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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내성천-영주댐 순례를 마치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새중동식당'이다. 평범한 외관과 단초로운 메뉴지만 나온 음식에는 시골인심이 듬뿍 담겨있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지율스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걸 봐서 두분의 인연이 깊어보였다.


밥을 먹으며 지율스님과 가벼운 말씀을 몇마디 나눈 것에 불과 했지만 식사를 마치자 나도 모르게 스님의 삶에 대해, 스님의 생각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그분의 삶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 앙상한 뼈대가 승복위로 들어나고 왠지 조금의 걸음에도 지쳐보이시는 모습을 대할 때는 가슴 깊이에서 울컥 생명가진 모든 것의 어쩔 수 없는 안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냥 맛난 것 드시고, 따뜻한 방에서 편히 지내셔도 좋을 분이 어찌 그리도 힘든 삶을 살으시는지 안스럽기도 하고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불경스러움에 놀래기도 했다.


나중에 아내가 지율스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언론에 비친 지율스님은 엄격하고 강인한 인상으로 다가왔는데, 직접 뵈니 너무 가날프고 여린 분이더라. 그런데 어떻게 그런 분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할 수 있었을까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분 자신이 약하고 여리기 때문에 세상의 여리고 약한 뭍 생명들에 대해 무심할 수 없었는가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상주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강이 있고, 마을이 있고, 두어마리 물새가 한가로히 놀고 있는 그런 강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우리를 맞은 강은 그야말로 공사현장 그자체였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인간 마음대로 막고 틀은 물이 고여 썩어가고, 그리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듯, 레미콘차들은 오고가며 계속 콘크리트를 붓고 있었다.
 


모든 자연스러움이 야만이고, 자연은 철저히 정복해야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대중은 그런 권력자의 생각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마찰을 회피하기위해 모른척 외면함으로써 눈앞의 저런 파괴와 뭍생명에 대한 대량 학살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자신도 분노만할뿐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혼동스럽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상주보를 뒤로하고 경천대로 향하는 길에 경천교를 건넜다. 운전을 하지 않는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다리를 걸어서 건넜고, 차를 운전하는 분들은 차를 다리 건너 자전거박물관 옆에 주차를 해 놓고 역시 다리에 올라 모래를 퍼담는 포크레인과 질주하는 덤프트럭이 점령하고 있는 낙동강을 내려다봤다. 모래를 싣은 덤프트럭이 눈으로봐서 시속 7~80k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속도로 강둑을 질주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 바람에 흩날리고 강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의연했지만
고통을 참고 속깊은 울음을 삼키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강은 죽어가는데 경천대를 찾는 상춘객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50대 후반의 남여가 무리지어 와작지껄하게 웃으며 개나리꽃이 만발한 산길을 쓸고 지나갔지만 그들은 고개를 조금만 돌려 보면 보이는 강의 파괴현장에 대해선 무관심해 보였다. 눈 앞의 봄꽃을 즐기면서도 바로 발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대대적인 자연파괴행위에 대해선 무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궁금했다.    


경천대에 올라  비록 상처투성이일망정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그냥 죽어가도록 바라다보고만 있어야하는 현실이 가슴아팠다. 단지 강의 마지막 모습을 내려다 보고 마음속 깊이 그 풍경을 새기고 또 새겼다. 일행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고 지율스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날의 순례는 마무리했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 경천대에 있는 정자를 지났다. 정자는 이름하여 무우정이란다. '걱정이 없다'는 무우정이지만 무우정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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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죽이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도 강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김준기 큐레이터와 일행 10여명이 4대강 공사 현장을 순례하기 위해 봉화엘 왔다. 봉화는 4대강 공사 영역은 아니지만 낙동강의 한 시발점으로 본격적인 4대강 공사현장인 영주의 영주댐과 안동, 그리고 예천, 상주로 이어지는 낙동강 상류 4대강 현장으로 나가는 출발점이다. 토요일 예천 회룡포와 안동 화회를 순례한 일행은 밤이 늦은 시간에 봉화 우리집으로 집결했다. 


미처 낮시간에 합류하지 못해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까지 모여든 분들의 면면은 다채로왔다. 4대강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 이번 순례를 통해 그 실상을 알게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대학원 과정 학생부터, 4대강 현장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싶었던 젊은 작가분들, 그리고 마음으로 아파했지만 4대강 공사 현장까지 와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교수님들까지 함께했다. 예술을 빼고는 공통분모가 많지 않은 분들이 오직 한분의 적극적인 독려로 4대강 사업 현장의 내성천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고 했다.

