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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봉화구간-만산고택에서 도심리까지 : 1차 답사

'걷기 길'이 붐이다. 그러다 보니 봉화군에서도 여러구간이 만들어졌거나 준비 중에 있고 그중 하나가 '외씨버선길'이다. '외씨버선길'은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 그리고 영월군이 지자체 연합사업의 하나로 추진중인데, 일부 사업이 진척되어 올 3월이면 몇몇 부분 구간이 문을 연다고 한다. 이 4개 시군에 걸쳐있는 이길의 이름 [외씨버선길]은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길의 구간에는 김주영, 이문열 등 여러 문학적 자원이 산재해 있고, 특히 이 길의 이름을 만들게 된 데는 조지훈의 고향이 영양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씨버선은 오이씨같이 날렵한 선의 아름다움을 지닌 버선을 말하는데, 외씨버선의 아름다움과 걷기길의 테마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단 '4색 루트 외씨버선길'이라는 좀더 의미가 확대된 명칭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4색은 4개군을 칭하기도 하고 문학적 '思索'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저런 인연으로 외씨버선길 봉화구간의 하나인 만산고택~도심리 17km 구간의 스토리자원조사 용역을 대행하게 되었다. 농한기에 밥벌이 겸, 그렇지 않아도 운동삼아 나름대로 '마을길 걷기'를 간간히 진행해 오고 있는 터에 고마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게 되었다. 사전 협의와 '계획서' 작성을 마치고 지난 1월 8일 이번에 조사를 맡게된 구간의 출발점인 [만산고택]에 관계자 분과 자리를 가졌다. 봉화문화원 강연선 사무국장님, 만산고택의 강백기 선생님과 함께 이번 외씨버선길 문화자원 조사에 대한 취지를 나누고 몇가지 실무적인 일을 논의한뒤 길을 나섰다.

내가 맡은 일은 1월 한달 동안 춘양읍에서 도심리를 잇는 17km구간에 산재해 있는 스토리자원 조사가 전부다. 구간의 조정이나, 테마 선정 같은 것은 [외씨버선길]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된 사업단에서 수행해야 할 일이고, 나의 과업은 단지 길의 테마, 길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다양한 스토리 자원에 대한 수집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참 쉽고 간단한 일인것 같다. 우선은 500만원의 예산으로 3명의 인력이 한달간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를 수행하는 것만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실 스토리 자원을 조사하는데 있어, 보다 더 큰틀인 [4색 루트 외씨버선길]의 주 테마와 4개시군 구간 각각의 테마-색이 어떻게 사전 논의되고 모색되었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기 때문에 작업과정이 참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ㄷ. 하지만, 그 구간 내에 모을 수 있는 스토리 자원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모으는 방법밖에는 없는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날 걸음은 앞으로 진행될 조사에 앞서 길전체의 '색'을 먼저 느껴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세부적 자원조사는 앞으로 계속 걷는 과정에서 수행되어야하고 우선은 이 길의 '느낌', 이길의 '가치', 이 길의 '정신'이 무엇일까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산고택을 나와 의양리의 태고정, 낙청당, 권진사댁을 둘러보고 춘양중학교 교정에 있는 서동리3층석탑, 서원촌 등을 거쳐 산길을 통해 새터로 가는 방법과 운곡천을 따라 나있는 88번지방도를 따라 걷는 방법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일단 운곡천을 따라 걷는 길을 택했다. 운곡천을 따라 농로를 걷기도하고, 농로가 끊어지면 다시 도로로 나와 걷기도 하면서 일행들과 길의 느낌을 나누기도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새 구간의 중간지점인 애당리의 '봉화도예연구소'에 도착한 것이 오후 2시. 도예연구소의 반현호 소장님의 환대를 받고 국화차를 나누다보니 짧은 해가 운곡천 계곡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백두대간 넘어 기울기 시작하고, 더 이상 진행하기에는 혹독한 추위에 이날 과업은 그 지점에서 마치기로 했다. 도예연구소에서 작업중인 봉화 바래미마을 김종구 선배를 만나 차를 얻어타고 만산고택으로 돌아와 이 날 일과를 마무리했다.

