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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830분에 영목항회관을 출발, 가경주마을에서 해변과 만나 고남제방길을 거쳐 장곡리까지 이동, 장곡리에서 트럭을 얻어타고 안면읍으로 나가 점심식사를 하고 장을 보고 걸어서 꽃지해변에 도착, 델마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8시30분 숙소를 나와 멀리 원산도를 지나 보령까지 이어지는 신설 연육교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방향표지판을 뒤로하고 ‘태안해변길 7코스 바람길’을 걷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해안을 따라 걸어서야 하는데 해변길이 계속 이어지는지 확인이 되지 않아 지도에 나와있는 길을 선택하다보니 찻길로 접어들었다. 어제 버스로 들어왔던 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30여분을 걷다가 이내 도로를 벗어나 해안 쪽을 향해 서진했다. 인적이 드문 만수동이라는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끝없는 갯벌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디까지가 갯벌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모를 풍경을 바라보며 해안선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다시 길은 우리를 해안을 벗어난 작은 야산으로 이끌었다. 묵은 밭과 갈대 사이를 비집고 야산을 넘으니 가경주라는 마을이 나왔다. 안내판을 보니 마을 풍경이 아름다워 佳景地라는 지명이 붙었고 이것이 나중에 佳景州라는 마을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아침을 굶고 출발한 탓에 배가 고파왔고 마을에 들어서다 혹시라도 식당이 있나 두리번 거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을주민에게 물어보니 근처에는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가경주마을의 해안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다시 길은 언덕으로 이어졌고 언덕길을 따라 현대식 펜션 사이를 걸어 가경주를 벗어났다.

 

 

늘어선 팬션이 끝나는 지점에서 옷점마을(고남4리)이 우리를 반겼다. 조개부리 체험마을로도 알려져 있어 혹시라도 식사를 해결할 식당이나 마트가 있지 을까 기대했지만 마을은 소박했고, 조용했다. 정감넘치는 좁고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접어들어 얼마걷지 않아서 나지막한 집에 조그만 점방이 나왔다. 과자와 음료수 몇가지 정도가 진열되어있는 구멍가게에는 다행히 라면도 보였다. 머리가 천정에 닿을 듯한 가게에 문을 여니 할머니 한분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아내는 컵라면과 식수, 과자를 사고 나는 가게앞 조그마한 평상에서 물끓일 준비를 했는데 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날도 찬데 한데서 고생하지 말고 라면 끓여줄테니 집에 들어오라고 종용하셨고 우리는 못이기는척 방에 들어섰다. 막상 방에 들어가 할머니를뵈니 할머니께선 한쪽 다리를 잃고 불편하신 몸으로 우리를 위해 라면을 끓이고 계신게 아닌가! 뭉클한 마음에 그냥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오신 듯 반갑고 애틋하고 늘 찾아뵙던 분을 다시 만난 듯 긴장이 풀렸다. 차려주신 상을 받아 라면과 맛있는 김치를 먹으며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살며보는 집은 구석구석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었고, 할머니의 삶을 이루는 자식이며 손주들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가게를 나섰지만 할머니의 삶과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환대가 오래도록 나의 기억 속에 남아 나의 삶을 따듯하게 데워줄 것 같았다.

 

 

옷점 마을을 지나 다시 해안을 따라 북상하니 해안을 따라 직선으로 뻗은 제방이 나왔고, ‘고남제방길’이라고 했다. 제방길에 올라서니 새삼 시원한 바닷바람이 싱그러웠다. 맑은 햇살과 확 트인 시야, 그리고 시원한 바람까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고남제방길을 지나 또다른 제방길이 이어지고 모래밭이 넓게 펼쳐진 ‘바람아래’라는 해안에 도착했다. 배낭을 벗고 모래를 만지며 쉬다가 산길로 올라서 다시 7코스 바람길의 시작점인 황포로 발길을 옮겼다. 산길을 걷다보니 오늘 걸음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장곡이라는 곳에서 벤치를 만났다. 잠시 쉬면서 다음 코스에 대해 아내랑 의견을 나누다보니 무엇보다 식사가 문제가 되었다. 아침과 점심을 겸해 라면 한 개를 먹은 것이 전부인데다가 얼마를 더 가야 식당이 나올까 불확실했다. 우리는 과감하게 코스를 벗어나 마을을 찾아 보기로 했다. 장곡에서 해변길을 벗어나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역시나 식당을 찾기가 불가능했다 결국 버스로 면소재지로 나갈 마음을 먹고 장곡리 마을회관마당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회관에 트럭이 한 대 들어서는 걸 보고 다가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버스 시간을 물으니 원하는 데까지 태워줄테니 무조건 타라고 하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고마운 분을 만나 농사이야기, 염전이며 새우 양식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안면읍까지 나와버렸다.