 

낙동강 답사를 위해 비나리마을에 모여들었지만, 모처럼 산골마을에서 보내는 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준비해 둔 술이 동이 나자 몇몇분들은 왕복 한시간이 걸리는 봉화읍까지 가서 술을 공수해가며 산골마을 비나리의 밤을 밝히기도 했다.
 


술과 함께 새벽을 맞은 분들이지만 하루 일정을 위해 어김없이 아침 7시에 기상을 하고,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내성천을 향했다. 약속장소인 평은초등학교는 한참을 헤맨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울타리에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영주댐 공사와 관련한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적힌 플랭카드와 영주댐공사 시행처에서 걸어놓은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이쁜 시골학교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내성천을 걸으며 봄날의 하루 낮을 보낼 수 있었으면 더 좋겠지만 학교울타리에 걸린 플랭카드만 보고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봄볕 가득한 평은 초등학교 교정을 10여분 거닐다가 이날 우리 일행을 안내할 분들을 맞았다. 이날 같이할 분들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맞이하고 보니 이날 우리 일행을 이끌어주실 분은 천성산지킴이이신 지율스님아니신가. 지율스님과 같이 오신분들은 비디오작가한분과 사진작가 한분 그리고 지금 조계사내에서 진행중인 '스페이스 모레'를 기획한 박은선 작가였다. 이분들 모두 4대강 사업에 맞서 낙동강을 기록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여 낙동강의 원시적 아름다움과 그 야만적 파괴과정마저 기억시키는 일에 몰두해 오고 계신 분들이었다.


낙동강 가까이 살면서도 늘 함께하지 못해 마음 무거웠는데 막상 이분들과 첫 맞남을 가지자마자 오히려 늘 이렇게 같이 해 온양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것은 강과 함께 해 온 분들이 타인의 삶에 대해 가지는 강물같이 넉넉한 포용력과 사랑 때문인 것만 같았다.

 


일행들과 함께 두터운 양말과 신발을 벗고 운곡천이 가마득히 잊어버린 만들어낸 금빛 모래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발바닥에 와닿는 모래의 촉감이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불러내고, 몸속 깊이 숨어버린 자연과의 교감능력을 되살리는 듯 나의 숨은 가빠지고 몸을 나를듯 가벼워졌다. 차가운 강물로 내려서자 온못에 찌릿하게 전해져 오는 한기가 자연이 내게 전해주는 어떤 메시지 같았다. "정신차려라. 너가 사는 꼴의 전체를 둘러봐라. 너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몸이 자연과 닿는 순간 나는 인간 문명의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린 원시적 생명력, 자연적 삶의 건강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율스님은 모래와 물의 이야기를 통해 강의 소중함, 그리고 바로 이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전해주셨다. 지율스님의 꾸밈없는 말씀, 군더더기없이 담백한 말씀엔 깉은 깨달음이 묻어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다. 모래 한알의 소중함, 물 한방울의 신비함을 공감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이 어떠해야하는지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 같았다. 지율스님의 말씀은 단지 MB의 사대강 죽이기에 반대하는것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양식 전반에 대해 되돌아보게하는 울림이 있었다.


모래를 밟고 강물에 발을 적시고, 모래알 한알 한알을 만지고 놀면서 내성천에서 노는 시간은 행복했다. 내성천은 순레의 장소가 아니라 놀이의 장소였다. 그냥 강의 아름다움에 빠져 놀다보면 저절로 그 순간만이라도 생태주의자가 되고 환경운동가가 될 것 같았다. 지율스님이 왜 사람들의 발길을 강으로 모으려고하셨는지 강에 와서 보니 저절로 알것 같았다. 구구절절한 설명도 필요없이 그냥 고즈넉이 흐르는 강을 바라다만 보아도 왜 4대강 사업이 저질러져서는 안될 자연에 대한 가공할 파괴행위이고, 강에 깃들여사는 뭍 생명에 대한 대량학살행위인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을 위해 강을 나오면서 낯익은 분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천경배님이 아니신가. 성공회신부이신 천경배님은  영주지역에서 오롯이 내성천을 지키기위해 삶을 받쳐오고 계신 분이신데 이전에 블로그 등을 통해 인사만 주고 받다가 이날 처음으로 직접 뵙게되었다. 그것도 내성천에서 모래를 딛고 서서 천경배신부님을 뵙게 되니 이것도 무슨 전조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는것만 같았다. 앞으로 자주뵙고 현장에서 같이 할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하면서 작별을 했다.   


