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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을 떠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우수리강이 아무르강을 만나는 도시 하바롭스크를 향해 밤새 달렸다.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주는 낭만적인 서정에 젖어 4인실침대칸에 자리잡은 우리 일행은 들뜬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열차바퀴가 내는 규칙적인 마찰음을 능가하는 한껏 높은 톤으로 대화를 나누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와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창밖은 암흑천지라 사방을 분간할 수도 없었고, 좁은 공간은 우리를 쉬지치게해 자정이 되기전에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누구도 쉬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거친 열차의 진동과 밤새 쉬지 않고 울리는 경적소리, 그리고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굉음을 지르며 마주 스쳐지나가는 반대차선의 열차는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하룻밤 사이 환상은 깨어지고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당하겠다던 나의 버킷리스트가 한개 줄어들었다.

쉬지않고 몸을 뒤척이는 사이 몸의 피로는 더 깊어지고 거의 몸과 의식이 동시에 축 쳐져 나갈 즈음 창밖은 밝아지기 시작했고, 아직 벌판의 어둠이 채가시지도 않았는데 승무원의 거친 손은 4인분의 아침 도시락을 객실에 던져주고 갔다. 그래도 늘 밥은 반가운 법, 모두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잼과 팬케익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우리를 맞았다.

버스로 조금을 달려 레스토랑에서 러시아식 조식을 먹고 곧장 우리는 러시아식 전통사우나인 "반야"를 하기위해 자작나무 숲속의 작은 리조트를 찾았다. 6~8명이 들어가는 반야는 탈의실과 화장실 그리고 작은 침실과 사우나실로 이루어져있었고, 바깥에서 장작과 석탄으로 불을 지피며 사우나실 내부의 자갈이 달구어지는데 그 달구어진 자갈에 물을 뿌려 뜨거운 수증기를 피워서 몸을 댑히는 방식으로 색다른 체험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자작나무 잎으로 뭉쳐만든 빗자루 같은 걸로 몸을 때려주면 몸을 더 잘 댑힐 수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충실히 따랐다.

 

오전시간을 반야에서 보내고 우리는 동방정교회 구세주 성당을 들러 천정을 올려다보며 세바퀴를 돌면서 소원을 빌었다. 난,ㄴ 전쟁의 공포가 더이상 한반도를 지배하지 말기를, 그리고 남북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합의에 이르고 미국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국면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성당을 나와  향토박물관을 관람하고 우초스전망대를 찾아 아무르강의 광활하고 삭막한 풍경을 눈에 담고, 다시 꼼소몰스까야 광장을 거쳐 얼어붙은 아무르강을 만났다. 바다같은 강은 광야로 변해있었고, 매서운 강바람은 나의 귀를 때렸다. 이 강가 어디선가 김알렉사드라가 총살을 당하고 그 시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역사적 소명과 한 인간의 결기를 생각했다. 하바롭스크주민들은 김알렉산드라의 시신이 버려진 아무르강에서  2년간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상기하며 한민족 볼세비키 지도자였던 그녀의 명복을 빌며 그녀가 삶을 걸었던 민족해방과 게급해방을 꿈을 상기했다.

 

아무르강을 벗어나 우리는 현지주민과 만나는 중앙재래시장을 찾았다. 한시간20여분의 자유시간을 얻고 시장골목과 연접한 백화점을 둘러 보며 짧은 여정의 아쉬움을 달랬다. 낯선 건과일들 향신료 그리고 골동품에 이르기 까지 추운날씨 탓에 인적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시장은 없는 것이 없었다. 꿀과 연어, 그리고 한국식 반찬과 각가지 쏘시지와 치즈 등 사고 싶은것은 많았지만 원앙새목각 딱하나를 400루블을 주고 샀다. 이번 여행의 징표로 오래동안 둘수있다는 사실과 색감이 마음에 들었기때문이다. 

중앙재래시장을 벗어나 얼음조각공원으로 꾸려진 레닌광장을 찼았다. 갖가지 얼음 조작이 광장을 채우고 있었고, 아이들을 동반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행을 벗어나 현지인들 무리에 몸을 숨기고 그들과 걸음을 맞춰 저녁색이 짙어지는 공원을 마냥 걸었다. 아쉬움을 가슴 가득안고 숙소인 인뚜리스트 호텔로 향하며 해지는 러시아의거리, 하바롭스크의 거리를 가슴과 폰에 담았다. 언제 다시 올수있을까... 나는 또하나의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하바롭스크의 밤을 맞았다.

