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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덤으로 얻은 휴가

3일간의 투발루 현지 출장을 마무리하고 도착한 수바공항은 벌써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공항 이미그레이션 직원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고 쉽게 입국 절차를 진행해 주었다. 공항에서 나와 다시 The Grace Road Kitchen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동행했던 일부 민간업체 분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분들은 제일 먼저 난디와 시드니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 올랐고 나와 다른 한명은 다음날 그리고 나머지는 2~3일 더 피지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었다. 떠날 분은 떠나고 아직 업무가 남은 6명만 노보텔 수바 라미 베이에 짐을 풀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투발루에서 진행된 협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지친 몸과 마음에 엄습했다. 편안한 마음에 호텔 풀장에서 몸을 적시고 밀린 빨래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67일 수바를 떠나기 전 반나절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 부지런히 수바 시내를 돌아다닐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첫 목적지로 수바박물관을 선택했다. 박물관을 이루는 정원과 열대 정원수들은 화려했지만 박물관 전시물들은 비교적 소박했다. 그렇지만 시간 내어 방문할 가치는 충분해 수바 여행객이라며 적어도 빼먹지 말고 꼭 방문해야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어딘가 익숙한 차림의 일군의 사람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고, 물어보니 한국 대사 일행이었다.

박물관이 최근 보수 뒤 재개장해서 대사의 축하 방문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대에 절묘하게 우리가 조우하게 된 셈이었다. 대사 일행의 관람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가 별도의 공간에서 투발루 사업의 진행사항을 공유하고 향후 진행될 착공식에 초청을 드렸다. 대사게서 흔쾌히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전체 사업과정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결국 비행기 결항으로 일정이 늘어나면서 일정을 잡을 수 없었던 핵심적인 협의 상대였던 투발루 수산통상부장관과 피지한국대사를 모두 만나 협의 성과를 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세상사가 잠 오묘했다.

대사와 작별뒤 피지 대통령궁과 대법원 등 시내 주요 명소를 주유하고 중심 쇼핑가를 돌아다녔다. 피지 고유 의상인 술루(남자치마)와 하와이안 셔츠를 사서 입고 피지 사람이 다 된양 즐거운 오후시간을 보내며 출장의 긴장을 다 날려 버렸다. 하지만 수바의 날씨는 도착날부터 떠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비가 내렸다. 어쩌면 그래서 더위가 덜해 돌아다니기엔 좋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바 시내 투어에 정신이 없다가 호텔로 돌아와 급히 짐을 싸고 Nausori공항을 향해 가는 길은 퇴근시간 체증으로 모두를 초조하게 했다. 겨우 체크인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고 같이 했던 동료들과 작별하고 우리 일행 두명은 난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난디에 도착하니 저녁늦은 시간이라 급히 난디공항에서 멀지않은 Nalagi Hotel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역시 비가 내리는 옥상에서 칵테일을 한잔 하며 피지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68일 새벽 6시에 조식을 하고 7시에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니, 우리가 탄 비행기는 정확히 9시 20분에 시드니를 향해 이륙했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전에 묵었던 Central Studio Sydney Hotel 로 가는 길에 작은 식물원 같은 가족 레스토랑인 The Grounds of Alexandria에 들러 버거로 점심을 대신했다. 다음날 새벽에 인천행 비행기가 있으니 이날 오후가 자유시간으로 주어졌고 우리는 이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서둘렀다. 사실 조금은 피곤에 지쳐 그냥 호텔에서 쉴까하는 선택지를 두고 한참 고민하기도 했지만 과감히 박차고 호텔 체크인을 하자 마자 바로 시드니의 거리로 나섰다.

말로만 듣고 유투브에서만 보던 시드니 트램을 타고 Circular Quay에 도착, 바로 패리를 타고 Manly Wharf까지 달리며 나는 시드니항의 바람을 맞고, 바다향기에 취해 멀리 아름다운 도시 시드니에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아내와 딸이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anly Wharf에 내려 Manly Art Gallery & Museum을 방문하고, 다시 Manly Beach까지 걸어 젊은이들이 서핑을 하는 해변에서 모레를 밟으며 멀리 남태평양의 수평선을 바라다보았다. 가까이 만리비치가 보이는 Starbucks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패리를 타러 돌아가는 길에 Coles Manly Corso라는 수퍼에 들러 이러저런 선물용 잡동사니를 쇼핑했다.

