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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9일
전날 저녁에 있은 전시 오픈과 저녁 술자리에도 불구하고
또 하루의 걸음을 위해 일찍 눈을 떳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카멜리아힐을 나서 무조건 한라산쪽으로 향했다.
등산정보도 없고 정확한 길도 모르지만
마냥 북동쪽으로 걷다보면 한라산이 나온다는 무모한 믿음하나에 의지한채
이날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길을 나선지  1시간 만에 1115번길을 만나 다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탐라대학교방향으로 계속걸었다. 길을 가며 도로표지판에 의지해 한라산을 찾는 무모한 짓을 포기할 때즘 이미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작정 길가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지만 다 지나가고 마침 택시 한대가 정차했다.  '한라산 갑시다!'는 저의 무모한 요구에 기사님 왈 이미 입산시간이 지났고, 한라산이 그렇게 뒷동산오르듯 만만한 산이 아니란다. 차라리 가까운 윗세오름이라고 한라산의 두번째 봉우리를 오르는게 나을 거란다.  그리고 본인은 사정상 그쪽 손님을 태울 수가 없고 동료를 불러주겠단다. 택시가 떠나고 또 한참을 걷다가 떠나간 택시 기사의 동료로부터 전화가 오고 곧 택시도 왔다.



택시비 2만원에 영실탐방로 입구까지 도착했다. 단체 등산객으로 보이는 무리들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 그리고 가족 연인단위의 등산객으로 등산로가 미어터졌다. 입구 휴계소에서 우동을 한그릇씩 먹고  사람들의 발길에 휩쓸려 윗세오름을 향했다.  사람들이 많아도 산은 산대로 산다웠고 이어지는 등산로는 비록 가파른 곳도 많았지만 힘겹거나 지루한 코스는  거의 없었다. 멀리 서귀포를 넘어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등산로를 걷는 재미는 아름다운 산세와 더불어 등산객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했고 걷거 또 걸었지만 지치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고 초원이 펼쳐진 사이로 설치된 데크를 따라 한참을 걷기도 했는데, 정상부근에서 시작한 눈발을 맞으며  하산 코스를 어리묵탐방로로 잡았다. 한라산을 맛만본 두세시간의 등반과 하산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윗세오름이 준 인상은 깊었고 그만치 많은 기억으로 남았다.


어리묵탐방로 안내소까지 내려와 서귀포행 버스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길을 걸었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단체버스를 이용하던지 아니면 등반을 시작한 코스로 다시 하산을 했기때문이다.
서귀포로 향하는 길은 거의 롤러코스트 같았고 기사님은 무뚝뚝했다.
올레길 8코스를 맛보기위해 적당한 하차지점을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고
무조건 중문단지에 하차를 하고 바다를 향해 걸었다.


제주 컨벤션센타를 만나고 왼쪽으로 길을 바꾸자 얼마안있어 아프리카 박물관이 나오고
다시 뒤돌아 주상절리가 유명한 열리해안길을 따라 걸고
다시 컨벤션센타를 오른쪽으로 끼고 중문해수욕장 쪽으로 향했다.
성천포구에서 중문해녀의 집을 만나 회도 한접시 맛보고
다시 해거름이 내릴 때까지 1100번 도로를 따라 북상하기 시작했다.
베릿내 오름을 따라난 계곡을 내려다보며  길을 걷다가 천제연폭포를 지나고
여미지 식물원도 지났다. 다 보고 싶은 곳이지만 이미 영업시간이 끝나 그냥 스쳐지나갔다.


내일이면 제주를 떠나 다시 일상의 늪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강박때문일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길을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도
또 어디로 향하는 길위인지도 확인하지 않은채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어둠이 두터워지고 허기가 진 뒤에야 
택시를 타고 숙소인 카멜리아 힐로 돌아왔다.
너무 많은 것은 보고 겪은 하루는 잘 정리되지 않았지만
밤은 깊고 잠은 편안했다.

그렇게 3박4일간의 제주 여행은 끝이나고 
대구행 비행기에 올라 다시 돌아올 일상을 생각했다.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하고, 
결제일은 언제고 그리고 누굴 만나야하고...
집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일상'의 충성심에 치가 떨리지만
그렇게 또 고스란히  나의 삶은 보전되고 이어지게되니 뭐 세상살이가 그렇커니 해야되겠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일상을 시작하며 또 다시 나그네의 모습으로 올레길을 걷는 나 자신을 만나보고 말거라는 대책없는 계획을 세웠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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