이번 여행은 봉화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들의 워크삽 명분으로 3박4일 일정으로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인솔자 포함 26명의 일행이 함께했다. 이질적인 사람들로 양분된 위원간 이질감을 줄이고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부수적으로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랏돈으로 하는 단순 유흥관광적인 성격에서 완전히 자유스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위원들중에는 개인적으로 연해주 한민족사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조선공산당의 초기활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이해를 통해 역사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듣게된 러시아의 삶은 나에게 많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미 자본주의화되고 푸틴 독재에 가까운 정치체제가 되었지만 그래도 사회주의적 자취가 남아 가정용 전기가 거의 공짜에 까깝고 의료와 교육 역시 사회적 보장정도가 상당하고 성공과 돈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리고 여성상위적인 사회정책으로 인해 결혼후 이혼이 여성에게는 횡제고 남성에게는 재앙이라는 사실, 그와 무관하게 러시아인들은  한주에 몇일은 꼭 저녁식사를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적인 사람들이지만 이혼율은 70%에 달한다는 것도 참 의아했다. 사람들은 가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생활을 누리는데 이혼율은 높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이해할 수없었다. 가정에 정성을 다하지만 집착하진 않는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이 '동방으로 진군하라!'는 군사적 구호이고 여전히 중요한 극동 군항이고 러시아가 혁명의 나라라서 그런걸까? 혁명전사 혹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보편화되어있고 도심의 요지에 있는 추모탑과 연중이어지는 시민들의 방문과 헌화, 그리고 자식 세대에게 전해주는 자긍심이 느껴졌다. 대중 매체나 거리에서 밀리트리룩을 쉽게 접할 수 있고 군대에 대한 높은 자긍심이 보여주는 것은 힘에 대한 숭상이나 국가주의적 잔재일까 아니면 민중혁명을 통해 만든 나라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일까? 루스키다리아래 해군기지에는 갖가지 전투함과 잠수함까지 언바다에 갇혀 침묵하고 있었다.

또 한가지 인상은 러시아인들이 참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쭉쭉 뻗은 손발이며 몸매, 뚜렷한 이목구비 등 그냥 만나는 사람마다 다 배우같은 선남선녀들 뿐이었다. 너무 이뻐서 현실감이 없고 그냥 깍아놓은 인형같았던 소년 소녀들도 인상에 남는다. 조금은 시크한 분위기가 러시아 훈남훈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것 같기도하다.

그리고 남는 아쉬움 3가지를 기록하고 싶다. 먼저 김알렉사드라 추모비를 찾지 못한 점은 못내아쉬웠다. 물론 연해주 독립운동의 자취가 선재한 우수리스크 방문도 다음 과제로 남겨야했다. 둘째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었다가 다시 돌아와 만든 한인촌인 '우정마을'이 한국인의 무례에 분노해 한국인의 입장을 막아버렸다는 사실은 나의 가슴을 참 아프게했다. 이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을 위한 노력이 없어보여 참 가슴아팠다. 그리고 2차대전 종전후 남북 공히 버렸던 사할린 동포에 대한 이야기는 도대체 국가와 민족이란 무엇인지 다시한번 되묻게 했다.  버려졌던 동포에 대한 국가적 사죄와 그들의 상처를 치유과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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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7일 양양을 출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  1박하고 다음날 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11시간 30분 달린 뒤 하바롭스크에 도착, 1일 관광후 다시 1박, 2월 10일 아침 하바롭스크 공항을 출발 양양에서 여정을 마무리함

승객 26명을 태운 비행기는 텅빈 양양 공항을 이륙했다.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톡. Yakutia Aero 라는 러시아 국적 항공사 비행기를 탄 덕분에 우리는 북한상공을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국적기에 비해 30분에서 1시간 빨리 도착한다고 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북한 상공을 지나지 않았고 북한 산하를 볼수 있다는 기대는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그래도 나의 설렘은 다른데서 왔다.  우리일행이 탄 보잉 737-800기는 오직 우리일행 26명만을 만을 위한 전세기라고 했다. 항공사가 도대체 어떻게 타산을 맞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남과북의 대치 덕분에  남쪽방향으로 이륙한 비행기는 곧바로 북쪽을 향해 유턴을 해서 울릉도 근해를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방향을 잡았다.

처음 타보는 러시아비행기는 여는 비행기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 국적기 같이 젊고 아리따운 승무원이 아니라 나이에 무관하게 승무원을 채용한 유럽 비행기라는 느낌이 든 것은 그렇다고 해도  승무원의 무표정은 분명히 한국과 다른 것 같았다. 이륙후 10분이 지나지 않아 안전고도에 도달했는지 무표정한 승무원은  음료수 서비스를 하고 기내식을 나눠줬다. 애써 웃어주니 웃음으로 답해주긴했지만 여행안내서에서 소개한 러시아인의 무표정 뒤에 숨겨진 따뜻함과 친절함을 확인하기에는 비행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륙 한시간 20분만에 우리 비행기는 바다를 건너 시베리아가 시작하는 육지로 접어들었다.

