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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족 일본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래도 결혼 20주년 기념여행이라는 기분을 나게 하는 이벤트를 무엇으로 할까 잠시 고민했다. 결론은 료칸이었다. 이전에 가족이랑 떨어져  혼자서 단체연수로 규슈여행을 갔을 때 이런저런 대중(?) 료칸같은데서 몇밤을 지낸 적이 있었고, 그때 료칸의 멋에 반해 오랫동안 가족만의 여행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전체 5박의 일정중 1박을 선상에서 하고, 3박을 값싼 비즈니스 호텔을 이용한다고 해도 적어도 하루만은 료칸에서 하룻밤의 사치를 향휴하는 것으로 잡았다.

하지만 료칸은 비용이 만만치가 않고, 서비스가 천태만상이어서 선택에 어려움이 많았다. 일단 지역은 처와 딸을 동반한 여행이니만치 쿠로가와나 고코노에보다는 일본 여성들이 최고로 좋아한다는 유후인으로  정했다. 그렇지만 유후인만 해도 100여개의 료칸이 성업중이다보니 최종 결정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일단은 가격도 싸면서 독립된 노천탕도 있는 중급정도의 료칸 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유데이 코우노쿠라]다.

코우노쿠라는 유후인 역에서 좀 거리가 되었지만 다행히 료칸측에서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차량을 보내준다고해서 미리 송영예약까지 한뒤 출국을 했다. 아침에 하카다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터미날로 이동하여 '유후인고'라는 고속버스를 이용 점심무렵에 유후인에 도착했다. 역앞에 있는 가게의 코인락커에 가방을 넣어두고  유후인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오후 5시가 다가오자  약속장소인 유후인 역앞엘 나갔다.  역시 일본답게도 정확한 시간에 송영승합차가 도착했다. 밝게 웃는 젊은 여성분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유후인 외곽을 삥 둘러 10여분만에 코우노쿠라에 도착했다. 

코우노쿠라는 벌써 여러번 료칸예약사이트를 통하거나, 블로그를 뒤져 친숙해져 있었다. 차가 도착하자 마당까지 쫒아나온 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환영을 받으며 물과 나무가 어우려진 일본식 정원을 지나 본관에 들어섰다. 조그마한 로비에 카운터가 있고, 여주인은 간단한 인사 후에 숙박부를 내밀었다. 숙박부를 적고나자 직원은 앞장서서 시설안내를 했다. 로비의 왼쪽은 공동식사처고 오른쪽으로 좁은 복도가 나오고 바로 공용 온천이 았었다. 공용온천 출입구 앞에는 작은 쇼파와 기념품 판매대, 여행 안내 홍보불같은 것이 비치되어 있었고, 공용온천은 남여 탕 입구가 나란이 붙어있었고, 온천을 들어서면 바로 실내탕이고 실내탕에 붙어 노천탕으로 나가게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하루밤을 지낼 방은 본관의 현관을 나와 본관의 왼편에 있는 별채의 첫호실이었다. 무릎높이에 있는 열쇠를 열고 들어선 방은 지붕이 높은 다다미방으로 침실과 코다츠가 있는 다실이 붙어있는 형식으로 세식구가 자기에는 공간이 아까울 만치 큰방이었다. 옷장과 이불장은 벽장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이런저런 가구와 도자기 같은 장식품들로 실내가 꾸며져 있었다. 침실방의 한쪽에 미닫이 문을 열자 화장대와 세면시설이 있는 작은 방이 나왔고, 그 방에서 또 다른 문을 열자 그 방은 일본다운 작은 화장실이었다. 앙증맞은 공간에 설치된 세면실과 화장실을 보니 진해에서 일본식건물이었던 이모집과 외삼촌 집에서 숨박꼭질하고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어린시절 놀던 일본식 집들은 모두 목조 2층 건물이었고, 또 구석구석 작은 공간들이 많아 사촌들과 숨박꼭질놀이를 하고 놀기에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숨겨진 공간이 많은 집들은 그만치 또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수많은 이야기거리와 가슴 아린 추억을 담고 있었다. 벌써 40여전 전의 일이 되어버린 꼬마의 뇌리속에 묻혀 있던 추억들이 이렇게 유후인의 한 료칸에서 상기되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졌다. 장례도 참석하지 못했던 이모님의 다정했던 얼굴이 떠오르고 지금은 다 연락을 끊고 사는 외사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방을 안내하고 저녁 식사시간을 예약받은 직원 아주머니가 방을 나가자 우리세 식구는 기다렸다는 듯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온 방을 뒤지듯이 구석구석 살펴보고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겉옷을 벗어던지고 유카타를 입었다. 색상이 중성적이라서 딸과 아내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카타를 입고 게다를 신을 수 있도록 버버리 장갑같이 엄지발가락만 따로 있는 양말을 신었다. 사진을 찍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차를 마시고도 저녁식사까지는 시간이 남아 세식구가 모두 남여공용탕과 전용 노천탕으로 헤어져 온천을 했다. 남여공용탕은 하나의 탕을 남녀탕으로 간막이를 하고, 다시 각각의 탕을 실내외로 간막이쳐서 노천탕과 실내탕으로 나눈 그런 구조였다. 실내탕 바닥에도 노천탕에서 흘러들어온 낙엽이 손에 잡혔고, 남여탕은 대나무 한겹으로 구분되어 있어 서로 대화를 나눌수도 있었다. 절묘하게 택일을 한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가족이 도착했을 때는 모두 8실이라는 료칸에 손님이 전혀 없었다. 나중에 저녁 늦게 부부로 보이는 한쌍의 손님이 들어오긴 했지만 아뭏튼 공용탕마저 독탕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료칸매너(?)의 부담없이 싣컷 즐길수 있었다.

