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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질문을 받는다. 도대체 철학이 무엇인지, 뭐 하는 것인지. 하지만 그 질문에는 꼭 아무 쓸모없는 철학 공부는 왜 했냐는 공격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질문 끝에는 꼭 능청스런 표정으로 철학을 [철학관]과 관련 지으며 혹시 사주 팔자 볼 줄 아냐고 물어오곤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들어가 1990년대 초반까지 다녔지만, 나는 그뒤 어떤 '철학적 사유'도 없이 막 사는 삶을 살아왔고, 그나마 학교다니면서 얻었던 빈약한 철학적 지식마저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깡그리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 세월동안 '철학'과 관련해서는 그런 성가신 질문을 모면하는 나만의 메뉴얼을 갖추었을 뿐이다. 일단은 '철학'이 무엇인지 물어오면 웃고 넘기지만 알만한 사람이 그것도 집요하게 추궁해 들어올 때는 일단 상대를 무시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

아이고 무식하기는, 남들 공부할 때 공부 안하고 뭐했는데요?” 

좀 더 편한 관계일 땐 악담도 서슴지 않는다.

니 상판데기 관상을 보니 올해 넘기기 힘들겠다. 우야면 좋노!”

그리곤 이런저런 개론서에서 배웠던 어원적인 분석을 보여주며 [philosophy = philos()+ Sophia()] 철학은 지식에 대한 사랑’, 혹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그래서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니, 세계관이니 그러다가도 안되면 철학자체의 개념 변천사까지 들먹여본다.



인간의 모든 지적인 행위 전체를 아우르며 학문'이 곧 '철학이었던 시대를 지나, 철학에서 자연과학이 분리되고, 다시 심리학마저 철학에서 분리 되면서 철학에 정체성의 위기가 초래되고 철학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과정은 곧 철학의 영역을 축소하는 과정이었다고. 이렇게 말해 보지만 이것은 질문자가 원하는 답이 아니 것이 분명하다.


질문자가 원하는 것은 '철학'의 현실적인 쓰임새가 무엇인지,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도대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나 자신도 그같은 질문자의 물음을 해소해 줄만한 답을 제시하기가 궁색하다는 데 있다.
   
그 궁색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한 철학에 대한 이해, 혹은 나 자신의 태도가 이제와서 다시 철학을 공부하고싶은 나의 욕망을 근거짓는 주춧돌일 수 있다. 왜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철학공부가 다시하고싶은가! 지금 다시 하는 철학공부가 나에게 대단한 깨달음을 주거나, 세상을 바라다보는 통찰력을 가져다 줄 것같지도 않고, 내가 하는 농사, 마을일들, 그리고 직접적으로 나의 생계를 해결하거나 나의 사회적 활동을 북돋아주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더더군다나 이미 학자의 길을 가기에는 멀어져도 한참은 벗어난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 대단한 저술가가 되거나, 하다못해 나름의 '인생철학'을 구축하고 어떤 수준에서든 한명의 사상가나 철학자로 입신할 가능성은 사실 제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철학공부를 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사적인 이유들과 더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철학의 매력때문이다.

먼저 나는 학생시절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공부를 너무 하지 않은 학부시절이 끝나면서 그 사실이 너무 아쉬워 무작정 대학원을 진학했다. '대학원'이 나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없이 오직 나태한 학부시절 못한 공부를 다시 한번 재대로 해 보겠다는 얄팍한 욕구에 이끌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사실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던 7~8개월동안 공부한 것 말고는 대학원 시절 역시 학부시절을 지배했던 게으름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결혼과 여타 사회적 활동까지 부가된 대학원시절은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끝내 학위조차 얻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못다한 지적 탐구에 대한 미련이 그 솔직한 이유의 하나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참 곤혹스럽긴하지만 적은 나이가 아니다. 나이를 잊고 살다가도 동년배의 나온 배와 벗겨진 이마를 마주하거나, 나와 친구들의 다 자라버린 자식을 대하게되면 움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대학진학은 물론 군대를 간 아이들도 하나둘이 아니고, 반갑지않은 청접장이 날아들 날도 얼마남지 않은게 사실이다. 마흔 아홉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참 막연하지만 내삶의 의미를 묻고 싶은 욕구가 마음 한켠에서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허무의 바다인 세상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지만 결코 그 무의미가 삶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느낌들을, 세상의 본질이 허무만을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천착하고 싶은 나이가 된 것 같다. 

사실 서양 철학은 재정립을 거듭하다가 비트겐슈타인에 와서는
가치판단마저 배제되고 철학이 순전히 언어의 의미를 명학히하는 작업으로 국한되기도했지만 사실 철학이 삶의 의미를 묻는 지적 사유가 아니라면
철학은 그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본다. 내가 스스로 이해하는 철학은 인간이 자신의 삶의 근거를 묻는 인식적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사는지, 생물학적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인간적 삶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사는 이유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바로 철학이라는 것이다.

철학을 업으로 삼는 학자들이 이해하는 철학이,
대중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사용하는 철학과 같은 의미일 순 없다.
'철학'을 검색어로 웹검색을 해보면 당장 드러나지만
우리는 일상속에서 수없이 많은 경우에 '철학'이라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정치가들의 '통치철학', 자본가들의 '경영철학', 교사들의 '교육철학' 등등
대중적 의미에서 '철학'은 어떤 판단이나 사고의 저변에 그것을 가능케하는 근본 원리같은 걸 말하는것 같다. 다시말해 학문의 한 분과가 아니라 여전히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학문, 모든 사고, 모든 행위의 저변을 형성하는 인식의 틀이나, 가치의 근거같을것을 '철학'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철학'을 비학문적 도닦기를 포괄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대중들의 뇌리속에서 철학은 '학문'과 '득도'를 다 포괄하는 인간의 인식적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철학을 철저히 학문적 견지에서 이해한다. '득도'는 도인들의 몫이고 나는 득도에 관심이 없다. 나는 단지 명징한 세계인식과 나의 삶을 근거짓는 자연과 사회 속에서, 그리고 인간의 역사속에서 나의 작은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 어떻게 철학공부를 할 것인가에 있다.
사실 대학시절, 학자의 길을 나의 인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때에는 학자만치 시시껄렁한 삶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틀, 교수라는 직업이 나의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옭아매는 걸 허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런 길로 인도하는 방식의 철학공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농사로 밥벌어먹고살아야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철학공부는 좀 달라야한다는 생각이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선은 어쩔수 없이 주제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생각을 정리할 만한 지적 성과도 시간적 여유도 없는 처지에 맞춰 철학사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이어갈 생각이다.

'철학하기'와 '철학자로 살기'가 괴리된 현실에서  '재미'와 지적 허영으로 하는 철학공부를 벗어날 방도를 미리 알지 못한 상태로 시작하는 철학공부가 그 과정에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막연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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