1시간 시차의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서 가이드를 조우하고 곧바로 대절해 놓은 버스에 올랐다. 3박4일중 첫날의 일정은 오직 블라디스톡에 도착하는 것이 전부였다.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해 저녁식사를 하고 현대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이 소증한 3박4일중 1박1일이라는 사실이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친절한 가이드를 통해 몇가지 주의점과 러시아 문화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으로 그나마 허기를 달랠수는 있었다.

블라디보스톡 유일한 5성급호텔이고, 현대 사옥과 같은 외관을 지닌 현대 호텔에서 짐을 풀고 곧바로 잠을 청하기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밤이 아쉬웠다. 4명의 동지가 작당을 하고 호텔을 나와 블라디보스톡의 밤길을 나섰다. 하지만 호텔에서 멀리 벗어나기에는 우리의 여행경험은 적고, 두려움은 많았다. 호텔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Saint Pub이라는 맥주 바 같은 곳을 들어가니 우리가 환영받는 손님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배척하는 기색은 없었다. 안되는 언어로 어렵게 술과 음식을 시켜 늘 같이 고생만하고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동지 들과 러시아에서의 화려한 첫밤을 같이햤다. 다가오는 선거와 지역정치 그리고 남북 대치와 통일 그리고 항구적인 반도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 돌아온 호텔에서는 일부 일행이 소주에 절어 훌라 삼매경이다.

화려한 조식을 마치고 둘째날의 일정은 신한촌 방문으로 시작했다. 1900년대 초반의 이주의 역사와  파란속에서 자존과 삶을 지켜온 같은 민족의 흔적을 마주치는 일은 나에게 낯설고 힘든 일이었다. 여행전에 [조선공산당사]를 통해 알게된 1910년대 연해주를 일대의 볼세비키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낱낱이 살피기에는 여행 성격이나 동행한 일행들의 성향에 비추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최재형과 김 알렉산드라는 만나고 싶었다. 저녁무릅 아르바트 거리에서 최재형은 몰라도 한국 청년들은 다 아는것 같은 소위 "해적커피"를 한잔하고 나서 인근에 있는 최재형선생의 생가를 찾는 것으로 나의 기대는 접어야 했다. 김알렉산드라는 만나는 것은 예정된 일정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신한촌은 개발되고 오직 비석만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초라하고 무미건조했을 비석공원은 한분의 의인으로 인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리바체슬라브선생! 그분을 만난것은 헛된 감상과 무익한 너스레로 끝날 이번 여정을 뜨거운 역사의식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값진 기회로 만들어주었다. 신한촌기념비를 한국에서 만들어 불라디보스톡으로 싣어오는 과정에서 세관의 횡포로 어려움에 처하자 저신의 재산을 털어 관세를 내어 통관을 시키고 기념비 설립후에도 주변건물에 막혀 초라하게 묻힌 기념비나마 지키기위해 비 옆에 움막을짖고 사시사철 살아오셨단다. 10여년전 그분의 공적이 국내에 알려져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에도 위촉되었지만 그 이후 어떤 지원이나 예후가 이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3년전 중풍이 온 후에도 인근으로 가족을 이사시켜 출퇴근하며 기념비를 지키고 계신다고했다. 비를 지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감히 물을수 없었지만 나는 그냥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졌다. 삶은 어쩌면 작고 단순한 것에서 그 숭고함이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한촌 기념비공원에서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우리 일행은 브라디보스톡 시내를 여러번 가로지르며 유명 관광지와 유적지를 주유했다.  인구 60만 정도의 규모 때문인지 도로로 인한 동선 때문인지 우리가 묵은 호텔앞을 이날 하루동안 서너번은 다시 지나간 것 같았다. 해짧은 하루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볼수 있어 기억의 타래가 바로 얽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금각교가 내려다 보이는 독수리전망대라 불리는 언덕위에 세워진  러시아 문자를 창제했다는 끼릴형제의 동상, 알레우트스카야 거리의 기차역과 철도 박물관, 레닌동산과 율부리너 동상을 구경하고, 전쟁공원의 꺼지지않는 불과  니콜라이 개선문을 둘러봤다.  그리고 잠수함 박물관과  루스키 다리를 건너 학생 4만명에 교수만 5천명이나 된다는 극동연방대학교를 지나 '북한섬'이라 불리는 해안가에 찬바람을 맞고 우리는 아르바트 거리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고 랍스타로 배를 불린뒤 블라디보스톡기차역으로 향했다.

 나의 버킷리스트중의 하나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꿈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여건이 안되지만 그 맛봬기를 할 기회가 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약 1000km를 달리면 나오는 하바롭스크를 향해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벅찬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풀기위해 신발끈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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