다가 일본과 한국은  이십세기초 수십년에 걸쳐 병탄이라는 특수한 악연이 있는 관계로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고, 공평무사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운 역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대한 판단은 항상 과소와 과대의 양극단에서 표출된다. 따라서 필자는 과소평가와 과대평가사이에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일본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물론 경제, 경영적 관점에서 바라다본 일본이라는 한계와 특징을 동시에 드러내지만 필자는 한국인의 의식속에 굴절된 일본의 상을 바로잡고자 시도한다. 물론 그 시도는 일정정도 성공하고 또 일정정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장으로 구성된 이책의 첫장은 일본의 사회 문화적 트랜드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다. 이미 유행어가 되어버린 '오타쿠'나 '더블싱글', '하류', '초식남', '미니멀 라이프' 등에 대한 소개와 분석을 통해 현재 일본이 처해있는 객관적인 문화적, 정신적 상황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들 유행어를 통해 일본의 현상황에 대한 이해의 문을 열고 곧장 일본의 경제를 파고 든다. 이책의 나머지 4개 장은 모두 경제를 주제로 한다. 이들 4개의 장은 '일본의 CEO', '일본의 경쟁력', '경제전략', '국가 시스템'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와같은 주제를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막연한 경쟁의식을 기반으로 서술하고 있다. '어떻게 일본으로 부터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회피하여 일본을 이길 것인가?'가 이 책을 집필한 필자의 유일한 관심사로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일본은 일본전문가에게조차 객관적 대상일수가 없었나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아니라 하나의 나라로 일본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일본과 한국은 좋은 이웃이자 협력상대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책의 내용은 일본의 경제를 근간으로 하지만  경제 지표를 통계수치로 제시하고, 분석적으로 들여다보는 난해한 작업을 담고 있지 않다. 이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다. 다시말해 이 책은 경제를 통해 일본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화화된 경제를 소제로 삼고있어 경제 문외한이자 일본 초보자인 나같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그런데 쉽고 가벼운 책의 한계인지 '삼성경제연구소적 편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필자의 일본 이해에 나타나는 몇가지 편향이 눈에 거슬린다. 먼저 '경쟁'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입장은 경제나 기업을 모르는 나같은 독자가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모험을 시도하지 않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현상유지적인 조화를 도모하는 입장'을 나타내는 '요코나라비의식'에 대한 비판이  현 자본주의 사회의 보상체계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미국식 CEO제도에 대한 선망으로 귀결되는 것이 바로 그와같은 필자의 인식의 한계를 나타낸다. 다시말해  "일본 CEO는 미국같은 충분한 보상이 없어 현상유지적이고 모혐을 회피한다'는 필자의 견해는 공감할 수 없다. 필자의  경쟁력 절대주의는 위험하다.  삼성이 재산과 경영권의 세습에 골몰하고, 노조에 대한 원시적 탄압을 자행하면서도 나름의 경쟁력'은 가질 수 있다면, 높은 경쟁력 하나로 모든 악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일본 경제의 비효율성이 삼성이 임원에 대한 성공보수를 수십억씩 주는 그런 제도와 문화가 없어서라면 차라리 비효율이 더 낮지않을까? 기업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임원의 성공보수 수십억은 노조를 탄압하고 탈법을 자행하는 비 윤리적 기업관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경쟁력절대주의' 사고의 한계는 쉽게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경제의 사회성, 경제의 정치성에 대한 고려없이 너무 경쟁에만 매몰되어 있다. 노예제도가 '경쟁력'이 있다고 정당화되고 다시 도입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JAL의 부도, 토요타자동차의 위기, 소니의 정체 등을 바로 이해하고 이를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화두인  '잃어버린 10년'으로 나타나는  일본사회전반의 위기를 이해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적, 논리적 연관성에 대한 일목요연한 이해는 제공되고 있지 않다. 각각의 사실이 나열되어 있을 뿐 경제에 투영된 일본의 전체상을 제시하는데 이 책은 성공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책을 덮으면서도 나 스스로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와같은 이책의 나열식 서술이 가지는 한계때문이다. 이책은 입체적 분석과 종합의 과정을 통해 현제 일본의 전체상을 제시하는데 일정정도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일본사회의 근간이 되는 '신뢰'의 문화, 그리고 최근의 사회적 소비의 증가와, 사회적 기부, 사회적 참여의 증가 등 침체에 빠진 일본이라는 상과 어울리지 않는 많은 현상과 최소 벌이와 소비를 지향하면서도 사회적 기부에 아낌이 없는 신세대의  미니멀라이프 스타일은 가히 오늘의 일본이 과연 위기인가를 의심케 할만치 일본 사회의 긍정성과 건강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어쩌면 일본은 침체에 빠진 것이 아니고 '정상화'된 것이 아닐까? 경제만능주의, 개발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그 어수선함이 '역동성'으로 미화되는 시대가 가고 나면 우리도 어쩌면 '맥'이 빠진것 같은 사회, 외향적 성취보다 내면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내가 일본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몇가지를 정리해 본다. 먼저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개인과 군국주의적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 두번째 서양의 문물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나라면서도 기독교의 침탈로부터 신도와 불교를 지켜낸 일본만의 정신구조가 무엇인지 알고싶다. 세번째 철저한 안전의식, 장인정신에 대한 신봉, 사회의 도덕적 투명성 등에도 불구하고 지금 초래되고 있는 일본경제의 침체는 어디에 기인하는 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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