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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마신 락시 한잔이 다 얼굴로 갔나보다. 일어나자 마자 얼굴을 만져보니 내 것이 아닌듯 퉁퉁 불어있다. 한잔의 술이 이렇게 대단한 걸까? 아니면 일종의 고산증일까. 티망의 고도는 고작 2,270m인데 벌써 고산증이 올리는 없다. 순전히 술한잔 때문인 것 같다. 아직 고산이라고 하기엔 멀었지만 어제는 그래도 가파른 길때문인지 걷는데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발전에 최대한 짐을 줄여보려고 이것저것 뒤척여보지만 마땅히 버릴 것이 없다. 다 욕심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여정의 초입부터 너무 많이 버렸다가 나중에 필요한 사태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든다.  몇종류의 상비약중 오래된 것은 버리고 쓸만한 잡동사니는 롯지에 남기기로 한다. 그래봤자 무게로 몇백그램이상 되지 않는다. 다시 짐을 뒤척여보니 마지막 짐은 역시 책이다.


[바가바드 기타]!  책표지 안쪽에 1985년에 구입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 인도철학사 수업 때문에 구입한 책인데 작고 가볍다. 그래서 이번 여정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벌써 짐으로 느껴진다. 네팔이 흰두교국가고 인도 문화권이라는 생각에 들고 온 책인데 영 정이 들지 않는다. 저녁 때마다 몇번 펼치기는 했지만 읽히지가 않았다. 읽은지 26년이나 지난 책을 그것도 까마득히 잊고 살던 인도의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우파니샤드, 절대 지혜, 아르주나와 크리쉬나, 브라만과 아트만, 우주, 궁극적 존재... 눈에 들어오는 단어마다 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같이 낯설고 생뚱맞다. 안나푸르나가 있고. 그 언저리에 살아가는 삶들이 있고, 그 산속을 걸으며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생각하는 지금 브라만이나 우주, 궁극의 지혜는 너무 멀고 무겁다. 내 발을 딛는 땅의 구체성, 내 발바닥 감촉의 직접성에 빠져든 내가 지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다는 것은 허영이고 기만으로 느껴졌다, 지금 읽히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다시 읽을 것 같지도 않다. 방을 나서면서 과감하게 탁자에 남겨놓는다. 아마 불쏘시개로 사라지겠지. 아니면 혹시 다음 한국인 트레커가 이 책의 주인이 되고 다시 읽힌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으련만... 지금 나에게 [바그바드기타]는 단지 짐일 뿐이다.


오믈렛과 티베탄 브레드로 아침을 해결하고 티망의 마나슬루 호텔을 나선다. 이내 아침 산그늘 추위에 얼어붙은 티망을 벗어나 밝을 햇살 속에 드러난 따뜻한 마을길과 산길을 걷는다. 이름 모를 마을을 지나고, 소와 개들을 만나고, 그리고 어제처럼 하산중인 사람들을 만난다. 지나는 작은 마을들은 비어있고, 길을 오가는 소와 개는  춥고 외로워 보인다. 겨울철만 비워둔 집인지 마당이 단정하게 정리된 집은 그나마 정감이 느껴진다. 한쪽 벽이 허물어가고, 마당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이 말라가는 집은 흉물스럽다 못해 처연하기조차 하다. 너른 마을을 지나도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사람사는 세상이지만 티망을 지나서부터는 점점 안나푸르나로 빨려 들어가는듯 흰산이 가까워진다. 사진기의 앵글 가득 흰산이 잡히고, 목덜미를 지나는 바람에 냉기가 감돈다.       


'니 하오마!' 한 무리의 하산중인 트레커들과 조우했다. 할머니와 함께 한 가족으로 이루어진 팀같다. 그 할머니는 나를 중국인으로 보았지만 나는 그들의 발음을 듣고 그들이 일본인임을 알아 본다. '곤니찌와!' 나의 인사에 그들은 국적을 물어온다. 그분들이 다시 인사를 정정한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어서 내려 오는 한무리의 사람들과 엉킨다. 중국인 팀은 피상에서 철수 중이란다. 국적을 묻지 않았던 한 팀은 하이캠프에서 이틀을 대기하다가 결국 포기 하고 내려온단다. 서로 행운을 빌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지만 또 얼마가지 않아 하산중인 트레커와 마주친다. '쏘롱라를 지나 오시는 길이세요?' 뻔히 알면서 자꾸 묻는다. 혼자 하산중인 어떤 백인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 마구마구 위의 상황을 쏟아낸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쏘롱라 패스를 포기하고 내려가는 중이고, 위의 상황이 너무 좋지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 하산중이지만 그래도 반대편에서 쏘롱라를 넘어 온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도 쏘롱라를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없다. 올라가는 무리와 내려가는 무리가 뒤엉키고 나면 다시 올라가는 사람들끼리 얻은 정보를 나눈다. 결론은 연초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트레커 1명만이 유일하게 쏘롱라를 패스했다는 것이다. 갈수록 절망적이다.  


