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하트마 간디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간디는 비폭력 불복종이라는 수단으로 영국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로 부터 인도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그는 무소유와 평화라는 가치를 끝까지 관철하며 아름다운 인류공동체의 이상을 추구했다. 그는 대중을 이끌고 해방투쟁을 수행한 현실주의자이면서, 권력과 금력 그리고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추구한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인도의 신분차별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폐지시키기 위해 투쟁했고, 온간 인종적, 종교적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갈구했다. 하지만 간디는 이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도가 해방되고나서 얼마안있어 이슬람교를 부인하고 카스트제도를 옹호하는 흰두교도가 쏜 흉탄에 서거했다. 그리고 그는 인도인의 가슴에 또 하나의 신으로 남게되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전부이다.
빈라덴은 사우디에서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기에 영국에 유학을 다녀왔고, 이슬람교리에 깊이 심취했으며,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에 소련이 침공하자 아프칸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이슬람 전사의 조직인 무자헤딘에 헌신했다. 그는 유산으로 물러받은 엄청난 부를 이용해 무자헤딘에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직접 무장전사로서 전투에도 참여하기도 하면서 이슬람의 해방을 추구하는 알카에다라는 국제적인 조직을 결성하는 등 이슬람의 탁월한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소련의 아프칸 침공을 빌미로 이슬람 지역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의 군수물자지원과 군사기술 지원을 받기도 했다. 한때 소련이라는 북극곰을 잡기위한 미국의 사냥개 역할도 마다않던 빈라덴이지만 소련과 아프칸 간의 전쟁이 끝나고 다시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는 국면이되면서 빈라덴은 다시 전면적인 반미, 반 이스라엘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 유명한, 항공기를 이용한 911 미국무역센타 공격을 감행하게 된다. 이후 미국은 911공격을 빌미로 아프칸과 이라크 등을 공격하며 대이슬람전쟁을 확대하고 노골적인 중동 지배야욕을 드러내며 반미투쟁의 상징이된 빈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무자비한 군사작전을 10여년간 강행한다. 그리고 몇일전 미국은 빈라덴의 사살을 공표하며 '테러와와 전쟁'에서 한 단계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리고 알카에다 등 반미 전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섬멸작적을 예고하고 있다.
간디는 인도의 성인이 되었고, 한국에서 조차 청소년기부터 '위인전'을 통해 완전한 삶의 전형으로 배워야하는 20세기 최고의 위인중 한명으로 알려져있다. 한국에만도 '간디'를 내세운 교육기관의 이름이 한둘이 아니고 생태적 삶, 금욕적 삶의 전형으로 까지 추앙받고 있다. 간디에 대한 그런 판단은 동서양의 구분을 뛰어 넘으며 이미 하나의 통일적인 상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빈라덴에 대한 평가는 이슬람세계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바깥세상에서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우리는 빈라덴의 죽음을 테러분자에 대한 정당한 처단이라며 환호하는 미국인들의 영상과 더불어 이슬람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에 대한 야만적 학살행위라며 이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는 시위대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사이 어디쯤 빈 라덴의 참 모습이 있을 것 같다.
'비폭력 불복종'이라는 무기를 든 간디를 영국 제죽주의들은 얼마나 무서워했을까? 나는 솔직히 그점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하는데 간디의 비폭력 노선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당시에도 무장저항운동을 시도했던 조직들이 활동했을 것이 분명하고, 또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간디가 제창한 비폭력 불복종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식민지들도 독립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인의 입장에서 비폭력노선과 무장 투쟁 노선중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이고 합당한 선택이었을까는 그리 쉽게 판단해 버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것 같다.
빈라덴은 테러리스트라고 명명한 자들은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의 군사력 우위를 바탕으로 정당한 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해 오고 있는 세력들이다.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저항을 포기하고 무기를 버리고 패주하는 이라크 장병 수만명을 사막의 한가운데서 에서 첨단 무기로 살육했다. 아들 부시는 아프칸과 또다시 이라크를 침공해 무고한 민간인을 포함해 수십만의 인명을 아무 꺼리낌없이 살육했다. 미국은 세계 수백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것을 불의로 몰아세우며 무자비한 군사공격과 정보공작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오직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가진 무고한 시민을 포함해 알카에다 요원 등을 납치해 관타나모 기지에 강제 구금하고 첨단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고문을 자행해 정보를 얻었다. 미국은 그렇게 얻어낸 정보를 이용해 비 무장상태인 빈라덴을 가족과 함께 사살하고, 그의 육신마저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해 버렸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은 테러리스트를 정당하게 응징했다고 주장하며 승리에 도취해 광분하고 있다.
나는 우선 간디의 삶이 정확히 어떠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간디는 식민지배 권력자들의 기준에서 용납되는 삶을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제국주의자들의 이익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간디는 세계적인 인물로 등극하면서 20세기가 낳은 위인의 한명이 될 수 있었다. 빈라덴의 본모습에 대해서도 나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빈 라덴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이익에 철저히 맞서 이슬람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 전사였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간디와 빈라덴은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은 서방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인도의 해방, 이슬람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간디는 비폭력 노선을 견지했고 서방의 인정과 지지를 얻어 위인으로 등극했다. 빈라덴은 무장노선을 견지했고 서방의 철저한 증오심의 대상이 되어 테러리스트의 수괴로 몰아세워졌고 끝내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
나는 간디와 빈 라덴에 대한 일면적인 평가에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진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미국인의 진실, 이슬람의 진실은 서로 다르다. 영국의 진실과 인도의 진실도 아마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디가 옳은지 빈라덴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다. 어쩌면 간디와 빈 라덴 두 사람의 간극이 사실은 그리 넓지 않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빈라덴을 무장투쟁 전사로 만든 시대와 그 시대를 주도한 미국에 대해 분노하면서,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슬람인의 가슴에 영원한 별이 된 빈라덴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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