이날 걸은 길은 총 9km로 이전에 도로를 차로 달리기만 했던 구간이다. 서벽리에 있는 [춘양목 송이 정보화마을' 관계자인 고마운 분들과의 인연 덕분에 몇년 전부터 일년에 몇번씩은 차로 다녀왔던 길이기 때문에 길을 걸어 나서기전에 사실 일정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었다. 이 구간이 걷기길로서 적합할까, 뭐가 볼만한 게 있고, 무슨 문화자원이 얼마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차로 달리기만 하던 길을 처음 걸어보면서 그런 나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걷기를 통해  길의 '느낌'을 새롭게 얻는 기쁨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은 무시했던 사람한테서 새로운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되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기쁨같은 것과 같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수산과 각화산 자락들이 어우려져 이루는 계곡을 따라 운곡천이 흐르고, 그 천을 따라 형성된 농지와 마을 그리고 길을 따라 멀리 태백산 준령을 바라다 보면서 걷는 기쁨은 참으로 컸다. 간간히 전해주는 강백기 선생님의 역사문화적 지식과 강영선선생님의 길에 임하는 지혜는 이날 그 길을 걷는 기쁨을 더욱 깊게 했다.   

* 동행자 : 4명
* 11시 만산고택 출발, 오후 2시 애당리 '봉화도예연구소'도착 
* 총  9km / 소요시간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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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날, 강건너 거무실을 걸었습니다.

늦은 아침, 살을 에는 추위가 한낮의 햇살에 누그러들자

간단한 간식을 챙기고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핑게로 오랫동안 떠나지못한 마을길 순례를

이번은 사전 계획도 없이 갑자기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무실은  비나리마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입니다.

비나리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쪽으로 오백미터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초방산 가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반대편 강건너

보일듯 말듯 골짜기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몇년전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가면서 언론도 타고,

그 덕분에 외부에 알려지게된 거무실은

직선거리로 따진다면 국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앞은 낙동강으로 막히고 마을뒷길은 청량산의 한자락인

문명산에 가로막혀, 차로는 당연히 접급할 수도 없고

걸어서도 접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세상에 숨겨진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비나리마을에서 출발해서 옷갓재를 지나 고계다리를 건너고,

고계리 마을을 관통하다 오른쪽으로 틀어 산길을 접어듭니다.

고계리를 지나 30분쯤 산길을 오르다보면

정상쪽으로 난 가파른 비포장길과 오른쪽 강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차바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산이 깊어질수록 그 길마저 사라집니다.

매서운 추위가 살을 애는 한겨울에도 등에 땀이 흐를 만치 걷다보면

그 길의 끝에서 민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이 싫어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가 싶기도하고, 어쩌면 옛 고향집을 꾸며

간혹 들러서 쉬어가는 집같기도했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빈마당엔 겨울 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강쪽으로 갈라진 오솔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첩첩산중이지만 그래도 가는 길목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쉰 폐가들을 만날 수 있고,

잘 손질된 잔디가 덮인 무덤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해 객을 반깁니다.

 

풀숲을 더듬어 없는 길을 만들어 30분쯤 더 걷다보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서야지 하고 마음먹기 시작할 즈음

오랜동안 그리도 가 보고싶었던 거무실 아랫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는 두어집이 남아 동네를 지키지만

가파른 산능선에 심겨진 대추나무와

겨울 찬바람에 마른 고추댓궁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지난 여름 받았을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두어채의 폐가와 사람사는 흔적이 있는 또다른 두어채의 집이 전부인 마을에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수 없고

낯선 객을 반기는 강아지 한마리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산자락이 모은 빗물이 지나는 거무실 계곡은

도연명이 찾던 무릉도원이 꼭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치

선계를 닮아있습니다.

큰물에 씻긴 집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거무실계곡은

언제 다시한번 꼭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찾고 싶습니다.

계곡을 이루는 바위위에 작은 상을 차리고 오늘은 만나지 못했던

거무실 사람들과 잔을 비우며 물소리와 함께

거무실 사는 이야기라도 듣고싶습니다.

 

한해를 보내야하는 즈음,

거무실을 걷기는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 비나리마을에서 거무실까지 왕복 10km // 일부구간 난코스

* 소요시간 4시간

* 거무실마을 도착후 낙동강을 따라 북상, 고계 다리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비나리마을 앞 구간에서 강변을 따라 지나기에 어려운 코스가 있다.