내성천에서 발길을 돌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영주댐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봄의 강은 아름다웠고, 강이 길을 따라 흐르는지, 길이 강을 따라 이어지는지 모를만치 길조차 자연스러운 네성천을 따라 금강마을에 도착했다. 금강마을은 영주댐으로 인해 곧 철거되고 수몰될 마을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들이 물속에 잠겨버리다니, 마을에서 삶의 영위해 오던 숱한 사람들의 가슴에 또 얼마만한 상처를 남기고 이 마을이 사라져 갈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마을회관에서 도시에서 할머니를 뵈러 온 아이들이 놀고 있고, 아직 마을 들녘에 경운기 소리가 들리지만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모든것이 다 사라질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보상은 거의 다 끝난것 같았고, 마을은 이미 비어지기 시작했지만 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아직 어디로 가서 살지 마음도 정하고 있질 못하셨다. 도시에 있는 아들집으로 갈지 무몰지 밖에 조성될 이주단지로 들어갈지 아니면 멀리 영주시에 단간방이라도 얻어서 들어가야할지도 마음정하지 못한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만 가득했다. 


금강마을의 문화재인 장씨 고택을 들어서자 고택을 지키고 살고계신 할머니께서 우리를 맞이 하신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게절인데도 한데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찬물에 머리를 감고 계셨다. 급히 일행을 맞아 경황없어 하시면서도 꼿꼿하고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장씨고택의 할머니께서도 아직 어디로 가실지 마음을 못정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냥 사람들이 찾아와서 좋다고만 하시고 번거롭게만 해드리고 집을 나서는 우리 손을 잡으시고 그냥 '맨입'에 보내는게 마음아프다시면서 뭐라도 하나 먹고 가라고 붙드신다.    


할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서 나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할머니의 삶을 포함해 이 모든 것이 댐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질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려오는 포크레인 소리가 마을의 평온을 흔들었지만 그래도 끝내 이 모든 것이 물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의 힘은 우리의 이 소박한 희망들을 무자비하게 꺽어버리겠지...

 

영주댐 공사현장을 둘러보는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고 묵묵히 공사현장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이 참혹한 현장에서 무슨 말인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는 생각에 모두가 공감하는듯 한참의 침묵이 흐른뒤에 언덕을 내려왔다. 오전의 내성천 순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영주댐 공사현장의 참혹함이 대비되어 오랜동안 나의 뇌리에 남아  나의 비겁함을 일깨우는 죽비소리를 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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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은 환경적 재앙을 넘어 사회문화적 재앙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는 신성과 왕권의 완전한 결합을 나타내는 절대 권력의 상징물이었다. 진시황은 중국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의 권능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자금성을 짓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유사 이래로 이렇게 대규모 토목공사는 인간의 물질적 생활상의 필요성에서 뿐 아니라 지배자의 권능을 과시하고 강화하는 상징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루어져 왔다. 근대사회에 들어와 토목건축 기술 등이 폭발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마천루와 도로 등이 근대화, 문명화의 상징으로 지배 권력의 권능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등장했다. '댐'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토목공사 역시 현대 과학기술의 총화로 인간의 물질적 요구와 더불어 '문명화'의 상징이 필요한 곳에서 이루어져 지배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하나의 액세서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규모 토목 건축물은 '우리 같은 후진 사회에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이렇게 대단한 진보를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적 선전탑 노릇을 한 것이다. 히틀러가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개발독재자인 박정희가 그랬다. 자연을 '미개'로 폄하하고, 무조건적인 개발을 근대화, 문명화로 신봉하던 서구의 도구적 합리성이 독재자 박정희를 만나 한국식 개발독재로 자행되었던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도는지 21세기 한국에 다시 개발독재의 바람이 분다. 이른바 '사대강 죽이기 사업'으로 대표되는 MB표 개발 독재는 국토의 대동맥마다 포클레인을 들이대고 콘크리트로 쳐 바르고 있다. 강은 인공적 수로가 되고, 물은 자연스런 흐름을 잃고 '합리화'되어 토막토막 잘리어 보에 막히고 댐에 갇히고 있다. 그런데 사대강 삽질은 사대강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활한 개발독재의 망령에 고무되어 토건자본이 설쳐 되기 시작했다. 봉화 운곡천에 산업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시도하는가 하면, 지역주민의 반대와 댐의 효율성의 문제 등으로 보류되었던 '송리원댐'이 MB표 개박독재를 만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운곡천 산업폐기장은 주민들의 결사반대로 다행히 저지되었지만, 영주댐은 ‘댐 건설’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개발주의의 환상에 빠진 지역주민의 무관심속에서 일사천리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주의 경계 안에 세워지는 댐은 당연히 영주의 지역성을 드러내어야 한다며 '영주댐'이라는 명칭으로 개명까지 할만치 토건세력은 의기양양 하다. 지역의 경계 안에 개발의 상징인 댐이 건설된다는데 대해 지자체가 갖는 얼토당토않은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과연 영주댐이 영주시민의 자랑일 수 있을까? 과연 영주댐이 영주 지역사회에 어떤 측면에서든 긍정적인 물질적 효용을 가져다줄까?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댐으로 이집트 나일 강의 에스원 댐이 있다. 에스원 댐은 1960년에서 1970년에 걸쳐 건설된 댐의 용량은 세계 제2위인 1690억 톤에 이른다. 에스원 댐은 이집트 현대화와 개발의 상징물로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이집트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조차 했다. 하지만 댐 건설 후에 댐 유역 주민들 사이에 수질계통의 감염증이 급격히 증가하고, 주흡혈충증(住吸血蟲症)이 만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홍수로 쓸려나가던 염분이 출구를 잃어 관개 농지 35%가 염해를 입고, 나일 강이 운반해내던 연간 1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줄어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피해는 이렇게 육지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다. 나일 강 인근의 해안은 침식되어 지중해 연안에서 연간 1만 8천 톤이던 정어리 어획량이 고작 5천 톤으로 감소되기도 했다. 이렇게 아프리카 개발과 산업화의 상징인 에스원 댐은 이제 무분별한 수자원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의 대표적 사례가 되어버렸다.