티망을 출발한지 2시간을 조금 지나,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붉은 깃발이 걸려있고, 마을 초입의 건물에 [HILALI AUTONOMOUS STATE]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안나푸르나 산자락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심어지고 자라고 있었던 흔적들이다. '자치'라는 단어를 보자 뜬금없이 나의 가슴도 뜨거워진다. '중앙'권력을 배제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해 나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은 아마 '자본'과 '국가'가 소멸하는 먼 훗날까지 인류의 가슴에 불을 지필 것이다. 물론 안나푸르나 산자락 마을의 '자치'와 '해방'은 추상적인 꿈이 아니라 지주의 횡포, 폐습의 억압 등 현실적인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꿈과 열정이  마오주의 분파 등 좌파 정당으로 모아져 네팔은 큰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지금도 그 여진이 진행중이다.  마오주의 공산당이 합법정당화되고  집권에 성공하면서, 1997년에 시작된 내전이 2006년에 종식되었다는 네팔. 이어서 2008년에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이 폐지 되어 네팔은 해방되었지만 '정권획득'보다 더 심원한 문제는 부정부패의 척결, 기득권 일소, 가난으로부터의 국민의 구제였다. 가난한 소국 네팔이 이 아름다운 자연만치 정의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의 해결은 지연되고 40여개 이상의 정당이 난립한 정치는 혼란스럽단다. 그와 같은 현실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일부좌파는 나름의 자치구, 해방구를 기반으로 현정부에 저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5,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총소리는 사라졌지만 인민의 삶을 옥죄던 근원적인 악이었던 부패하고 무능하고 폭압적인 왕정이 폐지 되었을 뿐 그로 인해 야기된 네팔의 사회적 과제들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어 보인다. 
 


차메에 도착한 것이 11시 30분. 차메는 마냥주의 HeadQuart란다. 마을의 초입에 안전한 식수를 유상으로 공급하는 [SAFE DRINKING WATER STATION]이 있고, 얼마 안가서 일종의 보건소인지 사설 병원인지 [HAMRO MEDICAL HALL]이 있다. 이들 역시 계절탓인지 문이 굳게 잠겨있다. 초라한 [MEDICAL HALL]의 외양이 이곳 의료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시가지로 접어드니 일종의 농업기술센타, 경찰서가 있고 은행도 있다. 은행은 무장한 군인이 길 양쪽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그만치 치안이 불안전하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아직 내전의 여진이 남아 있는 걸까?


어제 딸에서 티망까지 오르는데 조금 힘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차메까지만 오르고 남는 시간을 쉬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부리고 바로 커리라이스를 주문한뒤 차메의 거리를 나섰다. 차메는 베시사하르를 떠난 뒤 만난 제일 큰 마을이다. 사실 마낭주의 수도라지만 그렇다고 도시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마을의 규모를 넘지 않는다. 차메는 단지 조금 큰 마을인 셈이다. 한 주의 행정 중심답게 있을 것은 다 있지만 산골마을의 정취를 헤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을의 곰파를 돌고,  마을길을 따라 마니차를 돌리며 온천이 있다는 파샹의 말을 듣고 찾아나섰다. 차메의 끝단,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을 건너 온천이 있단다. 막상 다리를 건너 온천을 가리키는 표지를 따라가니 온천 시설이 아니라 그냥 강둑 여기저기 바위 밑에서 온수가 솟아오르고 온수가 솟는 바위마다 서너명씩 모여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는 그야말로 노천온천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치는 큰 바위위에 앉아 안나푸르나의 눈이 녹아 내린 찬 강물과 안나푸르나의 땅속에서 솟은 뜨거운 물이 만나는 진풍경을 바라다본다.


 롯지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머무는 롯지 바로 옆 건물 2층에 여성인권보호센타가 있다. 작은 빨래를 하고, 배낭의 짐을 정리하다보니 우리가 가진 짐을 줄이면서 작은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나온다. 이번 여정을 떠나면서 집에 뒹굴던 묵은 상비약을  챙겨왔는데, 또 한의사 친구와 약사친구가 집나선 친구를 위해 챙겨준 상비약까지 필요이상의 약을 가져오게 되었다.  오늘 [여성인권보호센타] 를 보고, 마을 초입의 보건소를 생각해보니 우리가 가진 상비약을 나눈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파샹과 아내는 너무 많이 가져온 물휴지와 상비약을 들고 여성인권센타를 다녀왔다. 아내는 용도와 투약법을 설명하기에 힘이 들었지만 그들의 정말 고마워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단다. 기부는 작은 것을 나누고 큰 마음을 같이하는 것인가보다.



차메에서 첫 롯지다운 롯지를 만났다. 위로 올라올수록 롯지의 시설은 좋아지고 트레커의 발길이 잦다. 길을 걷기 시작한지 5일만에 한국인 트레커를 만나고, 다이닝룸에서 난로불을 사이에두고 자리가 마련되었다. 독일인 3명, 프랑스인 1명, 한국인 5명, 그리고 국적이 기억나지 않는 서너명의 백인들...그리고 몇명의 네팔리가이드와 포터가 둘러 앉으니 거의 국제적 모임이 된 셈이다. 짧은 영어 탓에 숯한 대화의 주제는 포기되고 대화의 주제는 하나, 우리 모두 쏘롱라를 건너갈 수 있을까 없을까다.  오직 인도서 인턴과정을 마치고 여행길에 올랐다는 대구청년만이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독일인들은 원래 과묵한 성격탓인지 서먹한 자리가 이어지다 결국 자국인끼리의 수다로 모아진다. 특수학교 선생님, 대학생인 제주 아가씨 이렇게 모두 오랜만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 길떠난 자의 설레임을 서로 나누다 보니 여행의 참맛이 느껴진다.


장작 난로만치나 훈훈한 저녁시간을 가지고 룸으로 돌아오니 하루의 피로가 몰려온다. 잠에 골아 떨어져 다시 눈을 떠니 새벽 2시 50분. 초저녁 9시에 잠이 들어 새벽 3시전에 눈을 뜨니 새벽 시간이 너무길다. 모처럼 여행경비를 정리하고 일기를 쓰고 싶어 안경을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온방의 짐을 다 뒤적이다 보이질 않는 일기를 쓰고 다시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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