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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내성천-영주댐 순례를 마치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새중동식당'이다. 평범한 외관과 단초로운 메뉴지만 나온 음식에는 시골인심이 듬뿍 담겨있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지율스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걸 봐서 두분의 인연이 깊어보였다.


밥을 먹으며 지율스님과 가벼운 말씀을 몇마디 나눈 것에 불과 했지만 식사를 마치자 나도 모르게 스님의 삶에 대해, 스님의 생각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그분의 삶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 앙상한 뼈대가 승복위로 들어나고 왠지 조금의 걸음에도 지쳐보이시는 모습을 대할 때는 가슴 깊이에서 울컥 생명가진 모든 것의 어쩔 수 없는 안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냥 맛난 것 드시고, 따뜻한 방에서 편히 지내셔도 좋을 분이 어찌 그리도 힘든 삶을 살으시는지 안스럽기도 하고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불경스러움에 놀래기도 했다.


나중에 아내가 지율스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언론에 비친 지율스님은 엄격하고 강인한 인상으로 다가왔는데, 직접 뵈니 너무 가날프고 여린 분이더라. 그런데 어떻게 그런 분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할 수 있었을까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분 자신이 약하고 여리기 때문에 세상의 여리고 약한 뭍 생명들에 대해 무심할 수 없었는가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상주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강이 있고, 마을이 있고, 두어마리 물새가 한가로히 놀고 있는 그런 강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우리를 맞은 강은 그야말로 공사현장 그자체였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인간 마음대로 막고 틀은 물이 고여 썩어가고, 그리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듯, 레미콘차들은 오고가며 계속 콘크리트를 붓고 있었다.
 


모든 자연스러움이 야만이고, 자연은 철저히 정복해야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대중은 그런 권력자의 생각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마찰을 회피하기위해 모른척 외면함으로써 눈앞의 저런 파괴와 뭍생명에 대한 대량 학살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자신도 분노만할뿐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혼동스럽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상주보를 뒤로하고 경천대로 향하는 길에 경천교를 건넜다. 운전을 하지 않는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다리를 걸어서 건넜고, 차를 운전하는 분들은 차를 다리 건너 자전거박물관 옆에 주차를 해 놓고 역시 다리에 올라 모래를 퍼담는 포크레인과 질주하는 덤프트럭이 점령하고 있는 낙동강을 내려다봤다. 모래를 싣은 덤프트럭이 눈으로봐서 시속 7~80k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속도로 강둑을 질주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 바람에 흩날리고 강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의연했지만
고통을 참고 속깊은 울음을 삼키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강은 죽어가는데 경천대를 찾는 상춘객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50대 후반의 남여가 무리지어 와작지껄하게 웃으며 개나리꽃이 만발한 산길을 쓸고 지나갔지만 그들은 고개를 조금만 돌려 보면 보이는 강의 파괴현장에 대해선 무관심해 보였다. 눈 앞의 봄꽃을 즐기면서도 바로 발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대대적인 자연파괴행위에 대해선 무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궁금했다.    


경천대에 올라  비록 상처투성이일망정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그냥 죽어가도록 바라다보고만 있어야하는 현실이 가슴아팠다. 단지 강의 마지막 모습을 내려다 보고 마음속 깊이 그 풍경을 새기고 또 새겼다. 일행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고 지율스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날의 순례는 마무리했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 경천대에 있는 정자를 지났다. 정자는 이름하여 무우정이란다. '걱정이 없다'는 무우정이지만 무우정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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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죽이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도 강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김준기 큐레이터와 일행 10여명이 4대강 공사 현장을 순례하기 위해 봉화엘 왔다. 봉화는 4대강 공사 영역은 아니지만 낙동강의 한 시발점으로 본격적인 4대강 공사현장인 영주의 영주댐과 안동, 그리고 예천, 상주로 이어지는 낙동강 상류 4대강 현장으로 나가는 출발점이다. 토요일 예천 회룡포와 안동 화회를 순례한 일행은 밤이 늦은 시간에 봉화 우리집으로 집결했다. 


미처 낮시간에 합류하지 못해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까지 모여든 분들의 면면은 다채로왔다. 4대강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 이번 순례를 통해 그 실상을 알게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대학원 과정 학생부터, 4대강 현장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싶었던 젊은 작가분들, 그리고 마음으로 아파했지만 4대강 공사 현장까지 와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교수님들까지 함께했다. 예술을 빼고는 공통분모가 많지 않은 분들이 오직 한분의 적극적인 독려로 4대강 사업 현장의 내성천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고 했다.

 

낙동강 답사를 위해 비나리마을에 모여들었지만, 모처럼 산골마을에서 보내는 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준비해 둔 술이 동이 나자 몇몇분들은 왕복 한시간이 걸리는 봉화읍까지 가서 술을 공수해가며 산골마을 비나리의 밤을 밝히기도 했다.
 


술과 함께 새벽을 맞은 분들이지만 하루 일정을 위해 어김없이 아침 7시에 기상을 하고,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내성천을 향했다. 약속장소인 평은초등학교는 한참을 헤맨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울타리에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영주댐 공사와 관련한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적힌 플랭카드와 영주댐공사 시행처에서 걸어놓은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이쁜 시골학교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내성천을 걸으며 봄날의 하루 낮을 보낼 수 있었으면 더 좋겠지만 학교울타리에 걸린 플랭카드만 보고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봄볕 가득한 평은 초등학교 교정을 10여분 거닐다가 이날 우리 일행을 안내할 분들을 맞았다. 이날 같이할 분들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맞이하고 보니 이날 우리 일행을 이끌어주실 분은 천성산지킴이이신 지율스님아니신가. 지율스님과 같이 오신분들은 비디오작가한분과 사진작가 한분 그리고 지금 조계사내에서 진행중인 '스페이스 모레'를 기획한 박은선 작가였다. 이분들 모두 4대강 사업에 맞서 낙동강을 기록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여 낙동강의 원시적 아름다움과 그 야만적 파괴과정마저 기억시키는 일에 몰두해 오고 계신 분들이었다.


