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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다 공중파가, 케이블 방송에 개인 방송까지
이런 저런 방송이 흔한 세상이다보니
저같이 귀농해서 농사짓고 하는 사람도 방송을 타는 경험을 여러번 했습니다.
초기에는 농산물 팔 욕심에
방송 제안이 오면 쉬 응하기도 했고,
간혹 출연료라고 몇푼 받게되면 기분좋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두번 방송 횟수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이건 영 아니다는 판단을 굳혔습니다.
방송에 응하는 과정에서 사실 많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괴로움도 있었고 휴유증도 있었습니다.
팔 상품이 없으니 '쪽'만 팔게 되고, 나아가
'반갑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나 방문을 받게 되는 것은
다른 모든 즐거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세상에 귀농자가 지천인데 다른 분들은
섭외가 어려운지 요즘도 자주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곤 합니다.
하지만  아예 '귀농' 관련 개인 프로그램은 절대로 응하지않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고,
대신에 마을관련한 프로그램 정도는 마지못해 촬영에 응하고 있습니다.


'귀농' 등 '농촌'과 관련한 프로그램의 방송 촬영에 응하면서 느낀 몇가지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소재설정, 대상섭외에 있어 제작자들의 불성실을 느낍니다. 요즘 귀농자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림이 되는, 스토리가 되는 귀농자를 꼭 짚어 내기란 쉽지 않겠지만. 몇몇 유명세를 얻은 귀농인이 맨날 잡지에 나고, 신문에 나고, 방송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거기다가 방송내용도 다 대동소이합니다. 인터뷰라고 묻는 질문도 다 똑같구요. 기본적으로 표현하고자하는 가치나 틀이 다 비슷하기도 합니다. 

두번째, 비용대 효율 문제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너무 번개불에 콩구워먹기 식으로 촬영이 급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맨날 그 내용이 그 내용이고, 나아가 자연스런 취재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귀농자의 일상을 취재한다면 오랜 시간을 두고 계절에 따른 생활의 변화과정을 취재한다든지 해서 총제적 모습을 방송에 담는 것이 좋을 듯한데, 일단 촬영에 들어갔다 하면 그냥 밀어붙입니다. 그러다보니 억지 연출도 요구하기도 하여, 촬영당하는 사람을 짜증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번째, 방송관계자의 권위주의랄까, 자기중심주의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촬영에 응한 것을 후회하고 촬영 실무자들과 마찰이 있기까지 합니다. 업무중심적인 사고가 피촬영자의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치 못하게 하다보니, 피촬영자가 무례나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여름날 동네 할머니들을 콩밭에 불러 놓고 동일한 동작을 계속 반복시켜 지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봉화의 버스정류장 벽화가 잠시 유명세를 타면서 작업자인 저의 처에게 인터뷰 요청이 있어 응했는데, 알고보니 작업에 대한 인터뷰가 아니고 오락성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있다, 없다'를 외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우 사전에 충분히 설명이 있어야 하지만 전혀 사전 설명없이 작가를 불러놓고 뜬금없는 요구로 기분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방송관계자의 개인적 자질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방송사의 제작시스템 상의 문제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방송사로 부터 의뢰를 받아 적은 비용으로 제작을 감행하다보니 이런저런 여건을 살필 여유도 없고, '질'보다는 '효율'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짐작됩니다.

지난주 토요일 한 방송국에서 비나리미술관의 '토요자연미술교실'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취재오신 분들이야 경우 바르고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결과적으로 조금의 불미스런 마찰이 있었습니다. 수업 시작 시간인 오후 2시에 도착하기로 한 촬영팀이 한시간여를 늦게 도착하면서 애초의 스케줄이 어긋나 버렸습니다. 아이들과 마을 길을 산책하면서 자연 소재를 주워, 미술관으로 돌아와 찰흙판 위에 나름의 봄동산을 꾸미는 수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수업시작 시간인 2시를 넘겨 그냥 찰흙으로 도자기 만들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취재량이 부족해 다른 체험 장면을 연출할 것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즐거워야할 촬영과정이 그렇지 못하게 된 셈입니다. 서로 기분좋게 헤어지긴했지만, 촬영을 나오신 그분들께도 미안함이 남고, 뒷맛이 개운치가 못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별로 '문제상황'이 아닙니다.  약속을 늦은 돌발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촬영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서른명이 넘는 아이들의 그날치 수업 분위기를 흐트려놓게 되는 상황이 더 근본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촬영과정이 더 섬세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방송을 타게 해주니 너희들이 협조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태도는 옳지않다고 봅니다. 특정 목적으로 방송을 이용할 경우가 아니라면 취재에 따른 불편함과 들어가는 시간, 기타 노력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출연료'로 제공하고 촬영협조를 구해야한다고 봅니다. 

한번씩 방송국 관계자로 부터 '이제는 농촌도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투덜거림을 듣곤합니다. 옛날처럼 방송에 나간다면 무조건 좋아라고 협조하던 시절은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농촌인심'이 나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고,  촬영과정에서 감내한 불편함이 방송을 통해 보상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입니다. 

사실 방송을 타게 되어 즐거운 경우도 많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로 부터 연락을 받기도 하고, 촬영과정에서 방송국 관계자분들과 인간적으로 친하게되어 촬영이 끝나고 헤어지는 것이 서운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뭏튼  방송을 타는 일이 누구에게나 덜 괴롭고 더 즐거운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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