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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해가 고향인 사람이 어쩌다 경북 최북단 봉화에 살게 되다보니
사실 바다가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1시간 30분 거리에 동해바다가 기다리고 있지만
동해의 밋밋한 수평선은 남해의 멋에 중독된 사람에게
그다지 충분한 만족을 주질 못합니다.
원래 자기 고향 것이 최고라고 믿는 합리적이지 못한 욕구겠지만 말입니다.

일년에 최소한 2번, 추석과 설날이면 고향 진해를 다녀옵니다.
그리고 고향길에 꼭 바다를 들르게 됩니다.
올해는 거제시에서 운영하는 '거제자연휴양림'에 미리 방을 예약했습니다.

2월 11일.
설날을 3일 앞두고 귀성길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미리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 7시 출발 예정이었지만 6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한시간만에 3~4cm나 쌓이는 바람에 출발을 망설이다가
1시간이나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눈이 잦아들것 같지않아 더 지체하다간 완전히
발이 묶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체인을 감고 출발했습니다.
계속되는 눈발속을 거북이 걸음으로 달리는 차장 밖은
완전히 설국으로 변해버렸고,
국도는 거의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산했습니다.
평소 1시간도 안걸리는 안동까지 2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지만
안동이 가까워 오면서 길가 여기저기 접촉사고 차량이 늘부러져 있고,
언덕길을 오르지 못해 미끄러지는 차량을 여러대 목격해야했습니다.
안동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체인을 풀고,
녹기 시작해 질척거리는 고속도로를 접어 들었습니다.
거의 군위휴계소 근처까지 오자 고속도로의 눈이 녹아
주행에 어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진해 고향집에 도착한 것이 거의 12시, 바로 동생을 싣고 진해 속청항으로 달려가
거제 실전항 사이를 오가는 1시 30분 발 삼보11호를 탈 수 있었습니다.
명절 직전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한산한  배에 올라
눈길 운전으로 쌓인 피곤을 풀고 한껏 바다 향취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진해 속천항을 떠난 배는 오랜 기억속의 흔적을 따라 흔들리며 1시간만에 거제 실전항에 도착했습니다. 지나온 바다는 내해임에도 불구하고 너울이 일어 배가 흔들리고, 찌푸린 날씨에 간간히 가는 눈발마저 날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화속 모험을 떠나는 소년처럼 마냥  가슴두근거리며 내내 갑판과 선실을 오가며 바다와 하늘, 그리고 스쳐가는 섬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실전항은 거제의 북단에 가깝고 숙박지인 자연휴양림은 거제의 남단이다보니 점심은 가는 길 중간쯤인 옥포에서 해결했습니다. 배는 고프고 마땅한 식당은 없고 거리를 잠시 헤메다 들어선 식당에서 아구찜으로 즐겁지 않은 식사를 하고, 다시 차를 달려  구조라를 거쳐 학동몽돌 해수욕장에서 내륙으로 우회전한뒤 얼마지나지 않아 산속의 자연휴양림에 도착했습니다.
 

자연휴양림은 당연히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해안가에서 차로 5분이상 떨어진 첩첩산중의 참나무 숲속에 자리한 숙소였습니다.
10인실, 15평짜리 목조주택으로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지낼만한  공간이었는데
7만원이라는 비교적 싼가격이었습니다.

애초에는 낚시를 할 계획이었지만 여전히 날리는 싸락눈에 바람까지 불어 취소하고 다뜻한 방안에서 모처럼 TV도 보고, 주변 등산로도 걸으면서 쉴 수 있었습니다.
해가지고, 저녁을 먹고나니 완전히 암흑천지에 고립무원, 이웃의 숙소에는 불빛 하나없고 휴양림전체는 우리 밖에 없는듯 고요했습니다. 마땅히 나갈 곳도 없고 해서 미리 이부자리를 깔고 거제 지도를 펼쳐  다음날의 쾌적한 날씨를  기원하며 이런 저런 계획들로 일정을 짜는 것으로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다음날은 동피랑을 둘러보고 그리고 충무김밥을 꼭 먹어본다는 두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길고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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