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26명을 태운 비행기는 텅빈 양양 공항을 이륙했다.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톡. Yakutia Aero 라는 러시아 국적 항공사 비행기를 탄 덕분에 우리는 북한상공을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국적기에 비해 30분에서 1시간 빨리 도착한다고 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북한 상공을 지나지 않았고 북한 산하를 볼수 있다는 기대는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그래도 나의 설렘은 다른데서 왔다. 우리일행이 탄 보잉 737-800기는 오직 우리일행 26명만을 만을 위한 전세기라고 했다. 항공사가 도대체 어떻게 타산을 맞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남과북의 대치 덕분에 남쪽방향으로 이륙한 비행기는 곧바로 북쪽을 향해 유턴을 해서 울릉도 근해를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방향을 잡았다.
처음 타보는 러시아비행기는 여는 비행기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 국적기 같이 젊고 아리따운 승무원이 아니라 나이에 무관하게 승무원을 채용한 유럽 비행기라는 느낌이 든 것은 그렇다고 해도 승무원의 무표정은 분명히 한국과 다른 것 같았다. 이륙후 10분이 지나지 않아 안전고도에 도달했는지 무표정한 승무원은 음료수 서비스를 하고 기내식을 나눠줬다. 애써 웃어주니 웃음으로 답해주긴했지만 여행안내서에서 소개한 러시아인의 무표정 뒤에 숨겨진 따뜻함과 친절함을 확인하기에는 비행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륙 한시간 20분만에 우리 비행기는 바다를 건너 시베리아가 시작하는 육지로 접어들었다.
1시간 시차의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서 가이드를 조우하고 곧바로 대절해 놓은 버스에 올랐다. 3박4일중 첫날의 일정은 오직 블라디스톡에 도착하는 것이 전부였다.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해 저녁식사를 하고 현대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이 소증한 3박4일중 1박1일이라는 사실이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친절한 가이드를 통해 몇가지 주의점과 러시아 문화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으로 그나마 허기를 달랠수는 있었다.
블라디보스톡 유일한 5성급호텔이고, 현대 사옥과 같은 외관을 지닌 현대 호텔에서 짐을 풀고 곧바로 잠을 청하기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밤이 아쉬웠다. 4명의 동지가 작당을 하고 호텔을 나와 블라디보스톡의 밤길을 나섰다. 하지만 호텔에서 멀리 벗어나기에는 우리의 여행경험은 적고, 두려움은 많았다. 호텔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Saint Pub이라는 맥주 바 같은 곳을 들어가니 우리가 환영받는 손님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배척하는 기색은 없었다. 안되는 언어로 어렵게 술과 음식을 시켜 늘 같이 고생만하고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동지 들과 러시아에서의 화려한 첫밤을 같이햤다. 다가오는 선거와 지역정치 그리고 남북 대치와 통일 그리고 항구적인 반도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 돌아온 호텔에서는 일부 일행이 소주에 절어 훌라 삼매경이다.
화려한 조식을 마치고 둘째날의 일정은 신한촌 방문으로 시작했다. 1900년대 초반의 이주의 역사와 파란속에서 자존과 삶을 지켜온 같은 민족의 흔적을 마주치는 일은 나에게 낯설고 힘든 일이었다. 여행전에 [조선공산당사]를 통해 알게된 1910년대 연해주를 일대의 볼세비키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낱낱이 살피기에는 여행 성격이나 동행한 일행들의 성향에 비추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최재형과 김 알렉산드라는 만나고 싶었다. 저녁무릅 아르바트 거리에서 최재형은 몰라도 한국 청년들은 다 아는것 같은 소위 "해적커피"를 한잔하고 나서 인근에 있는 최재형선생의 생가를 찾는 것으로 나의 기대는 접어야 했다. 김알렉산드라는 만나는 것은 예정된 일정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신한촌은 개발되고 오직 비석만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초라하고 무미건조했을 비석공원은 한분의 의인으로 인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리바체슬라브선생! 그분을 만난것은 헛된 감상과 무익한 너스레로 끝날 이번 여정을 뜨거운 역사의식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값진 기회로 만들어주었다. 신한촌기념비를 한국에서 만들어 불라디보스톡으로 싣어오는 과정에서 세관의 횡포로 어려움에 처하자 저신의 재산을 털어 관세를 내어 통관을 시키고 기념비 설립후에도 주변건물에 막혀 초라하게 묻힌 기념비나마 지키기위해 비 옆에 움막을짖고 사시사철 살아오셨단다. 10여년전 그분의 공적이 국내에 알려져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에도 위촉되었지만 그 이후 어떤 지원이나 예후가 이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3년전 중풍이 온 후에도 인근으로 가족을 이사시켜 출퇴근하며 기념비를 지키고 계신다고했다. 비를 지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감히 물을수 없었지만 나는 그냥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졌다. 삶은 어쩌면 작고 단순한 것에서 그 숭고함이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한촌 기념비공원에서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우리 일행은 브라디보스톡 시내를 여러번 가로지르며 유명 관광지와 유적지를 주유했다. 인구 60만 정도의 규모 때문인지 도로로 인한 동선 때문인지 우리가 묵은 호텔앞을 이날 하루동안 서너번은 다시 지나간 것 같았다. 해짧은 하루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볼수 있어 기억의 타래가 바로 얽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금각교가 내려다 보이는 독수리전망대라 불리는 언덕위에 세워진 러시아 문자를 창제했다는 끼릴형제의 동상, 알레우트스카야 거리의 기차역과 철도 박물관, 레닌동산과 율부리너 동상을 구경하고, 전쟁공원의 꺼지지않는 불과 니콜라이 개선문을 둘러봤다. 그리고 잠수함 박물관과 루스키 다리를 건너 학생 4만명에 교수만 5천명이나 된다는 극동연방대학교를 지나 '북한섬'이라 불리는 해안가에 찬바람을 맞고 우리는 아르바트 거리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고 랍스타로 배를 불린뒤 블라디보스톡기차역으로 향했다.
나의 버킷리스트중의 하나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꿈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여건이 안되지만 그 맛봬기를 할 기회가 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약 1000km를 달리면 나오는 하바롭스크를 향해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벅찬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풀기위해 신발끈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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