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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전도사 박원순 변호사가 이웃 영양군에 있는 우리손산촌유학센타에 [상생의 농촌 마을만들기와 사회적기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왔다. 이번 강연은 희망제작소 창립 5주년기념으로 전국 50개 지역을 순회 강연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영양에서 지역활동을 하시는 분의 연락을 미리 받고 내가 사는 봉화군 지역사회에 이 소식을 전하자 명호면의 젊은 친구들이 자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강연을 알리는 플랭카드를 만들어 달기까지했다. 그리고 오늘 명호의 젊은 친구들은 2대의 차로 나누어 타고 출발을 하고, 봉화자활센타에서는 아예 관광버스를 전세내어 50여명의 자활사업 참여자를 이끌고 영양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에 열린 강연은 예상했던대로 참여가 저조해 봉화에서 간 사람들이 영양 주민들보다 휠씬 많은 것 같았다. 원래의 강연장소는 영양군청의 비협조로 우리손 산촌유학센타로 정해졌다가 봉화자활센타의 단체 참여로 영양성당으로 급히 변경되었다.  갑작스런 강연 장소변경에 따른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경북 북부지역사회의 정치적 낙후성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박원순 같은 시민운동가에 대한 관의 시대착오적인 대우도 그렇고 지역주민의 대책없는 보수적 편향, 극우적 정치성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어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지역공동체활동을 하는 우리 지역사회의 낮은 주체적역량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9시30분에 시작하는 강연에 늦지않기위해 8시에 비나리마을을 출발했다.  918번 지방도를 따라 봄농사준비로 기지개를 펴는 영양의 봄 언덕을 1시간여 달려 영양읍에 도착했다. 역시 남루한 농촌의 소도읍인 영양읍을 가로질러 강연이 열린 영양성당에 도착했다.  참 오랜만에 성당경내에 들어선 때문인지 카토릭신자였던 어린시절의 추억도 떠오르고, 또 종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종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가톨릭교회의 물량적 성장과 보수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영양군내에서 이런 일에 장소를 제공해줄 기관이나 단체가 성당밖에 없다는 사실이 고맙기도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대중강연이 다 그렇겠지만 강연의 내용은 평이하고 단순했다. 박원순씨 자신의 삶의 역정을 보여주며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가치에 기반한 삶을 살것인가는 말씀을 이어나갔고, 그리고 '커뮤니티 비지니스'의 여러 성공사례를 들어 우리 농촌사회도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미래를 맞이하자는 내용의 강연을 이어갔다. 편안하고 친근한 화법,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 박원순같은 대중활동가만이 갖는 자질이 부러웠다. 


한시간정도의 강연을 이어 질의 응답시간을 한시간 정도 가졌다. 중1아이의 어머니께서 아이 교육에 대한 질문도 하고, 희망제작소와 지역주민의 구체적인 연대와 결합방식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방앗간'을 운영하는 명호의 나무아빠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박원순씨의 생각도 묻다보니 11시조금넘어 강연은 끝이났다.


강연을 끝나고 성당 마당엘 나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단체별로 박원순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성당을 나섰다. 일터로 바삐 돌아와야할 형편이었지만 주체측에서 식당을 예약한 탓에 원하지 않는 8,000원 짜리 비빔밥을 억지로 먹고 오후일과를 위해 명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강연에서 박원순님한테 하고싶었지만 주제와의 관련성때문에 하지 못한 질문을 생각해봤다. 박원순씨는 전 정부시절 정부비판에 날을 세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극단적인 반환경 반인권 반민주 반노동 정권인 MB정권하에서 오히려 비판의 빈도가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혹시 최근 골몰하고 있는 '사회디자인'과 '정치'를 분리하여, 사회디자인의 고유 영역에 몰두하고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를 갖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 '희망제작소의 무상 인턴사원' 논란 뉴스를 접했다. 많은 논란거리가 있지만 나는 자식이 대학졸업후에도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받아가며 인턴사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정서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결국 '희망제작소'같은 비영리 사회단체에 인턴사원이 되기위해선 생활비 걱정이없는 부자집 자식이 되어야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때문이다. 비록 사기업과 다른 비영리사회단체일 지라도 자원봉사자와는 다른 인턴 사원에게 하루 5000원의 식비가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비, 교통비, 용돈 정도는 주는것이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의지조차 지나치면 독선의 길로 빠지기쉽고, 내적 확신에 충만하다보면 타인의 작은 삶들을 보지못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는게 아닐까 쉽다.  
  
책으로만 접했던 박원순변호사를 가까이서 접하고 농촌에서 희망만들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진 날, 나는 또 숱한 고민을 덤으로 안고 일터로 돌아왔다. 언제나 출발점에 머물러 있는 마을 사업도 그렇고 마을사업을 진행 하는 과정에서 갖는 나의 역할에 대한 진전없는 생각들도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아직 일한 밭이 있고, 같이할 젊은 친구들이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겠지?
또 삽이나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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