흩어진 세식구가 다시 모여 식사처에서 소위 '가이세끼' 요리로 저녁을 들었다. 기대가 너무 컸는지 그렇게 대단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해산물과 육고기를 고루 갖춘 일본 요리를 한 코스씩 즐기다 보니 무려 한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마 식사 한끼에 90분 걸린 것은 내 오십 평생 처음일 것이다. 직원 한분이 거의 우리 테이블에 붙어있다시피하며 음식을 내어오고 접시를 치우고 그리고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각각의 요리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체질이 머슴체질이다 보니 난생 처음 받는 서비스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다가 한번씩 이렇게나마  대접받는 시간들을 갖는 것도 괜잖은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나서 방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직원이 이부자리를 깔아놓았다.  료칸에서의 시간을 잠으로 다 보내기가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사실 료칸을 먹고 씻고 자기위한 공간이 아닌가. 특히나 전날 선상에서 자는둥 마는둥 밤을 샌데다가  또 하루종일 유후인 거리를 헤메다보니 피곤이 물밀듯 몰려왔다. 도대체 저녁을 먹고 나서 잠들기 전에 우리 세식구가 무슨 대화를 하고 무엇을 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을 만치 깊고 편안한 잠속으로 골아 떨어졌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에 새벽 일찍부터 눈을 떳다. 무슨 특명이라도 받은 듯이 식전 온천을 즐기기 위해 탕을 찾아 들었다. 얼굴에 눈을 맞으며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수에 눈이 내려 녹는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다 봤다. 문득 이 호사를 누려도 좋을지 별일이 없을지 걱정이 될만치 그 순간의 시간이 너무나 충만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오래동안 누적된 마음의 때가 녹아 흐르는 듯 편안햐졌고 사르르 두눈이 감겼다. 

저녁에 먹었던 가이세끼요리에 비해 훨씬 간단한, 하지만 너무나 넉넉한 아침을 먹고 나서도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은 코우노쿠라에서 보내고 싶어 송영 시간을 10시로 부탁했다. 아침식사후 또 세식구는 각각의 탕으로 흩어져 온천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코우노쿠라 근처 마을을 산책했다. 아무것도 없는 간혹 눈발이 흩어지는 평범한 일본 농촌의 마을안길을 걸으며 코우노쿠라에서 보낸 하루밤의 사치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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