이번 시드니 방문에서 인상깊었던 한 장면으로  Manly로 가는 패리에 휘날리던  LGBT깃발과 그 너머 하버브릿지에 걸린 원주민 깃발이 호주 국기와 나란히 걸린 모습을 기록에 남기고 싶다. 사실 Aborgine이라는 호주 원주민은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보다 훨씬 가혹한 인종말살 정책의 대상이었다. 19세기까진 거의 말살 정책의 대상이 되다가 20세기 들어와 전쟁 등 필요성에 의해  통합정책이 펼쳐지고 원주민 어린이 10만명 이상이 강제로 탈취되어 백인 가정에 강제입양되어 백인 종교와 문화를 강제주입하는 야만적 역사가  진행되었다. 그 과오를 외면하던 호주정부는 21세기 들어와 겨우 잘못을 시인하고 일부 보상을 실시했다. 그러다보니 이웃 유질랜드 원주민은 인구의 약 9%가량을 차지하지만 호주원주민의 고작 3.3%에 머물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보호 그리고 소수민족에 대한 동등한 대우를  표방하게 된것은 상징적인 역사적 진전이 아닐 수 없다.  

Circular Quay로 돌아가는 배는 고속 패리를 선택했지만 속도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고,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라 멋진 노을에 젖어들 수 있어 좋았다. 항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여객선터미널을 중심으로 시드니 항 일대 전체가 “2023 VIVID SYDNEY”라는 빛의 축제가 진행되고 있어 그야말로 축제의 중심으로 우리는 빨려즐어갔다. 라멘집에 들러 저녁을 먹고 오페라하우스 앞에 있는 Opera Bar에 들러 축제를 즐기는 인파에 묻혀 맥주를 한잔 하는 것으로 시드니의 밤을, 열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69일 새벽 5시에 호텔을 나와 시드니공항에 도착,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10여시간의 비행동안 두편의 영화를 보고 지난 출장길을 회상하고 정리했다. 걱정 았던 출장이 꿈같은 추억을 남기고 끝났다.

 

6. 투발루 출장이 남긴 3가지 기억

화폐단위가 510이 아니고 7달러짜리라니??? 인구 90만의 작은 나라 피지가 유독 럭비에서만은 세계 정상인데 2016년 리오에 이어 2020년 도쿄올림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기념해 발행한 화폐가 있다. 7은 행운의 7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7명이 뛰는 7인 럭비에서 금메달을 딴 걸 기념해서 7달러가 되었다고한다. 그 귀한 피지7달러 화폐를 기념품으로 선물 받았고 귀국후에도 많은 분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수 있었다.

피지 수바에서 투발루 푸나후티 공항을 들어갈 때는 전 산출력된 항공권을 받았는데 다시 나올 때는 수기로 작성된 항공권을 받았다. 평생 처음 받아본 수기 항공권이다. 업무차 만난 투발루 공직자에게 나의 명함을 드리고 나서 기다렸지만 자기들은 명함이 없다며 주지 않았다. 들어보니 인구 만명인 투발루에는 인쇄 기계가 없어 명함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투발루 푸나푸티 라군호텔에 머물 때 하루는 오후 정부 협의를 끝내고 들어와 덥고 피곤한 탓에 잠시 침대에 누워있는데 살포시 호텔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나더니 눈을 떠니 10살이 안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보다 더 놀래 후닥닥 도망가는 아이를 따라 나갔다가 잡지는 않고 호텔 로비에 이야기만 해 주었다. 야간에 3명의 가드가 호텔을 경비한다고 하더니 대낮에도 호텔에 좀도둑이 들었다.

 

7.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번 일정을 함께 한 진용은 참 다양한 분으로 구성되었다. 해수부를 중심으로 농어촌공사가 전체 실무를 주도하고 원양산업협회, 해외수산협력센타, 연안항만() 15분이 같이 했다. 건축, 해양토목, 전기, 기계 전문가 등 20대 청년부터 60대 장년 까지, 정부와 준정부기관 구성원에서 민간인까지, 토목에서 통역까지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어떤 마찰이나 불협화음 없이 함께 돌보며 즐겁게 일정을 수행한 결과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투발루 정부와 공식협의가 있던 날이 나의 61번째 생일이었고, 협의를 마친 저녁 만찬 자리에서 생일서프라이즈를 준비해 준 직원들 덕분에 투발루 수산통상부 Kitiona Tausi 장관부부와 차관, Sam Finikaso 수산청장이 함께 불러주는 투발루 축가를 듣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고 고조된 분위기에 힘입어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하고 우호적인 의사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아름다운 섬나라 투발루 출장길은 신비로운 라군으로 이루어진 남태평양 섬나라를 구경하는 행복한 경험을 얻고, 피지와 시드니에서도 다시 누리기 힘든 경험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과정에서 전체 실무를 이끈 농어촌공사 직원의 헌신과 열정에 탐복 했고, 전체 일정에서 업무 균형을 잡아주고 우호적인 내부 분위기를 이끌어준 해수부의 역할에 감사했다. 출장길에 같이 오르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업무 지원한 직원들의 노고도 잊을 수가 없다. 기대이상의 성과와 더불어 참 값지고 고마운 출장길이었다. 올해 10월 성대한 착공식이자 투발루 국민축제를 시작으로 큰 성과 있는 사업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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