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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강제에 의한 이주도 아니고
일로 인한 출장도 아니고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유랑도 아닌
오직 내적인 힘에 밀려 집을 떠나
낯선 거리를 떠도는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몇일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관광박람회에 참가해서
봉화은어축제를 홍보하는 은어만들기 체험을 진행하는 중에
행사진행본부에서 하는 방송소리를 들었다.

3층 메인 무대에서 도보여행가 김남희 씨를 초청하여
[유럽배낭여행]에 대한 강연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은어마을기 체험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와이프에게 체험장은 맡겨두고 급히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행사장 한쪽 켠에 놓인 무대위에서
검정 옷을 입은 조그만 여자 한명이 마이크를 두손으로 쥐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이라는 표현 하나로 
나를 사로잡았던 김남희씨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내 스스로 만들어낸 조작된 이미지인지 알 수 없지만
검은 옷 때문일까? 왠지 수녀같다는 느낌과
아둥바둥 살아가는 현실의 장에서 왠지 비켜선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강연은 진행되고 있었고,
관중석에는 30~40대 여성분들을 중심으로
의외로 나이드신 어르신들까지
남여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붐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적지 않은 관객들을 향해 
김남희씨는 '여행'이란 무엇인지.
여행은 어떻게 준비하고 떠나고, 정리해야하는지
나름의 삶속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열심히 받아적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을 표시하는
아주머니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에모준비도 없이 급히 강연회에 참가했지만
김남희씨의 강연중에 몇몇 구절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메아리로 남아있다.

'여행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은 성의 바깥으로 나가는것'이라며
누군가를 인용해 정리한 여행에 대한 규정은 참으로 공감되었다. 
또한 여행중인 사람의 배낭을 열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단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기 때문이란다.
 
강연의 중반을 넘기면서
김남희가 걸었던 유럽의 여행길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여행의 후일담을 진행하는 걸 보고
행사장이 걱정이 되어 강연회장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여행에 대한 생각들은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행은 자신이 쌓은 성 바같으로 나가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
새로운 타인들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게 한단다. 
그리고 끝으로 좋은 여행이 되기위해서는
준비하는 여행, 공부하는 여행, 그리고 공정여행이어야 한단다.
특히 공정여행에 대해서는 긴 설명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여행이 여행지의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피해를 줄지 생각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단다.

세계 도처를 가도 꼭 있는 3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중국음식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이 관광객이란다.
일본의 관광은 이미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떠나는 단계로 접어들었단다.

그런데 3번째는 무엇일까?
무척 굼금했지만 
세계 어디에나 있는 3가지 중의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참혹한 기분이 드는
내용이었다. 바로 한국인 기독교 선교사란다.

수세기전 유럽의 선교사들이 군사적, 산업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지적,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신을 강요하던 선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꼭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큰 잘못을 
한국 사람들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나라 저나라에 나가,
당시의 종교가 틀리고 당신의 신을 대신해 예수를 믿어라 외치는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문화, 그들의 신과 종교를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속에서 맺는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 관계 맺음의 대상으로 타국사람들을 바라다보는
협소한 시각은 인류의 평화를 해치는 
불의의 씨앗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김남희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의 소유자라는 느낌이다.

여하튼 글로만 만날 수 이었던 여행가 김남희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2010년 대구경북 관광박람회는
이래저래 참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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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런 날이 온다.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가던 길을 그냥 가기에는 왠지 억욱한 순간.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그런 날"



경향신문에실린 "[세계의 컬드여행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 800km도보 순례" 의 한 구절이다.

작년 어느날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저 한 구절에 나는 갑자기 '산티아고 데 카미노'에 빠져들었다. 저녁 내내 인터넷을 뒤지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의 블로그 순례기를 쫒아 산티아고 길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이렇게 살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는 순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순례기를 서핑하는 일을 포기하면서 하나의 다짐을 하고  한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하나의 다짐은 2010년 가을 걷이가 끝나면 나 역시 먼저 떠난 순례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나서겠다는 것이었고, 한 권의 책은 바로 그 길의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만날 때마다 내가 산티아고 이야기를 해대는 통에 도무지 궁금해서 베길수가 없었던 친구가 사서 읽고 나에게 선물한 책이다.
블로그의 짧은 순례기를 부담없이 읽다가 갑자기 한권의 책으로 다가온 산티아고 순례기가 사실은 좀 부담되었다. 미지의 길을 나서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이상의 것을 취한다는 것은 그 길을 떠나느 설레임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금방 사라지고 서서히 책 속으러 빨려 들어갔고, 필자 최미선의 꽁무니를 쫒아 구멍난 운동화를 싣고 카미노를 쫄레쫄레 따라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점점 더 구체화되는 스페인의 들녘, 마을들 그리고 순례객들의 표정은 나의 마음속에 큰 흔적을 남겼다. 눈을 감으면 파스타의 향기가 코끝에 느껴졌고, 잠이 들면 생장 피드포르를 지나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덮으며 다시금 '길'과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사실 '여행'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여행은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필자가 전하는 산티아고 보다 그 글을 통해 받아들이는 독자의 산티아고는 더 절실함을 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은 생각한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는 의문을 10대에 가져 내일모레 오십이 다 된 지금까지 짊어 지고 온 인생길은 사실 좀 팍팍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11월이면 산티아고 길을 떠나 2011년 신년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지나 '피니스테레'에서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멀리 석양에 젖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나의 짐들을 내려 놓고 싶다. 짐을 가득 담은 배낭보다 더 무거운 '왜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는 강박을 낡은 운동화와 함께 불사르고 그 연기 냄새만 코끝에 조금 남겨서 지금 이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읽는 책이 아니라, 같이 떠나는 책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돈과 명예, 지위를 지키는 사람이 줄어들고 이 모든 것을 다 가볍게 여기고 같이 길을 떠나는 도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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