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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진 산골마을은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산짐승 울음소리만 간혹 정적을 깰뿐 사람 사는 흔적은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어둠이 설금설금 마을을 삼키려들자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급히 저녁을 드시고 이골저골에서 소문을 들으신 주민들이 하나둘 비나리마을학교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비나리상영회] 플랭카드가 펄럭이는 비나리마을학교는 이날만은 어둠을 이기고 빛이 마을의 밤을 지배했다.

사실 “여성영화상영회”를 비나리마을에서 갖기로 약속을 받고 보니 멋진 타이틀에 걸맞는 주민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같았다. 밭둑에서 마주친 이웃 아주머니께 영화보러 오시라고 권하면서도 혹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뭔놈의 영화?”라고 타박이나 하지 않으실까 걱정이 앞섰다. 가난한 산골마을이지만 그래도 TV는 없는 집이 없고 그러다보니 드라마다 뭐다 할 것 없이 넘치는 영상 속에 빠져사는 게 현실인데, ‘영화’는 또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TV가 유일한 낙이자 문화매체인 산골마을에서 한편의 영화를 튼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정정엽작 제 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스터]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비나리마을학교를 밝히던 불빛이 꺼지고, 왁작지껄 떠들던 사람 소리가 죽어들었다. 대신 마을학교 강단 가득 반짝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빛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웃의 잔기침 소리와 산만한 아이들의 분주함이 잦아들고, 순간 화면가득 스위스 산록의 아름다운 마을이 우리의 시야를 압도했다. [할머니와 란제리]!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만으로도 정감이 넘쳐났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더 큰 공감이 갔다. 그래서 일까? 비나리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산골마을에서 한명의 할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이 갖는 비슷한 처지에 공감하는 관객들의 맞장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유쾌한 할머니들의 반란이 끝나고 크게 한판 웃음과 박수가 쏱아지고 난 다음 여성영화제 관계자의 사회로 간단한 영화감상평을 나누는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30년만에 영화를 보셨다는 멀리 만리산에서 달려오신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승리에 속이 다 시원하다는 북곡리 아주머니, 할머니가 속옷장사하시겠다면 ‘쪽 팔릴것 같다’는 중학생 남자아이, 그냥 이렇게 주민이 모여 같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좋다는 도천리 주민, 그리고 도시 못지않게 우리 비나리마을도 문화와 예술이 넘쳐나는 곳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이웃 아저씨까지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밤이 깊어 한분두분 집으로 돌아가고, 미련이 남는 사람은 남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상영회를 다 마무리하고 나니 처음 가졌던 걱정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는지 확인이 되었다. 산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영화에 무슨 관심을 보이겠냐는 생각은 짧은 소견머리가 낳은 편견에 불과했다.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지역 정서에 여성주의 영화가 거부감을 주지나 않을지, 혹시라고 격한 내용들로 주민들을 자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괜한 기우였다. [할머니와 란제리]의 내용이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설령 격한 내용을 담은 다른 영화가 상영된다고 해도 주민들은 벌써 나름의 시야를 가지고 보다 폭넓게 소화해낼 자질을 다 갖추고 있을 것같았다.

이번 상영회를 통해 터득한 한 가지가 또 있다.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영화는 같이 보는 재미에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혼자 몰입해서 보는 것도 좋지만 이웃과 더불어 같이 분노하고 같이 기뻐하며 맞장구로 공감을 나누며 보는 영화는 또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다.

산골마을 비나리에 좋은 영화를 매개로 주민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감사드린다.

송성일 비나리마을학교 대표

<2012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뉴스레터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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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서 더 좋은 여성영화 봉화에서 만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gogo시네마

10 19일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열려

 

 

전국 각지를 누비며 다양한 여성영화로 지역관객을 만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지역순회상영프로젝트 gogo시네마가 스위스 코미디 영화 <할머니와 란제리>를 들고 봉화를 찾아간다.

 

여성가족부가 후원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청량산비나리마을이 공동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10 19일 금요일 오후 7시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열린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gogo시네마는 찾아가는 상영회로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여성영화의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성평등 문화 형성에 기여하는 뜻 깊은 행사로 기대된다.

 

할머니들의 유쾌한 반란 <할머니와 란제리>

1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여성영화 선보여

 

<할머니와 란제리>스위스를 배경으로, 남편을 잃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속옷 가게를 열려는 할머니 마르타와 이에 반대하는 마을 남자들의 갈등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린 수작이다.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할머니의 반란이 속시원한 웃음을 던져준다.

영화 상영 후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석해 여성의 독립과 노년의 삶에 대해 진솔하고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지역순회상영프로젝트 gogo시네마를 통해 성평등문화를 확산하고 지역 여성 연대와 함께 발전하는 영화제로 계속 활동해 나갈 것이다.

 

[작품 상세 소개]

 

<할머니와 란제리>

드라마 | 베티나 오베를리 | 2006 | 상영시간: 89 | 제작국가: 스위스 | 전체 관람가

스위스 작은 시골마을에서 남편을 잃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속옷 가게를 열려는 80세 할머니 마르타와 마을 남자들의 갈등을 유쾌하게 그린 수작. 시골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맞서 속옷 가게를 준비하고 지키려는 마르타와 친구들의 도전기를 통해 개인의 독립과 자긍심은 나이와 성을 불문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임을 통쾌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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