최근에 중국은 양쯔강에 샨샤댐을 건설했다. 샨샤댐은 댐의 길이가 2309m, 높이가 185m, 제방 두께가 15m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댐에 물이차면 우리나라 소양댐 저수량의 13배가 넘는, 무려 4백억 톤 규모의 거대한 인공호수가 형성되게 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공 댐을 건설하는데 있어 MB의 사대강 사업과는 비교되지 않은 만치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와 절차를 밟았다. 샨샤댐은 1918년 쑨원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대 국민당 정부에 의해 전문가들이 초빙되어 검토에 들어가고, 몇 번의 중단과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1984년에야 댐 건설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전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수년간에 걸쳐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심도 깊은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 비로서 1988년에야 최종결론을 도출했다고 한다. 이후 2006년 완공되었으니 샨샤댐 건설에 무려 10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샨샤댐은 가장 최근의 인공적 환경재앙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일단 댐 건설로 120만 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이주해야만 했고, 중국의 주요한 역사 유물이 엄청나게 수몰되었다. 그리고 무려400억 톤에 달하는 댐의 저수량은 지구지표의 특정지점에 국부적인 압력을 가하게 되고 이는 지압의 변동을 초래하여 지진을 일으키고 나아가 지구의 자전축의 변화까지 초래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 중국에 빈발하는 지진과 이로 인한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는 바로 샨샤댐의 건설과 무관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학자와 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황해의 유입수량이 줄어들어 바다의 염도가 올라가 바다식생이 변화하고 있고, 샨샤 지역의 기온이 상승하여 고비사막 등 만주벌에 증기 공급이 막혀 황사발생이 증가하고 있다. 샨샤댐이 완공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숱한 환경피해가 발행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치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댐 찬성론자들은 댐을 통해 물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댐을 통해 수해도 조절하고, 덤으로 댐 주변을 관광지화 해서 지역사회의 경제를 윤택하게 하고, 댐 자체의 근무 인력으로 일자리가 증가하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영주댐 건설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영주댐 같은 중규모 댐은 샨샤댐 같은 대규모 댐이 초래하는 환경재앙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사실 일부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는 하다.

영주댐은 2009년 7월에 착공하여 2014년에 완공예정이다. 총 예산 8380억 원을 들여 댐 길이 380m에 높이 50m, 그리고 저수량은 1억8100만 톤이 될 예정이란다. 인근 안동댐에 비해 1/7에 불과한 영주댐은 연간 2억 톤의 용수를 확보하여 92%를 하천유지 용수로 흘러 보내고, 1000만 톤을 생활용수, 공업용수 영주 등 인근 도시에 공급할 예정으로 그 과정에서 연 약 16Gwh의 전기도 생산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긍정적 효과는 미미하고 그 부작용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벌써 영주댐 수몰 예정지는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등져야 할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댐의 수위가 올라옴에 따라 총 511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가야 한다. 물론 금전적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쩌면 그 지긋지긋한 농사를 때려치울 수 있어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수몰 예정지의 땅은 이미 많은 면적이 땅 투기 꾼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고 수몰 농민의 80%가량이 소작농이다. 보상비라는 돈을 움켜지는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니다.

