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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논쟁은 쉽고 재미있다. 정치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봐도 그렇고, 하나의 정치적 기사에 대한 댓글 논쟁만 봐도 그렇다.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답을 제시한다. 나름의 '확신'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리고 그 '확신'에 기대어 쉽게 정책적 대안까지 제출한다. 어쩌면 인간이 바로 정치적 동물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고아니면 정치적 관심도가 유달리 높은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대중적 정치 과잉이 이론가들, 학자들에게서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한번씩은 지식인의 자기 확신이 가지기만을 넘어 자기주장의 절대화로 나아가는 모습을 목도한다. 관념의 덫에 빠졌다고나 할까? 그 예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고, 이 책도 그와 같은 예를 보여주는 여러 글들을 담고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지만 그 만치 또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책이 담고 있는 몇몇 주장들은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 그런 판단을 하는 나의 시각도 마찬가지로 관념의 덫에 빠져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말이다.

 

이책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은 인터뷰어 지승호가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인사들과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인터뷰의 내용은 책이 출간된 시기의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을 주로하면서 대한민국의 식민지성, 자본지배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끝끝내 베알이 꼴리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이 있다. 공감이 가는 군사적 전술이다. 시골에 살면서 알게 되었지만, 농지가 붙어있거나 집의 경계가 겹쳐있어 공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과 감정적으로 가장 먼이웃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정치적 투쟁의 장에서 사상적 스펙트럼을 놓고 본다면 "원교근공"이 아니라  "근교원공"이 보다 정직한 역사적 선택이고, 현실적으로 주장하는바 정치 이념에 충실한 선택이 아닐까? 왜냐면 정치투쟁은 단순한 정치적 패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가치전쟁이고, 영토쟁탈전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복지 공동체를 향한 이념투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세력의 지형을 본다면 제도권밖의 극좌 조직부터 제도권안의 극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당, 그리고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보면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있을 것이고 더 오른쪽에는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민주당이 있다. 여기까지가 좌파를 비롯한 합리적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본다면 그 반대쪽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결쳐있는 잡탕보수우익을 아우르는 단일 정당인 한나라당이 있다. 물론 보수정당인 친박연대나 자유선진당이 있긴하지만 이들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달리하는 정치 세력이 아니라 단지 보스를 달리하는 세력으로 '한나라당류'로 뭉쳐봐도 좋을 것이다. 필자와 인터뷰를  한 진보적 지식인은 아마도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정도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참여당과 민주당으로 분화되기전의 '열린우리당'이 여당인 시절 왜 좌파는 '중도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열린우리당을 정치적 연대세력에서 배제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현실인식과 자기 비판없이 '노무현정권'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늘어 놓고 있다.


그래서 이책은 혼란스럽다. 극히 정치적인 비판의 끝에 무당파적인 입장을 표방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지식인의 이중성이 보인다. 자신의 정파적 입장의 선명성을 주장하면서 여타 정치세력의 입장차를 두루뭉실 뭉개어 버리는 태도에서 연대의 결핍에 시달리는 진보세력의 고질병이 보이기도 한다. 내용적으로 세세하게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사실 리뷰는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이 ''에 대한 나의 이해를 표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나의 미천한 책읽기가 나의 뇌리에 남긴 긴 여운의 문제의식을 나열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치고 싶다.

 

먼저 노정권에 대한 비판이 소위 중도 개혁세력에 대한 수구세력의 공격에 동조하여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역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두번째진보의 지평을 넓혀내는 비판이 아니라, 중도개혁세력을 무력화하면서 그 영향으로 진보의 몫마저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 아닌가?

 세번째. 진보 의제는 대통령의 몫이 아니라 진보적 아젠다를 국민적 의제로 키워내야 하는 진보세력의 몫이다. 그것을 제출하고 국민적 인정을 끌어냄으로서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체택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하는것 아닌가?

네번째, 기본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복지예산을 가지고 '분배'중심의 좌파정권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북한과의 최소 수준의 평화공존 정책조차도 북한에 휘둘리는 일방적 퍼주기 정책으로 매도하는 수구냉전세력과의 역관계에서 소위 진보세력이 힘을 보태준 것이 있기나 하나? 오히려 어긋장을 놓아 중도개혁세력인 노정권을 무력화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진보세력이 수구냉전세력의 지배권을 넗히는데 기여한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 아닌가

다섯번째, 진보세력이 하는 많은 주장들중 많은 부분이 도덕적 선언에 불과하고, 실천력을 담보하기 힘든 것은 왜일까? 지적 유희, 자기논리의 탐닉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 이상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구체적 현실에서 수행해야 할 당면한 과제를 설정하고, 실행하기위한 전술,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명쾌한 답을 듣고 싶다

여섯째, 진보적 지식인들은 '노정권의 무지'(홍세화), '철학의 빈곤'  ',, '(박노자) 들의 개념으로 노무현정권을 비판하는데 이는 노무현대통령을 '무식하다'고 비판하는 조선일보의 논조를 그대로 답습하는 학력 우월의식을 가진 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노무현대통령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노무현을 죽인 세력은 현 MB정권과 검찰마피아만이 아니다. 어쩌면 더 큰 상처는 바로 '약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정치가 그립다'면서 노무현대통령의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던 이들 몇몇 진보인사들이다.  그의 사후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이 때늦은 사랑고백을 늘어놓았지만, 사자의 길은 간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 책이 참여정부 후반기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갖는 한계가 있다면 이해해 주고 싶다. 노무현대통령을 욕만해도 되는 상황에서 이런 류의 책은 분명 시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무책임한 변설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다시한번 이전의 자기주장을 되돌아 보는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회주의자"가 성립할 수 있는 진보세력의 유연성을 보고 싶다. 바로 그때가 진보세력의 수권능력이 갖춰진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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