낙동강 가까이 살면서도 늘 함께하지 못해 마음 무거웠는데 막상 이분들과 첫 맞남을 가지자마자 오히려 늘 이렇게 같이 해 온양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것은 강과 함께 해 온 분들이 타인의 삶에 대해 가지는 강물같이 넉넉한 포용력과 사랑 때문인 것만 같았다.

 


일행들과 함께 두터운 양말과 신발을 벗고 운곡천이 가마득히 잊어버린 만들어낸 금빛 모래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발바닥에 와닿는 모래의 촉감이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불러내고, 몸속 깊이 숨어버린 자연과의 교감능력을 되살리는 듯 나의 숨은 가빠지고 몸을 나를듯 가벼워졌다. 차가운 강물로 내려서자 온못에 찌릿하게 전해져 오는 한기가 자연이 내게 전해주는 어떤 메시지 같았다. "정신차려라. 너가 사는 꼴의 전체를 둘러봐라. 너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몸이 자연과 닿는 순간 나는 인간 문명의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린 원시적 생명력, 자연적 삶의 건강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율스님은 모래와 물의 이야기를 통해 강의 소중함, 그리고 바로 이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전해주셨다. 지율스님의 꾸밈없는 말씀, 군더더기없이 담백한 말씀엔 깉은 깨달음이 묻어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다. 모래 한알의 소중함, 물 한방울의 신비함을 공감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이 어떠해야하는지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 같았다. 지율스님의 말씀은 단지 MB의 사대강 죽이기에 반대하는것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양식 전반에 대해 되돌아보게하는 울림이 있었다.


모래를 밟고 강물에 발을 적시고, 모래알 한알 한알을 만지고 놀면서 내성천에서 노는 시간은 행복했다. 내성천은 순레의 장소가 아니라 놀이의 장소였다. 그냥 강의 아름다움에 빠져 놀다보면 저절로 그 순간만이라도 생태주의자가 되고 환경운동가가 될 것 같았다. 지율스님이 왜 사람들의 발길을 강으로 모으려고하셨는지 강에 와서 보니 저절로 알것 같았다. 구구절절한 설명도 필요없이 그냥 고즈넉이 흐르는 강을 바라다만 보아도 왜 4대강 사업이 저질러져서는 안될 자연에 대한 가공할 파괴행위이고, 강에 깃들여사는 뭍 생명에 대한 대량학살행위인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을 위해 강을 나오면서 낯익은 분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천경배님이 아니신가. 성공회신부이신 천경배님은  영주지역에서 오롯이 내성천을 지키기위해 삶을 받쳐오고 계신 분이신데 이전에 블로그 등을 통해 인사만 주고 받다가 이날 처음으로 직접 뵙게되었다. 그것도 내성천에서 모래를 딛고 서서 천경배신부님을 뵙게 되니 이것도 무슨 전조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는것만 같았다. 앞으로 자주뵙고 현장에서 같이 할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하면서 작별을 했다.   


내성천에서 발길을 돌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영주댐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봄의 강은 아름다웠고, 강이 길을 따라 흐르는지, 길이 강을 따라 이어지는지 모를만치 길조차 자연스러운 네성천을 따라 금강마을에 도착했다. 금강마을은 영주댐으로 인해 곧 철거되고 수몰될 마을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들이 물속에 잠겨버리다니, 마을에서 삶의 영위해 오던 숱한 사람들의 가슴에 또 얼마만한 상처를 남기고 이 마을이 사라져 갈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마을회관에서 도시에서 할머니를 뵈러 온 아이들이 놀고 있고, 아직 마을 들녘에 경운기 소리가 들리지만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모든것이 다 사라질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보상은 거의 다 끝난것 같았고, 마을은 이미 비어지기 시작했지만 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아직 어디로 가서 살지 마음도 정하고 있질 못하셨다. 도시에 있는 아들집으로 갈지 무몰지 밖에 조성될 이주단지로 들어갈지 아니면 멀리 영주시에 단간방이라도 얻어서 들어가야할지도 마음정하지 못한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만 가득했다. 


금강마을의 문화재인 장씨 고택을 들어서자 고택을 지키고 살고계신 할머니께서 우리를 맞이 하신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게절인데도 한데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찬물에 머리를 감고 계셨다. 급히 일행을 맞아 경황없어 하시면서도 꼿꼿하고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장씨고택의 할머니께서도 아직 어디로 가실지 마음을 못정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냥 사람들이 찾아와서 좋다고만 하시고 번거롭게만 해드리고 집을 나서는 우리 손을 잡으시고 그냥 '맨입'에 보내는게 마음아프다시면서 뭐라도 하나 먹고 가라고 붙드신다.    


할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서 나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할머니의 삶을 포함해 이 모든 것이 댐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질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려오는 포크레인 소리가 마을의 평온을 흔들었지만 그래도 끝내 이 모든 것이 물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의 힘은 우리의 이 소박한 희망들을 무자비하게 꺽어버리겠지...

 

영주댐 공사현장을 둘러보는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고 묵묵히 공사현장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이 참혹한 현장에서 무슨 말인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는 생각에 모두가 공감하는듯 한참의 침묵이 흐른뒤에 언덕을 내려왔다. 오전의 내성천 순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영주댐 공사현장의 참혹함이 대비되어 오랜동안 나의 뇌리에 남아  나의 비겁함을 일깨우는 죽비소리를 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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