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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잠들지도 못했는데 새벽이 다가오자 수선한 발걸음이 더 이상 누워있지도 못할 정도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스파 온 에어'를 나와  따끈한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티켓을 끊고 검색대를 지나 바로 면세구역으로 들어갔다. 면세 구역에서 면세혜택을 전혀 보지 못한채, 2시간을 배회하며 현대문명의 꽃, 한국자본주의의 기념탑 '인천국제공항'을 만끽했다. '공항'은 인간 욕망의 결정체다. 항공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자본'은 세상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했고, 물질적 정신적 장악력을 키워나왔을 것이다.  인천 국제 공항은
루이비통, 샤넬, 같은 명품매장과 샘소나이트 그리고  스타벅스 같은 자본주의의 상징들을 집약된 공간안에 품고 있었다. 말로만 듣고 가까이 해 보지 못한 명품 매장들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상품을 지척에서 살펴보는 재미는 사실 박물관의 낡은 유물들을 관람하기 보다 더 흥미로왔다. '샤넬 백'이 가지고 있는 어떤 요소가 그 상품을 '명품'이게 하는지 당연히 잘 알수 없었지만 반자본, 반문명의 땅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명품백을 감상하는 마음은 자못 비장하기 조차 했다.

비행은 늘 그렇듯, 지루하고, 답답하고, 그리고 긴장되기 조차한다. 적지않은 비행기 탑승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발이 땅에서 떨어져 하늘높이 나르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은 곧 도착할 낯선 땅에 대한 설레임과 교차하면서 육체적 피로를 배가했다. 다행히 같은 열의 창가쪽 승객인 네팔 청년과 아주 짧고 간단한 대화로 지루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죽일 수 있었다. 집은 포카라고 캐나다에 유학중인 이 청년은 캐나다에서 직항이 없어 한국을 경유해 다시 네팔로 들어가는 길이란다. 캐나다 유학중인 네팔리라면 네팔에서 내놓으라하는 부잣집 아드님일 텐데 예의바르고 순박해 보였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 청년은 내가 만난 첫 네팔리로 아마 오래 기억될 것 같다.  

7시간의 비행끝에 멀리 히말라야연봉이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육체적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비행기의 오른쪽 지평선 끝에 히말라야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승객들은 카메라를 꺼내고 오른쪽 창가로 다가서려 했지만 비행기 내부 공간이 그렇듯 카메라를 창유리에 들여될만한 곳은 별로 없었다. 복도쪽 좌석에 앉아 창가 승객의 양해를 구해 몇번의 셔터를 눌렀지만 나의 카메라 줌은 먼 히말라야의 자태를 당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재대로 촛점을 맞출만한 경황도 없었다.



도착한 카트만두의 트리부탄국제공항은 소문대로 만만디다. 몇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비자 발급을 기다리며 길다란 줄을 만들고 선 승객들에 아랑곳하지않고 유유자적이다. 그렇다고 비자발급이 안될 것도 아니고 나 역시 '빨리빨리'정신을 버리고 바로 현지화된다.

비자 발급만 늑장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짐을 찾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지루한 것은 물론 허리통증을 느낄만치 기다린뒤 배낭을 찾고 공항을 나섰다. 택시와 찦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지만 예약된 숙소 자이언트 민박에서 픽업을 나온 분과 쉽게 만날 수 있었고 다른 여행객 몇분과 함께 낯선 카트만두 거리를 달려 겅그부 '까따리 바자르'로 향했다. 픽업을 나오신 분은 Lal Prasad Bhattarai씨라고 한국에서 노동자로 11년을 보낸 동생이 있으시단다. 그 분 역시 동생 덕분에 한국을 여러번 오가며 적지않은 세월동안 노동자 생활을 하셨는데 그 경헝을 밑천으로 J Vill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신다고 했다. 한국말은 거의 한국인과 다를바 없을 수준이고 착하고 친절한 인상이셨다.

카트만두 거리는 무질서했고, 지저분했고, 경적 소리로 씨끄럽고 먼지에 목과 눈이 따가웠다. 중앙선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신호등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도로 여기저기에 들어누운 소와 마음껏 돌아다니는 개, 그리고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곡예 운전하는 택시, 그 사이를 비집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로 카트만두 거리는 아수라장이다.

하지만 경적소리에 누구도 놀라지 않아 보였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거리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앉아서도 얼굴찡그리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간혹 마스크를 사용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지에 개의치 않아 보였고, 도로를 차지한 소나 개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거나 곡예를 부리듯 차를 비켜 달려나가는 오토바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순간 카트만두는 문명의 산물인 '신경증'에서 자유로운 도시로 다가왔다. 계속 눌러되는 경적은 경계용, 협박용이 아니라 '나 당신을 의식한다', '인식한다'는 증표에 다름아니었다. 무관심과 무시로 익명의 관계라는 늪속에서 외로움에 지쳐가는 현대인의 삶이 왜 문명적이고 힘이 센지 순각 혼동스러웠다. 저들의 삶과 우리의 문명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놓여 있음에도 우리는 동일한 잣대로 그들의 삶을 평가절하고 있는 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심연을 넘어 점령하고 포섭해 들어오는 자본- 펩시콜라, 삼성, 소니, 현대 등의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 이는 도심의 시야를 점령하기 시작한 자본의 힘은 강했다. 가난은 불편하고, 약하고, 그리고 끝내 '악'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이데올로기 전선에서 이미 자본은 승리하고 있었다.


상념에 빠져 있을 새가 없이 차는 이구대장님이 운영하고 있는 자이언트민박에 도착했다. 호인이시고 친절하신 이구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휴식을 취한 뒤, 푸짐한 저녁을 대접받고 담배를 사기위해 숙소앞 골목길을 나와 담배가게를 찾았다. 처음으로 아무런 보호막없이 타국을 느끼며 깜깜한 거리를 잠시 헤맨뒤 작은 등을 밝히고 있는 구멍가게에 들어섰다.  호의와 겸손함이 몸에 베인 것 같은 주인과 혹시라도 속거나 무엇이라도 잃어버리까봐 노심초사하는 한국인이 만나 230루피와 담배를 주고 받았다. 내가 "시가렛!"을 외치자 그는 말보루를 내 보였지만, 나는 다시 호기롭게 "네팔 시카렛!" 을 외쳤고 '태양'을 의미하는 Surya를 두갑 받았다. 


숙소에서 네팔 담배를 피우며,  '모택동주의자'가 집권을 하고 다시 공산당이 다수당으로 연합정부를 주도한다는 이 아름다운 여신의 땅이 자본의 침탈과 지배로 부터 영워히 자유롭기를, 그리고 우리 부부 필생의 여정인 한달여의 안나푸르나 라운드가 순탄하기를 또한 빌며 카트만두에서의 첫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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