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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어 먹고 살기도 바쁜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읽기를 외면할 수도 없다.
'협동조합기본법' 통과! 농협은행 탄생! 농어업회의소 추진!
3월 15일 발효예정인 한미 FTA와 MB가 호언하는 한중 FTA를 일단 재쳐두고도 올해 들어 굶직한 농업관련 이슈만 세가지나 된다. 농업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 농업인은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형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어 농민들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생겼는지, 농협은행의 탄생이 농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지자체에서 적극 나서 권유하고 있는 '농어업회의소'가 뭐하자는 것인지 거저 어리벙벙할 뿐이다.

궁금한게 많던 차에 때마침 봉화군에서 [농어업회의소]설립을 위한 읍면 순회설명회를 가진다고 했다.  세 가지 중 한가지 이슈만이라도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설명회가 열리는 명호면 사무소를 찾았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주민들이 참석을 했다.

이날 강연자는 정명채 한국농어촌복지 포럼 대표로, '한국농어촌경제연구원'을 이끄셨고 신활력사업,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통합의료보험 등의 영역에서 많은 기여를 해 오신 저명한 선생님이시다. 

이날 강연의 요지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속에서 '농업'이 핵심적인 위상을 가지며 이에 대한 우리의 생존 전략은 '협치농정'에 의한 '자치농업'의 구축이  유일하고, '농어업회의소'는 이를 위한 필수적인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전체적인 강연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은 군사력이라는 수단에서 '농업'의 장악을 통한 세계 지배로 변화되어 왔다.

2.  미국은 곡물메이저인 카길과 농식품 유통 메이저인 델몬트, 돌 등의 자본을 통한 세계지배에 나서고 있으며 UR협상에 카킬의 부회장이 대표로 참석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들어나듯 '무역자유화'는 결국 미국 곡물메지저를 통한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 불과하다.

3. 온두라스의 예를 보면, 델몬트사는 '적지적작' 원리를 내세우며 바나나의 최적지로 온두라스를 지목, 대대적인 바바나 농사를 독려하면서 농자금의 융자, 기술보급, 유통지원을 10여년간 진행했다. 그결과 온두라스 농지의 50% 이상이 바나나 농장으로 전환되었는데, 이후 돌이킬 수 없이 바나나 단일 농업이 온두라스에 정착되자마자 델몬트는 전세계 냉장유통 인프라를 장악하고 있는 자사의 힘을 배경으로 바나나 수매가를 통한 지배와 통제뿐아니라 다양한 수단을 동원 바나나농장 자체를 모조리 인수하여 온두라스 농업을 송두리채 수용하고 그 나라 농민을 농업 노동자로 전략시켰다. 이런 식으로 전세계 바나나 유통의 70% 이상을 장악했고 그 지배 구조는 공고화되어 난공불락의 성이 되었다.

4.  GATT, UR, FTA 등조차 결국은 미국 자본의 이해에 따른 세계 지배전략일 뿐이다. 하지만 국제적 역관계에서 이를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5. 한국기업의 국제적 유통망 사업을 위한 컴소시엄이 시도되었지만 카길의 압력으로 거의 100% 카길의 원료를 공급받아 가공하는 국내 식품대기업이 참여를 포기 이사업 자체가 무산되었다.

6. 당진에 카길 자본에 의한 대규모 식용유 회사가 설립중인데 이는 단순한 식용유 공장이 아니라 한국 농업 전체를 지배하기 위한 전진기지다. 이들은 전통식품인 간장, 고추장, 된장 등의 시장 까지 다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전통장류뿐 아니라 한국 농업 전체를 장악하고, 국가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노림수를 가지고 있다.

7.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도 60%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미국 자본의 이익을 반영한다. 출자배당을 통한 국부유출이 심각하고, 재벌을 이를 벌충하기 위해 중소업 고유 영역까지 침범해서 부의 수탈에 나서고 있다. 

