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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법이 아니라 이기는 법을 배우는 책

 

만델라는 자신의 삶의 역정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이라 말한다. 그 길은 자유를 향한 길이었기에 멀 수 밖에 없는 길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먼나먼 길이라고는하지만 자유를 향한 길이기에 중간에 주저앉지 않고 참고 버텨낼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해방 투쟁은 먼길이었을지언정 불투명한 길은 아니었다. 아파라트헤이트를 분쇄하고, 다인종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위한 투쟁의 대열은 명확한 목표를 공유했다. 영미의 불투명한 자세가 끊임없이 문제를 꼬이게 하고 본질을 흐려놓았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라는 든든한 기반위에서 도덕적 정치적 명분을 동시에 움켜지고 치룬 질 수 없는 투쟁의 길이었다.

그렇다고 남아프리카 해방 투쟁이 희희낙낙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인종차별에 기반한 백인지배 권력은 체제의 존속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다. 일제시대 일본제국주의가 그러했듯 소위 문화 통치라 부를 수 있는 포섭 회유책에서 부터, 원주민 부족간 분쟁을 부추키는 분할통치 수법, 저항 세력에 대한 합법을 가장한 정치적 억압, 그리고 테러와 암살이라는 비합법적 방법을 넘어 나찌를 연상케할 만한 대량 학살까지 백인 정부는 그들의 기득권을 존속시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서 흑인 청년 만델라가 갈 수 있는 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백인 지배질서를 수용하고 그 아래 부역함으로써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꾀하는 길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존귀한 백인과 미천한 흑인의 이분법이 통용되는 세상의 부정의를 향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길이었다. 만델라는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해방을 끝내 쟁취했다. 

두어달 전 만델라의 자서전을 선물받았을 때 지금 왠 뜬금없는 만델라인가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 이부자리에서 한쪽 두쪽 읽기 시작한 뒤 나는 만델라의 삶에 빠져들었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배울수 있는 것이 많긴 하겠지만 그로부터 얻은 배움이 고스란히 나의 지금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반동의 시대, 파시즘이 온갖 치장을 하고 민주주의 행세를 하는 거짓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것인가에 대해 만델라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구체적인 답보다 훨씬 깊은 영감을 제시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넘어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를 다시금 되묻게 하는 만델라의 일대기가 다시 먼 전망을 모색해야하는 우리에게 참 좋은 교과서가 될 것같다.

나는 만델라의 삶의 역정을 따라가며 투사의 삶보다는 친근한 인간적 면모를 가진 한 사람의 성인을 연상했다. 그것은 이 책이 사후적으로 지난 투쟁을 정리하는 자서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만델라의 삶에서 분노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부정의에 대한 분노없이 정의를 위한 투쟁이 있을 수 있겠는가마는 만델라는 인종차별이라는 극악한 부정의에 맞서 흑인우월주의나 타인종 적대주의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인종이 조화로운 삶을 사는 세상을 추구했다.  백인정권의 포악한 억압에 맞서 만델라가 무장투쟁 노선을 선언하고 '민족의 창'이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군사훈련과 군사적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평온하고 담대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대적투쟁에서 보였던 만델라의 노선은 전선 내부의 분열과 대립과정에서도 그대로 견지되었다. 해방을 위한 투쟁의 도정에서 그가 속한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와 ANC의 온건노선에 반대해 조직된 PAC(범아프리카회의)가 분립하여 대치할 때도 그는 두조직이 적대하는 상황에 빠지지않도록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흑인 우파를 대표하는 인카타자유당과 줄루족의 분열주의와 참혹한 테러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도 만데라는 결국 백인 이든 줄루족이든 같이 위대한 남아프리카인으로 더불어 살아갈 사람이라는 전제를 견지했다. 그와같은 만델라의 연대와 평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입장은 결국 남아프리카 인민과 세계인의 공감을 획득하게 된다. 결국 해방투쟁을 군사적 전투가 아니라 국제적 여론에 힘입은 지난한 협상의 과정을 통해 승리한다. 만델라가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와같은 연대와 평화의 정신이 아닌가싶다.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한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만델라 자신이 견지한 평화와 연대의 원칙 때문이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백인 정권으로부터 해방되고나서도 만델라의 원칙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진실을 밝히되, 처벌하지 않는다'는 만델라의 입장은 수많은 목숨을 받쳐 승리한 세력이 쉽게 채택할 수 있는 노선은 아니었다. 내부적인 반발과 권력을 잃은 구백인정권의 비협조와 조소는 만델라를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델라는 그와같은 노선을 통해 결국 진정한 승리를 챙취한다. 청춘을 바친 투쟁과 27년의 감옥살이, 그리고 수년에 걸친 협상과정을 통해 만델라는 백인정권을 해체하지만 그의 진정한 승리는 정권 장악뒤에 진행된 진실을 밝히고 화해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나는 그의 삶을 통해 어떻게 싸우는 것이 진정한 승리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덤으로 이책을 번역한 김대중전 대통령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만델라와 김대중.. 이 두 사람은 참 많은 유사점을 가진 것 같다. 오랜 세월 억압속에서도 평생을 정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끝내 승리를 가져온 점 뿐 아니라 투쟁과정에서 견지한 비적대적 입장, 정권 장악뒤에 가진 신실과 화해를 위한 노력, 나아가 그와같은 노선을 인정받아 노벨 펑화상을 타게 되는 것까지 똑같다. 만델라와 김대중 이 두 사람의 힘은 사실 일희일비하지 않는 담대함에 있는 것 같다.  

대선이 끝난뒤 한국의 진보 개혁 세력은 큰 혼돈에 빠진듯하다. 내부적으로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또다른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대선 패배의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부여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학적 비판이나 정파적 이해에 얽힌 기싸움은 진보개혁세력의 미래에 아무런 희망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조중동 프레임을 그대로 채용한채 자행되는 '친노패권주의' 운운하는 마녀사냥이나, 좌편향 우편향으로 흔들리며 제기되는 선거전략의 이념적 편향에 대한 분석은 극히 위험해보인다. 연대의 방식에 대한 분석과 검토를 넘어, 연대 무용론까지 나가버리는 청산적 태도는 비의회주의적 변혁노선에서나 유의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만의 진지를 온전히 보전하겠다는 소수좌파정당의 고집은 51대 49라는 판세로 결정되는 선거판에서 채택할 수 있는 전략으로는 적합하지 않기때문이다. 이 모든 의문에 대해 만델라는 정답이 아니라 그 답을 찾기 위한 바른 태도를 보여준다.  

뜬금없는 시기에 만델라의 일대기를 읽고 나는 그의 삶이 전해 주는 메시지를 싸우는 "방법을 넘어 승리하는 방법"로 읽었다. 극히 주관적인 감상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질 수 없는 싸움에 번번히 지는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아직 승리하는 법에 서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델라의 싸움과는 달리 목표는 분명하데 상대는 훨씬 불투명한 싸움을 해야하는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만델라가 주는 메시지는 그뿐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보다 담대해지고, 나아가 작은 정파적 차이에 대해 서로 관대해지고 파도치는 정치적 지형에 따라 보다 유연해 진다면 파시스트 잔당에 의해 장악된 기득권세력과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를 획득하는 날이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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