 

 

안면수산시장에서 늦은 점심은 먹고 4km를 더 걸어 꽃지해변에 도착했다. 공원 주차장 한켠에 있는 델마호텔에서 커피를 마시고 방을 얻고 꽃지해변으로 나섰다. 통일 신라 시대 장보고 장군을 따라 출정나간 남편 ‘승언’을 기다리던 아내 ‘미도’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그리워하다 바위가 되었다는 할미바위와 그 할미의 한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할아비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는 구름낀 서쪽 바다로 넘어가고 바다는 물이 빠져 우리는 저녁 어스름 속에 슬픈 사연을 품고 서있는 할미바위와 할애비바위까지 걸어 주변을 서성이며 꽃지해변의 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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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아침 9시경 한옥마을에서 택시로 전주고속터미날 도착, 대전행 버스를 타고 11시경 대전터미날에 도착, 태안행 버스를 기다리며 점심을 먹고 쇼핑을 즐기다가 12시반경 태안으로 출발했다. 태안에서 안면행 버스를 갈아타고 15시경 안면에 도착, 15 20분 영목행 533번버스를 타고 16시경 이번 트레킹의 출발점인 영목항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소박한 한옥민박집에서 편안한 잠을 잤다. 제공하는 조식을 사양하고 전날 들고 다니던 간식으로 아침을 떼우고 거리로 나섰다. 우리의 목적지 태안을 향해 간다는 설레임이 앞섰지만 그렇게 바쁠 것도 없는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전주 터미널에서 쉽게 대전행 버스를 잡았다. 버스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몰두 하다보니 이내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 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전날 묵었던 전주와 대비되어 촌에서 다시 도시로 나온 듯 휘황찬란했다. 붐비는 대합실과 다양한 가게들이 성업중이다보니 사람들이 마스크만 쓰지 않았다면 코로나가 오기 전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내는 트레킹에 맞는 바지를 사고, 나는 대합실을 서성이며 다음 버스로 이어지는 여백을 만끽하며 기억창고를 살찌웠다.

 

 

대중교통으로 이어지는 하루일정이 영목항에서 끝나기까지 한번의 택시와 4번의 버스를 타야했다. 전주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태안으로, 태안에서 안면으로, 다시 안면에서 영목으로 이어지는 버스 여행은 착착 맞아떨어지는 연결 버스 덕분에 기대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차를 타는 지겨운 하루 일정중에도 대전이라는 대도시 대합실의 번화함도 즐기고, 태안의 정감넘치는 소박한 터미널의 정취도 즐기고, 안면읍의 장터에서 버스를 내려 영목으로 이어지는 버스를 기다리며 느꼈던 시골 장터의 가난하지만 따뜻한 서정조차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배낭을 메고 여행중이어서일 것이다. 마지막 늦은 오후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무겁게 내려앉은 흐린 하늘아래 찬바람만 가득한 영목항 종점에 발을 내디딜 때 왠지 모르게 울컷 솟아나던 서글픔이 있었다.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이제는 다시 못볼 인연들에 대한 애도의 정감인지, 아니면 바닷바람이 상기시킨 고향진해와 그 바닷가에서 놀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어린시절의 추억 때문인지도 몰랐다.

 

 

예정된 라디오 인터뷰가 있어 미리 ‘영목항회관’에 방을 잡고 아내는 바닷가 스케치를 나갔다. 난생처음 여행지에서 준비가 덜된 라디오 인터뷰를 어설프게 마치고 막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영목항으로 나섰다. 가설다리로 연결된 바지선을 따라 작은 고깃배들이 수십척 정박해 있는 저녁바닷가는 평화로웠다. 바람이 잦아든 해안에는 찬 공기가 내리누르고 인기척 없는 선착장엔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짧은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회덮밥’으로 긴 이동이 이루어진 하루의 노고를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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