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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4일 Nawal을 출발하여 뭉지와 Braga를 거쳐 Manang에 도착해서 하루 여정을 마치고, 2월 5일 쏘롱라 패스에 앞서 고산에 적응하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마낭에서 하루를 더 쉬었다. 


갸루에서 나왈까지의 느낌 그대로 나왈에서 뭉지까지 길은 이어졌다. 산등성이는 메마른 돌투성이 흙이 드러나고 드문드문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야크의 먹이가 되는 키작은 초목이 자라는 목초지는 될지언정 밭을 갈고 곡식을 심기에는 땅은 너무 경사지고 거칠었다.  멀리 마르샹디 계곡으로 홈대 비행장이 내려다 보이는 길을 따라 걷다가, 고개를 들어 마르샹디 계곡을 다라 서북쪽을 향하면 멀리 강가푸르나와 안나푸르나 3봉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름다운 길의 기억을 기록에 남기기에는 나의 글은 너무나 짧고 사진으로 다 담기에는 또 놓치는 것이 너무 많은 하루였다.   




나왈을 출발해 2시간여를 걸어설까? 우리는 Low Pisang에서 Hongde를 거쳐 오는 길과 만나는 나왈에 도착했다. 나왈은 험준한 아난푸르나 산등성이에서는 보기 드물게 너른 초지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역시 야크의 교잡종으로 보이는 소가 한가롭게 마른 풀을 뒤지고 있었고, 말은 초지 사이를 흐르는 개울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말이 물을 마시는 사이 마부도 쉬기 위해 말을 내렸고, 우리도 배낭을 벗고 쉬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뭉지는 말도 마부도 트레커도 짐을 벗고 쉬어가기 좋은 동네였다. 너른 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을 바라다 보면서 우리 역시 인생의 짐을 내려놓고 시벅쥬스를 한잔 가득 마시며 한가로이 해바라기를 했다.


   


나왈에서 마르샹디 강을 만나 30여분을 더 걸으니 마낭 직전 마을인 Braga에 도착했다. 강쪽 길가에는 롯지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오른쪽 산자락아래는 사찰과 함께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동네 앞에 너른 초지 중간에는 불상이 세워져 있었고 주변에는 몇개의 벤치도 놓여져 있었다. 동네의 광장같은 역할을 하는 공유지 같았다. 우리가 마을에 들어설 무렵 수업을 마친 한무리의 꼬마들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아이들을 보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2개의 축구공 중에 한개를 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축구를 하자며 불러 세워 잠시 잠깐이나마 같이 공을 찼다. 좀 더 놀고 싶었지만 브라가도 3,500m 고도의 고산 마을이다보니 금방 숨이 찼다.  




브라가를 지나 마르샹디강을 따라 30분도 걷지 않아 마낭이 올려다보이는 지점까지 도착했다. 마낭 도착전 마지막 휴식을 위해 차우타라(chautara)에서 배낭을 벗고 숨을 돌렸다. 본격적인 고산 트레킹을 시작하는 마을 마낭에서 보낼 이틀의 휴식에 가슴설레이며 마을을 들어선뒤 Tilicho Hotel을 찾아 짐을 풀었다.  모처럼 밀린 빨래를 하고, 마을을 돌아보고, 생필품을 사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가이드 바수의 부추킴에 넘어가 뚱바를 파는 가게를 찾아 자리를 잡고 일행을 불렀다. 맛있는 애플파이로 기억될 Tilicho Hotel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고도적응일로 꼭 하루 더 쉬어갈 것을 강권하는 안내서들에 따라 우리도 마낭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실 마낭에서의 하루는 단지 쉬기 만을 위한 날은 아니다. 2박 3일을 지내도 다 둘러보지 못한 숱한 명소와 볼거리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강가푸르나 호수와 빙하,  Milerepa's Cave와  Ice Lake 만해도 하루에 다 가 볼 수 없을 정도인데 나는 틸리초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강사르 마을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은 틀어지고 명소들은 다 건너 뛰고 가까이 마을 산책으로 하루를 보내기로했다.




게으른 아침을 보낸뒤 우리는 늦게 롯지를 나와 전날 스쳐 지나왔던 Braga로 향했다. 목적지 없이 보내는 하루를 브라가 곰파를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올라간 곰파는 500년 이상된 사원이라고 했고 나름 세월의 멋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낡아가는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계절적인 이유로 일시적으로 비워져 있는 건지는 알수 없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고 마을에 의해 관리되는 곰파치고는 너무나 방치된 느김이었다. 지금까지 들렀던 티벳불교 사원 거의 대부분이 중건중이거나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브라가 곰파는 그렇지 못했다.




브라가 곰파에서 내려와 마르샹디를 건너 강가푸르나와 마르샹디가 만나 형성된 널다란 초원을 걸었다. 늘 바람처럼 가벼워지고 자유롭고 싶다던 소망이 그 순간만은 이루어진것 같았다. 우리는 초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풀을 뜯는 말들 사이로 풀잎처럼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정처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일년 365일을 살면서 단 하루라도 가야할 곳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시간을 느낄 필요도 없는 진공같은 평화를 내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었는데 그 작은 소망이 마낭에서 마침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르샹디는 강물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맨발로 건널만치 적은 수량도 아니었다. 한참을 강을 거슬러 마낭 시가지가 끝나는 위치까지 가서야 다리를 만났다. 가파른 강둑을 올라 마을을 들어서니 마땅히 할일이 없이 마을을 배회하고 있던 바수와 나브라즈와 마주쳤다. 마지막 남은 축구공과 학용품을 전해줄만한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바수와 나브라즈는 우리를 마낭 곰파로 안내하며 마낭곰파에 딸린 마을 공동체 조직에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같을 것을 운영하고 있고 그곳에 기증하면 좋겠다는 제안 했다. 



마낭 곰파에 들어서니 7~8명의 사람들이 마주앉아 차를 돌리고 예불을 준비중이었다. 학용품이나 전달하고 부처님 앞에 공양이나 하고 나올 참이었다가 갑자기 곰파의 안내를 받아 경내에 착석하고 차까지 대접받았는데 곧바로 예정에 없던 예불에 참여까지 하게 되었다. 혹시 방문객을 위한 공연 개념의 예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불경을 외는 네팔리의 목소리에 우리 모두는 푹 빠져 들었다. 고단한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투박한 형식의 예불이 억지로 짜내는 화려한 성전의 경건함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제도화가 덜된 날것 그대로의 종교를 만난듯한 감동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예불마저 참여하고 나니 쏘롱라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든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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