댐건설로 지역에 가져올 경제적 효과도 명확하지 않다. 일단 수몰예정지의 마을공동체가 파괴되고 주민들이 떠나고 나면 그만치 지역의 인구는 감소한다. 인구가 감소하는 만치 지역경제가 입는 손실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토목공사를 통해 지역경제가 입는 효과는 얼마나 될까? 이것 역시 미지수다. 건설기간 내에 일시적으로 일정한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지만 이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고, 건설 후 댐 관리 인원만치 일자리가 생겨나게 되지만 댐 건설로 인한 피해에 견준다면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댐 인근 지역 농지에 주는 피해는 산정하기도 쉽지 않을 만치 심각하다. 영주댐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에서 추정하는 예상 피해액은 연 1,000억 원 이상이다. 그 정도의 피해를 상쇄하고 남을 만치 영주댐건설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가 클까? 시민은 지방권력과 토건세력들이 제시하는 자기들만의 셈법을 믿을 수 없다.

이미 영주댐 공사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정확이 공정의 몇%가 진행되었는지 모르지만 댐 건설지 일대의 강과 산을 포클레인으로 전부 파헤쳐놓았고 마을은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MB식 밀어붙이기가 가져올 환경재앙이 공포스럽다. 댐 찬성론자들은 댐의 규모가 작아 환경영향이 미미한 것처럼 호도하지만 댐이 크면 큰 대로, 댐이 작으면 작은 대로 환경변화는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한 재앙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다.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소수력댐인 [명호댐]은 규모면에서 얼마 되지 않지만 댐건설이후 명호 이나리강의 수질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지역주민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투명하던 강바닥에 청태가 끼고 한 번씩 댐이 방류라도 하면 흙탕물이 강 전체를 뒤덮는다. 당연히 강에 서식하던 각종 민물고기 등의 식생도 엄청나게 바뀌었고 댐 유역을 중심으로 안개가 빈발하여 교통장애와 농작물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 조류가 댐건설에서 댐 해체와 원상복구로 바뀌어가는 시점에 이루어지는 영주댐 건설은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임에도 불구하고 지방권력이 강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영주댐 건설은 MB식 사대강사업과 동일선상에서 환경적 재앙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사대강 사업과 영주댐 건설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풍토는 또한 결과적으로 다시 그와 같은 풍토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영주댐 건설을 백지화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영주댐이 가져올 환경재앙을 넘어 그와 같은 사회문화적 재앙에 주목한다.

먼저 영주댐 사업의 시행과정에서 드러나는 개발독재의 망령이다. 수몰지구 문화재의 현상변경 절차를 무시하거나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하는 등 불법과 탈법적 방법을 총동원해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개발독재자가 되어가는 지방권력의 추악한 모습을 본다. 영주댐건설 같은 주요한 사안에 대한 지역민의 민의는 철저히 무시되고, 지방권력은 독재자의 범죄행위에 가까운 행태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철저히 토건자본에 봉사하기 위해 자행되는 국토 유린은 지방권력의 배후에 있는 박정희와 히틀러의 모습을 드러내준다. 유사 이래 한반도 최대의 환경재앙이 될 사대강 사업에 기대어 지역의 작은 개발독재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지방권력은 ‘댐’을 통해 또 다른 권력을 탐한다.

그와 같은 연장선에서 숫자는 중앙에 종속된 지방권력들이 항상 빠지는 함정이다. '몇 천억 짜리 무슨 무슨 사업 유치' 등을 내세우며 지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 양 떠벌리는 지자체장은 도대체 그렇게 따온 예산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는다. 8000억을 들여 영주댐을 만들 때 가져올 긍부정적 효과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거나 기회비용의 측면은 고려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예산 따오기에 목을 매고, 외적 실적 위주로 행정을 집행한다. 중앙권력에 기생하는 지역의 식민권력자들에 의해 과대포장 되는 그 돈으로 지역민의 복지를 강화하고, 지역 농업, 농민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지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문화 복지에 사용한다면 백보 양보해도 댐으로 인해 지역사회가 얻을 긍정적 효과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영주댐은 영주를 살리고 영주경제를 윤택하게 하는 사업이 아니다. 영주댐은 경제적 환경적 재앙은 물론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정신문화적 풍토까지 해치는 재난이다. 하지만 이미 권력은 온갖 절차적 과정을 무시하고 강산을 파헤쳐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가름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영주댐 건설 반대운동은 지역의 환경을 지키는 운동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산하고 주민을 조직하는 과정이고, 일정한 시기에 국한된 특정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지역사회의 변화에 기여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영주댐 건설 반대운동은 자연과 환경, 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가치를 확산하고, 주민의 권익과 생존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고 고양되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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