* 고계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시작하면 넉넉잡아 3시간이면 거무실 마을 걷기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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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2C(봉화, 영양, 영월, 청송)라고 불리는 경북과 강원도의 지자체가 시군간 공동사업의 하나로 '외씨버선길'을 만든다. 주관을 (사) 경북북부연구원이란 곳에서 맡았고, 그 산하에 일종의 '사업단'을 지난 7월 1일자로 발족시켰단다. 이 사업과 관련하여 봉화군민의 한사람으로 지난 5월 제주 올레길 연수에 이어 이번 지리산둘레길 벤치마킹을 다녀왔다. 하지만 두번의 연수를 통해서도  안타깝게도 '외씨버선길'의 성공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다. 그 이유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번의 연수를 통해서도 외씨버선길의 실체에 대해 별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구절에 나오는 '외씨버선'으로 BY2C를 대표하는 걷기길의 이름으로 삼는다는 것과 이 지역의 문화적 자연적 자원을 통합한 '생태관광길'을 만든다는 것과 이미 일부 예산은 내려와 있고, 3년간 총 100억이 투자될 거라는 사실이 내가 아는 '외씨버선길'에 대한 전부다.

2009년 이웃과 떠난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의 마을길걷기

아직은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드는 생각이지만  두번의 연수를 통해 만난 올레길과 둘레길의 사례와 '외씨버선길'은 거의 완전히 서로 대척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치를 찾아 길을 기획하고, 그 가치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 가장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는 길이 올레길과 둘레길이라면 외씨버선길은 어쩌면 가장 개발주의적이고 토목주의적인 사업방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씨버선길'은 길의 실체보다 예산이 먼저 확보된 성과주의적이고  예산따먹기식 사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관과 관변단체가 토목주의적 사업 방식으로 추진하는  '걷기 길 만들기'는 사실 형용모순이다. '걷기길'을 만드는 과정이 바로 그와같은 토목주의,  개발만능주의의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의 모색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몰각한 걷기길 만들기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걷기길은 길의 원초적 폭력성을 극복하고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는 생명의 길, 순환의 길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은 단지 물리적 공간에 놓여있는 길이 아니다. 흙바닥위에 길이 놓이기 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더불어 나눌 가치가 확보되고,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정신의 길, 마음의 길이 먼저 형성되었다. 그와같은 과정없이 뜬금없이 '예산'만으로 만들어지는 길은 말이 '걷기길'이지 기존의 '도로'에 다르지 않다.  '외씨버선길' 만들기에 다리를 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토목공사적 마인드로 접근할 경우 그 결말은 말할 필요도 없이 비극적일 것이다.

그래서 '길의 가치, 길의 정당성에 대한 지역주민의 승인과정이 있는가?' 는 물음은 길을 만드는 과정 끝까지 되풀이 해서 묻고 또 물어야하는 '주문'이다. 그 과정을 무시한 대표적 사업이 바로 MB의 4대강폭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4대강 사업의 비극적 종말을 예견한다.  외씨버선길은 그와 같은 오류을 피해야한다. 시작부터 잘못끼워진 단추라면 다시 풀어 처음부터 다시꿰거나 덜 궨 아랫단추부터라도 재대로 궤어야 한다. 안동의 퇴계예던길의 사례가 바로 지역주민과의 공감없는 사업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멀리보면,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나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이 천년넘어 이어지고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다리를 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토목공사적 마인드로 '걷기길'을 만들어 봤자 끝내 실패하고 말 이유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걷기길은 순례길이고, 치료의 길이고, 화해와 소통의 길이다. 단순화하면 길은 문화고 가치다.

외씨버선길'의 앞날이 순탄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외씨버선길' 정신의 부재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의 정신이 무엇인지 제시하라고 누군가 요구한다면 버벅거릴 수 밖에 없겠지만 '올레주의' '지리산주의'라고 해도 좋을 그 나름의 독특한 가치가 있고 철학이 있다. 그런데 '외씨버선길'은 나름의 고유한 '정신'이나 '가치' 나아가 테마 자체가 없거나 너무나 미약하다. 조지훈이 인지도가 높은 시인이고, 승무가 그의 대표적인 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2% 부족함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외씨버선길' 만들기를 반대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걷기는 시대의 트랜드를 넘어 인간 삶의 필수행위의 하나로 자리잡을지 모른다. 따라서 '외씨버선길'이 단지 올레길이나 둘레길보다 늦게 시작해서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어떻게 외씨버선길을 만들면 좋을까? 앞으로 마을길을 걸으며 수없이 곱씹고 고민해야할 것이다.
단지 현 사업단이 운영되는 3년의 사업기간이 사업의 완성이 아니라 외씨버선길의 초석을 닦는 기간이어야한다는 것과 더불어 '외씨버선길'을 만드는 과정이 단기적 프로젝트의 성공사례나 중안중부예산 따오기의 성공사례가 아니라 수백년을 이어질 명품길을 만든 사례가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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