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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의 색이 바래고 자신의 삶을 이끌던 의미 혹은 희망 같은게 하잖아 보이게 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 내가 그랬다.대충 살아 온 시간들,  확 늘어버린 나이, 불투명한 앞날... 거기다가 앞으로 살아갈 동안 의지할 수 있는 돈도 재능도 사람도 가지고 있지 못한 빈털털이라는 사실까지 어느 것 하나 위안을 얻을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내 삶의 가치, 가능성, 의미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사람에 대한,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신비감마저 잃어버리고 어쩌면 삶이 다하는 그날 까지 이렇게 무료하고 무의미하게  하루하루 늙어가야하지 않을까하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러나가 지난주 분명 일탈일 수 밖에 없는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결혼20주년을 핑게로, 멀리 규슈까지. 이런저런 즐거움과 행복감 충만한 시간들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생각지도 않은 유후인의 화가 東 勝吉(ひがし かつきち)과의 만남이다.


東 勝吉은 오이타 현에서 1908년에 태어나 유후인에서 2007년에 돌아가신 분이다. 그를 유후인의 화가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의 노후를 보내고 영면한곳이 바로 유후인의 노인요양원인 '온수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화가로서의 활동이 바로 그 유후인의 '온수원'에서 시작되었고,  작품의 전부가 이루어졌고, 또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찾은 유후인에서 아내와 딸과 더불어 하루 낮을 보내고 하루밤의 사치를 위한 료칸의 송영을 기다리는 시간, 한기를 피하고자 유후인 역사의 대기실 같은 작은 홀에 들어섰다. 30여평의 홀의 사면에는 수준이 고르지 못한 다양한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그림 한점한점을 한참을 둘러보다가 그 그림들이 83세 이상의 노인들이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놀래기도 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 전시회가  바로 유후인이 낳은 어떤 화가를 기념하기위한 정기 공모전이었고, 그 화가는 다름아닌 83세에 첫 붓을 잡은 東 勝吉이라는 분이라는 사실이었다.


東 勝吉은 가난하고 힘든 삶 끝에 78세에 유후인의 노인보호시설인 '온수원'에 입소하고 83세가 되어서야 평생 처음으로 붓을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89세에 바로 그 유후인 역 홀에서  첫 전시회를 가지고 2007년 99세에 숨을 거두기 까지 작업에 몰두 했다고 한다.

나는 사실 그의 작품을 예술적으로 평가할 재주가 없다. 하지만 나의 눈에 비친 그의 작품은 어느 프로 작가의 작품들보다도 뛰어나게 아름다왔으며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 여행 내내 곱씹어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83년 동안 고이 간직하고 살아왔으면서도 그전에는 그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까? 예술은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천부적인 재능이 더 중요할까? 화가가 되고 싶은데 타고난 재주가 없어 예술이라는 병을 평생 앓아야만 하는 사람은 불행할까, 아니면 불가능한 꿈이나마 가지고 살아가니 행복하다고 해야할까? 그가 노년에나마 화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불사를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노인 복지 시스템 덕분이겠지? 건데 어떻게 예술교육이라곤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의 붓에서 저런 색이, 저런 선이, 저런 조형미가 탄생할 수 있었지?  끝없는 상념들이 꼬리에 고리를 물ㄹ고 일어났지만 정작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재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 가능성의 실현 여부를 떠나 하나의 삶이 가진 가능성의 존재 자체가 그 삶을 이끄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느끼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삶은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고히 간직하고 무덤속으로 가져가버리겠지만 하여튼 바닥나지 않는 가능성의 영역안에 자신의 삶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참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東 勝吉을 알게 되고 기쁘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제 쉰이다, 희망을 갖자!

http://www.yufuinartstock.com/ARTSTOC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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