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남편은 누구인가
나는 화가 류준화의 남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화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부러워한다. 멋진 화가가 아내이니 얼마나 좋겠냐며. 그런데 아내의 전시장에 가서 만나는 화가라는 직업을 알고, 그림을 아는 친구들은 애처로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며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고생 많다.”
화가인 아내는 늘 자신과 자신이 그리는 그림의 정체성을 묻는다. 화가의 남편인 나도 마찬가지다.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동정의 대상인 나의 정확한 아이덴디티는 무엇일까 늘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화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정체성이 화가의 남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 당한다. 아니 화가 남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는 스스로 찾아내고 성취해 나가는 요소보다는 외적으로 부과된 자격 조건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좋게 말해 화가의 남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일정한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화가의 남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화가를 꾀어 아내로 삼는가 하는 천박한 문제가 아니라, 화가의 남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갖추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요건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화가의 남편은 힘이 세야 한다. 캔버스 틀을 짜고 천을 씌우는 작업에서부터 그림을 포장하고, 들고 나르는 일은 육체적 힘(체력)을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더 중요하게는 아내의 작업 전 과정 -창작과 홍보 마케팅까지-을 서포터 할 수 있는 경제적 힘(재력)과 컬렉터를 조직하고 인맥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힘(권력)을 필요로 한다. 덜 중요하게는 아내의 그림은 제일 먼저 보아야하는 비평가의 입장에서 작업의 방향을 조언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최소한 다 그려놓은 아내의 그림에 아우라를 부여해 주고 멋진 이론적 포장을 할 만한 지적인 능력(지력)과 감성적 능력까지도 요구된다. 뭔 말인가 하면, 아내는 그림을 그리지만 화가의 남편은 아내의 그림이 미술시장을 포함한 사회적 인정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후원군의 역할을 해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가 류준화는 참 복이 없다. 재력과 권력은 물론이고 감성적 능력과 지적 능력도 갖추지 못한 무지렁뱅이 농부를 남편으로 맞았으니 말이다. 한번 씩 한숨을 쉬며 아내는 말한다. ‘야, 우리 둘 중에 하나라도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던지, 안정적인 벌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장면에서 가만히 있을 화가의 남편이 아니다. “그래 말이야. 너라도 좀 잘 벌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는 한숨을 쉬며 골백번 더 리피트 된 에필로그로 대화를 마무리 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사실 화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화려한 전시장에서 축하를 받고 카메라의 조명세례를 잠시잠깐 받기도 하지만 전시장에 그림을 내 걸고 전시회라는 것을 가지기까지 밤낮 들인 공을 보상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미쳐 인생을 건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이름붙이고 칭송하거나 외경하기까지 한다. 나의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그림 그리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 어쩔 수 없이 화가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이 화가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금전적 보상, 작가로서의 명예, 예술적 성취감……. 하지만 내가 보고 겪은 바에 따르면 예술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한 가지 입장이 있다.
“예술은 병이다.”
아내는 전시 계획이 잡히고 나면 갑자기 변신 한다. 우리 집 불쌍한 강아지인 초롱이를 산책 시키고 밥 주는 일에 소홀해 지는 것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세상만사 다 흥미를 잃고 한 지붕아래 살아가는 남편의 존재도 잊어버린 사람 같이 행동한다. 사적인 약속들을 잊어버리는 일은 사소한 변화에 불과 하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따끈한 밥과 국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기조차 한다. 전시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 아내는 평소에 무던하던 모습을 완전히 잃고 한숨이 늘고, 깊은 잠조차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기 일쑤고, 근거 없고 대책 없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간혹 캔버스를 더 이상 물감으로 채우지 못하고 방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아내는 한없이 날카로워지기고 하고 이내 또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화가의 남편은 예술이라는 병을 잃고 있는 환자를 보살피는 간병인이면서, 동시에 같은 병을 나누어 앓아야하는 만신이나 박수 같은 사람이다. 이 시점에서 화가의 남편은 자신만의 고유할 자질을 백분 발휘해야한다. 화가인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도록 재롱을 떨고, 힘 빠진 손에 붓을 다시 쥘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세상은 그림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고, 설사 당신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당신의 존재가치는 조금도 손상 받지 않는 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당신이 비록 화가지만 예술은 당신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인생의 의미는 ‘예술’보다도 더 풍부하고 심원한 것임을 피력한다. 아내는 나의 천박한 사설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티격태격 거리다 보면 저절로 슬럼프에 빠졌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의욕을 회복하고 필력이 살아나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으로 진입해 있다.
나는 잠시 망상에 빠져 자신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흐뭇해 하기도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되돌아보면 사실 나 자신이 화가의 남편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일관되게 그냥 화가의 ‘머슴’으로 남아있길 원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직 몸으로 때우는 역할 밖에 할 재간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최고의 남편조차 화가인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죽어가는 의뢰인을 위해 사력을 다해 굿을 하던 무당도 결국 그 의뢰인의 죽음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는 화가인 아내의 고뇌가 때론 가혹해보이기도 하고, 나누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짐을 넘겨받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화가 자신만의 몫 앞에서 나는 좌절하기도 한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벌써 22년을 맞았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그 세월이 흘렀지만 되돌아보면 아내에게는 지긋지긋한 세월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아내에게 월급봉투라는 걸 구경시켜주지도 못했다. 당연히 살림살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재력, 권력, 지력을 동원한 지원은 고사하고 오히려 방해꾼으로 이날 평생 살아온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괜한 호기에 귀농이랍시고 산골로 이사를 온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한 산골마을에서 농사짓는 남편과 살면서 그림이나 그리는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예술도 사회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보니, 산골살이가 화가에게 주는 치명적인 불이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산골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결국 도시로, 서울로 그림을 들고 나가야한다. ‘운송비’는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대중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한다. 그림 운송도 보통문제가 아니지만 동료 작가를 만나고 화단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화단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도 못난이 짓이지만 그렇다고 담을 쌓다시피 하는 것도 화가의 바람직한 처신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화가의 남편인 내 탓이다.
사람의 인연이 참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낯선 남녀가 만나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어 20년을 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우주의 많은 신비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와 같은 연이 화가의 예술적 성취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해도 위대한 ‘작품’은 가혹한 ‘삶’, 초라한 ‘존재’를 초극하는 지점에서 성취된다는 일념으로 쉼 없이 정진하시길 빈다. 남편으로서, 그리고 한명의 관람객으로서, 그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 지금껏 이룩한 당신의 예술적 성취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인생이여 고마워요>展 도록 원고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타 전시실
전시기간 : 2012.2.24~5.20
참여작가 : 류준화, 이진경, 정순자, 성광명, 박석신
도록필진 : 안상학, 박남준, 송성일, 최서연,신희지 등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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