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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밥상머리에서 '다단계에 빠진 대학생' 이야기가 나왔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서울의 거여동, 마천동에 일대에 5,000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다단계에 빠져 쪽방집단 합숙을 하고 있단다. 서울 전역으로 보면 약 1만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다단계에 빠져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서울시의 대학생 수를 약 100만명으로 상정한다면 학생 백명당 1명은 다단계에 빠져있는 셈이었다.
대학생 딸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남의 일로만 느껴질 수 없기도 했지만, 다 떠나서 왜 우리 대학생들이 그렇게 다단계로 내몰리고 있을까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었고 분통이 터졌다. 아내와 저녁 식사 시간 내내 왜 그럴까, 왜 대학생들이 다단계로 내몰리거나 스스로 몰려들까 묻고 또 물었다.
먼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대해진 물직적 욕망, 돈에 대한 집착이 다단계로 학생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은 생활고든 소비벽이든 늘 돈이 궁하도록 생활패턴이 셋팅되어 있다. 이는 물론 대학생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또한 이는 학생 개개인의 생활습관이나 '정신상태'와 관련된 문제라기 보다는 물질지향적 사회시스템, 가치 체계 전반이 개인을 지배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보인다. 여하튼 한국의 대학생들은 늘궁핍하다.
또한 한국사회의 대학생들은 심화되어가는 한국의 정글 자본주의, 극소수 재벌의 독식으로 치닫는 카지노 자본주의 속에서 아무런 개인적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채 절망하고 있다. 여기서 카지노 자본주의란 자본주의의 한 종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소위 '돈내고 돈먹는' 사회에서 그들의 미래는 사회적, 정책적 수단을 통해서 최소한 수준조차도 전혀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대학생들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의 늪에 빠지거나 기대에 못미치는 불안정하고 자존감을 주지 못하는 일자리에 삶의 기탁해야할 형편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불안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한 '개인 주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가 무너진뒤 성숙한 개인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개인들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집단이라는 권위에 의존해 매몰되는 현상의 하나가 한국사회의 폭발적인 종교산업의 번창을 가져왔듯, 같은 이유에서 다단계의 폭발적 번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는 다단계 속성을 가지고, 모든 다단계 역시 일종의 종교적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집단적 의존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사실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기까지 언제 한번 입시로 부터 자유롭게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신적 모색의 기회를 가져보기나 했을까. 그래서 그들은 늘 외롭고 그래서 소속감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한국의 대학생들은 궁핍한 주머니,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외로움 이라는 세가지 이유에서 다단계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뉴스를 검색했다. 기사를 읽다가 발견한 것이지만 부정적 내용의 기사에는 꼭 '다단계' 앞에 '불법'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기사는 불법 다단계와 합법다단계가 구별되어야 하고 합법 다단계는 당연히 보호 받아야할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참을 검색해 봤지만 과문한 탓으로 불법다단계와 합법다단계을 나누는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자본금의 규모, 합숙의 강요 유무, 반품의 가능 유무 등등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차이를 나열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지만 다단계의 가치 창출(?) 시스템의 본질적 차이로 불법과 비불법을 나누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고용창출 등 다단계의 순기능을 주장하는 기사도 보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사회에서 약 360만 명 정도가 다단계 종사자란다. 전국의 총 취업자수를 2300만명이라고 본다면 360만이라는 숫자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360만 다단계 종사자가 취업자통계에 포함되었는지 알수 없고, 또한 소위 합법다단계 종사자 수만 집계 한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떤 경우든 충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단계가 지배하는 한국 대학 사회의 모습은 카지노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다. 가슴은 분통으로 터지지만 해결을 위한 처방은 단순하다. 지금보다 학비는 훨씬 싸져야 한다. 반값등록금은 그래서 나온 주장이다. 생존경쟁은 완화되어야하고, 이는 복지의 강화만이 유일한 방책이다. 사회적 안정망과 재교육 시스템이 갖춰지고, 사회적 가치가 공정하게 분배된다면 '대학가 다단계 기승' 같은 문제는 그야말로 봄눈녹듯 사라질 것이다. 물론 자살공화국의 오명도 더불어 사라지고 말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숙제를 우리손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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