8.  이들 모든 변화에 대응해서 우리 농업 농촌을 지키기 위한 자치 조직이 필요하다. 농어업회의소가 바로 그 답니다. 농어업회의소는 국제규약, 국제법인 UR등의 지배나 간섭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9. 독일의 경우 농업회의소가 독일 농업을 지키는 첨병으로 쿼터제(경작허가제) 등을 통한 생산량조절, 농자금, 농지, 농업정책 전반에 대해 실제적인 자율적 자치농업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 프랑스 등도 동일한 예로 들 수 있다.

10. 결국 그들 선진국의 선례에서 보듯 농업회의소는 자본의 지배로 부터 농업을 지키기위한 '자치농정'의 구현을 위한 수단으로 수립되었다.

11. 한국도 헌법 123조 5항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해야한다.'는 조항을 가지고 있고 헌법적 보장위에서 자치농업을 위한 농어업회의소를 수립해야한다.

12. 농어업회의소는 먼저 '법'을 제정하여 농업과 농업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책 결정, 국가간 협상, 예산 결정 등에 농어업회의소의 의결을 전제하도록 해야한다. 진작 그랬다면 한미FTA는 부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13.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협동조합화로 외국 자본의 침탈로 부터 우리 산업을 지켜낼 수 있겠지만 우선은 농식품 생산, 유통, 가공 분야를 협동조합화하여 대자본 침탈을 저지해야하고 이를 위해 농업인회의소가 나서서 농업 고유 영역으로 법제화해야한다. 


강연자인 정명채 선생님은 참 하실 말씀이 많으신 분 같았다. 장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고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모자라 질의 응답도 없이 서둘러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했다. 이번 설명회에서 그 점은 참으로 아쉬웠다. 

내용적으로 본다면 이분 강연의 결론은 농업회의소라는 자치 조직을 통해 UR, 한미FTA의 파고를 이겨내고 우리 농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씀하신 거의 대부분 내용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이분이 제시한 최종적인 제안에 대해서는 솔직히 충분히 수긍하긴 힘든 면이 있었다.

농어업회의소의 필요성을 피력하기 위해 미국자본의 횡포, 한국 재벌의 탐욕에 대해 충분히 인식을 같이함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대응에서는 100%공감할 수 없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반농업 친재벌, 친미 정권인 현 정부가 한국 농업을 거들낼 결정들을 다 하고 난 뒤에 '한국 농업 큰일 났다'고 외치며 농어업회의소를 건립하여 자치농정을 이룩하고 이를 통해 한국 농업을 지켜내자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사실 모든 정책을 바로 정권차원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것은 피해야하고 따라서 농어업회의소 추진자체를 MB의 음모로 격하시키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하지만 몇가지는 석연잖은 점이 있었다.
 
그리고 전국농민회 등 농민 단체들이 비록 단일한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 자체를 포기하는 인식은 문제가 있고, 또 농민단체의 협의체는 법외 임의 단체라서 '농업자치'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오직 '농어업회의소'만이 헌법에 보장된 농민 자조 조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원론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사변에 불과하지만 다음의 의문은 게속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자본주의사회구성을 지향하지 않더라도 탈 UR 아니면 최소한 내수 중심의 국가 경제 비젼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할까? 미국자본의 세계 지배 전략을 거부하면 우리도 북한 같은 인민이 굶어죽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까? 한미 FTA가 한국 재벌의 이해를 반영하고, 한국 재벌을 미국 자본에 예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를 기정사실화하는 인식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MB정권 교체후에 한미FTA 파기를 위한 준비를 미리부터 해 나가야 하는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날 농업업회의소 가입원서를 제출했다. 농업업회의소가 농업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꽤 유력한 수단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갈라져 있는 농업인 조직, 조직화되지 않는 농업인을 묶을 수 있는 조직적 대안으로 농어업회의소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를 빈다.

강연자 정명채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 하셨다.
"깨어있는 농민의 조직이 한국 농업농촌의 마지막 보루다!"
어디서 많이 듣던 구절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그래서 의견을 달리함에도 인간적 호감, 진정성에 대한 공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같다. 
 
강연을 통해 처음 뵌 분이지만 정명채 선생님은 소탈하시면서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으로 느껴졌고, 진정성있는 한국 농업 농촌의 우군임에 분명해 보였다. 그런 분의 강연을 직접 듣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어 참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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