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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비나리마을도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이런저런 후보들과 선거 운동원들이 뻔질나게 마을을 들락거리고 한번씩은 요란스런 음악소리와 함께 선거홍보방송차량이 마을을 휘젖고 지나가기도 한다. 각 후보쪽 사람들은 안그래도 일손 바쁜 주민을 마주치기만 하면 냅다 달려와 허리를 90도로 꺽어 인사를 하고,  자기를 자기 후보를 찍어달라고 애걸복걸이다. 설거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일반 군민이 정치인들로부터 이렇게 대접받고, 군민과 정치인이 이토록 가깝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 좋게보면 선거철이나마 정치지망생들이 그런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만도 우리사회가 그만치 민주화가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선거가 정치인과 주민이 대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만 기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라나 어쩐다나. 뭐 그럴 수 있다. 당선과 낙선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고, 낙선은 죽기보다도 싫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그런데 문제가 선거과열이 아니다. 후보자들끼리 과열선거지 유권자는 무관심하다못해 냉담하기 까지한 것이 더 큰 문제다. 내가 살고 있는 경북 봉화같은 곳은 특정정당이 독식하는 구조가 갖춰진지 오래고 타당후보가 발붙일 틈조차 없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런 선거쟁점도 없고, 오직 당선가능성과 후보자 와 유권자 개인의 연고성을 내세우는 선거홍보가 선거운동의 전부이다. 지난 군수선거나 농협조합장선거가 돈선거로 얼룩져 지역사회에 끝 파란을 몰고왔었는데 이번 선거는 그렇지 않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없는 상활이다.



봉화같은 작은 지자체의 선거는 도시의 선거와는 좀 많이 다르다. 군의원을 뽑는 지역구는 인구 만여명에 불과하다. 군전체 인구는 3만5천여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지자체에서는 사실 조금이라도 외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속속들이 다 알고 지낸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래서 선거운동은 지역인심을 사납게 하고, 승패의 휴유증이 다음 선거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선거라는 게 유권자 입장에서도 참으로 곤혹스럽다. 이래저래 다 아는 처지에 계속되는 지지부탁과 지원요청을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것도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도시에 있는 이런저런 관변단체는 기본이고 농촌에만 있는 단체들도 하나둘이 아니다. 농촌지도자회, 농업경영인회, 농민회, 인구 2천명조금넘는 면내에만 이런저런 단체가 열댓개가 넘으니, 친목회나 동갑계 등을 합치만 거의 50여개는 족히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적게는 서너개, 많게는 일이십개 단체에 가입되어 있고, 특히 정치 지망생들은 발이 닿는 모든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후보자와의 연고에서 자유스런 유권자는 한명도 없다. 보다 넓을 그물을 치고, 거미줄같이 얽히고 설킨 연고성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자가 선거의 승자가 된다. 어떤 정책도, 정치적 입장도 사실 관건이 아니다. 정치지망생의 도덕성, 인품, 업무능력은 다 하위 조건이다. 그러다보니, 혈연, 학연, 기타 연고성을 타고 돈이 돌고, 여론이 돌고, 당락이 결정된다. 그런데 바로 그 '연고주의'가 지역정치를 망치는 주범이다. 

지역정치를 망치는 '연고주의'의 생명력이 왜 그렇게도 끈질긴 것일까? 아직 '현대적 개인'으로 분화되지 못한 지역적 특수성도 한 이유가 될 것이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개인의 삶이 나름대로 그 연고성 속에서 보장받아 온 오랜 세월의 경험이 또 다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연고성의 그물이 부재한 사회적 안전망을 대신해 개인의 삶을 보전하는데 하나의 안전망으로 역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유권자들의 의식이 연고성으로 부터 탈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고성을 대체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회적 안전망이 만들어져야하고, 집단에 귀속된 개인에서 독립된 현대적 개인성을 찾는 지난한 과정이 요구되기도 한다. 지금 당장 그와같은 연고주의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적 진보를 그리고 개인적 성숙을 준비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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