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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3월 27일 오후 제주공항에 근 15년만에 발을 내딛었다.
낡은 기억속엔 아무 것도 참조할 만한게 없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꽉찬 주차장에는 온통 렌터카 천지였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공항앞 도로로 나가는 길은 찾기 어려웠다.
아내의 작은 전시회가 있었고, 덤으로 올레길이라 불리는
제주도의 봄길을 걷기위한 여정이기에
대중교통과 도보만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은대로 버스를 찾아나섰다.
행인에게 몇번이나 노선을 물었는데 친절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었고,
몇번을 반복해서 묻고 매번 물을 때마다 다른 답을 얻으며
제주시내를 헤맨뒤에샤 버스안에서 친절한 한명의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났다.
그분의 안내를 받아 겨우 목적지를 향한 버스에 오를 수 있었지만
기사분이 또 우리를 목적지보다 두어구간 지나서 내려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일차목적지 카멜리아힐은 농사를 지으며 농장을 꾸리고
그 농장을 도시민이 찾는 농원으로 만들어나가길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려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갖춘 리조트였다.
그날 오후 내내 아름다운 동백숲으로 이루어진 정원을 거닐며
아름다운 펜션과, 카페 그리고 갤러리를 구경하고
제주에서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첫날을 보냈다.
저녁 늦게 도착한 다른 작가분들과 그 가족들이 들여닥치자
작은 술자리도 마련되었지만 피곤한 몸을 일찍 잠자리에 누였다.
3월 28일 아침일찍 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제주의 햇살에 눈을 뜨고
창릉 열고 제주의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간단한 아침식사후 저녁 5시 예정인 전시오픈 전에
제주 올레길을 찾아 카멜리아힐을 나섰다.
길을 나서 한적한 시골길을 남쪽으로 한참을 걸어
1136번 도로를 만나고 1136번도로를 따라
자동차박물관을 지나 국도를 벗어나 왼쪽으로 작은 도로를 따라 다시 화순항으로 남하했다.
올레길 9코스의 종점이자 10코스의 출발점인 화순항을 향해 가는 길은
봄볕과 봄바람이 길을 걷는 사람을 서정을 부추키고
힘든줄 모르고 내딛는 발걸음마다 살아있음의 기쁨이 느껴졌다.
길을 걸으며 이렇게 벅차오르는 생명의 활홀경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이 시대에 걷기가 붐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아직도 개발광풍과 경제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그런 못된 지배가치와 지배계급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반란은 이렇게 작고 가벼운 발걸음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갈대와 모래사장이 맞아주는 화순항을 향해가는 길은
제주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국적인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식생이 달라서겠지만 유독 제주는 육지와는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제주의 봄을 상징하는 유채꽃, 가로수로 늘어선 야자수들,
이른 봄이지만 겨울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풍경,
구멍뚤린 돌로 쌓은 돌담, 밀감밭 그리고 길가의 풀들 조차
제주는 완벽하게 육지와 달랐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일시에 나를 향해 외쳤다.
'당신은 일상을 벗어나 자신의 삶의 터전과는 다른 어떤 곳에 들어섰다.
그 전의 삶은 잊고 맘껏 즐기시라. 이곳은 당신의 일상밖이니...'
그렇게 제주는 관광을 업으로 먹고사는 지역이 되었나 보다.
화순항을 벗어나 역으로 올레길 9코스를 시작하자마자
화순삼거리 조금 못미쳐 송도식당인가 하는데서 점심을 먹었다.
올레길관련 정보를 구하다 알게된 조그만 식당인데
주인의 친절과 가격 대비 맛도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갈 즈음 점심시간도 되어 들어가
소문대로 친절한 아주머니께 비빔보리밥을 시켜 먹었다.
역시 소문대로 만족스런 식사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자마자
[성박물관]이란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언제 또 이곳을 지날까 싶어 박물관에 들러 잠시 구경도 했다.
입장료가 아깝기는 했지만 의외로 관람객도 많았다.
박물관을 벗어나 1132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가보니
금세 안덕계곡이 나왔다. 계곡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잠시잠깐 안덕계곡을 걷고 이내 다시 창천삼거리까지 걸었다.
참천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1136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 숙소인 카멜리아힐이지만
국도를 따라 걷기만 하는 여정을 피하기위해
창천삼거리에서 다시 유턴해서 내려오다가 북쪽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도를 벗어나는 순간 진짜 올레길을 걷게된 셈인데,
대충 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숙소와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를 하긴 했지만
의외로 엉뚱한 곳으로 길이 빠져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걸음이 필요했고
그만치 제주의 삶과 자연을 좀더 깊숙히 느켜볼 수 있는 귀한 기회도 가졌다.
하루 20여 km를 걷고 다시 돌아온 카멜리아 힐의 저녁은
또 얼마나 풍요롭고 아늑했는지,
이날 하루의 여정은 오랜동안 기억에 남아
나의 가난한 마음에 작은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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