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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농촌체험마을을 시작하면서 아내와 같이 한번씩 하게된
체험프로그램중 자연미술체험을 그래도 가장 오래동안 유지해왔다.
자연미술체험은 나무나 풀 등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잇는 재료에다가
물감이나 여타 소재들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거나
스스로 원하는 바를 표현하도록 하는
그야말로 난장판 미술체험에 가까운 프로그램이다.

지난주에는 봉화송이축제장에서 4일간 체험을 진행하고
어제는 이웃 고계리에 자리잡은 폐교를 이용한 [청량산장]에서
봉화군 농산물 고객을 대상으로하는 홍보 행사에 초대된
생협회원 어린이를 위한 부속프로그램으로
자연미술체험을 진행했다.

이날은 부실한 준비로 허겁지겁  체험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한 아이의 말 한마디 때문에 불현듯
자연미술체험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보게 되었다.
같은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해오면서
그냥 타성에 젖어 시간을 떼우고
자연미술체험의 의미나 교육적 효과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걸 만들어볼까?"
한 남자 아이이 대답이 가관이다.
"독사가 다리잘린 토끼 즙빨아먹는 모양 만들래요."

그 아이의 대답이 충격적이었지만
게임이나 폭력적 만화 등의 영향일 수도 있고
(아니 그 보다는 폭력적인 세상의 영향일 가능성이 더 많다!)
아니면 선생님을 골려주려는
의도된 폭력성의 표출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그 아이의 대답은 그동안 미술체험과정에서 느꼈던 요즘 아이들에 대해
몇가지 문제도 되짚어 보고, 프로그램의 의미를 되묻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고민하게 되었다 .

먼저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어린 동생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이는 내 자식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외동으로 자라 가정내에서
협력의 기회를 많이 가져보지 못했을 것이고,
학교 교욱과정에서도 부족한 협동성을 키워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것 같다.

이 점은 부모님들에게 해당되기도 한다.
간혹 아이들과 같이 체험에 참가하는 부모님들이 있지만
자기 아이만 돕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경우는 많이 볼 수 있는데
다른 아이들을 돕는 경우는 많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공격성이다.
이는 나무재료 등으로 만들고 싶은 거 아무거나 만들어보라고 하면
남자아이들은 총을 가장 많이 만드는 것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체험과정에서 친구들과 도구 사용 순서 등에서 부딪힐 때 그대로 노출되는 된다.
심한 경우는 친구의 고통에 둔감해서 
친구가 글루건에 화상을 입어 울고 있어도
웃으면서 놀리는 경우까지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유사한 체험을 많이 해 온
학습과잉아이들이 보이는 '이거 많이 해봤는데'식의 반응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사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창출해내거나 부족한 점을 개선해 내지 못한 
체험선생이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할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찾고
놀이를 통해 학습하는 과정을 용납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아이들의 삶을 장악해 들어가는 요즘의 교육관이나
교육제도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뭏튼 끝나지 않은 고민이지만
최소한 자연미술체험이
자연재료를 통해 스스로 표현하고싶은 바를 실현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넓히고,
생명에 대한 사랑을 체득하는 과정을 통해 정서적으로 순화될 수 있고,
친구들과 더불어 과제를 수행하면서 협동심을 기르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이고 학습과잉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지금과는 좀 다른 새로운
'공동체 미술프로그램'으로 거듭 나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구체적 모습이 어떨지 모르지만
올 겨울내내 새로운 프로그램을 모색하는 과정을 겪고
내년에는 좀 색다른 미술체험을 진행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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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나리미술관에서 어린이 미술교실이 있었습니다.

따사로운 봄햇살과 훈훈한 봄바람 속에
온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그림은 조금 그렸지만
겨우내 꽁꽁 얼었던 마음을 열고,
온동네가 시끌시끌 할 만치 신나게 뛰어 놀았습니다.
 

올해 부터는 비나리미술관에서 주관하는 밭두렁미술학교를
봉화문화원과 봉화자활센타가 후원하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봉화문화원에서는 월20만원의 강사비를 지원해주고,
봉화자활센타에서는 명호면소재지에서 비나리미술관까지
봉고차를 운영해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평균 15에서 20명 정도의 어린이가 참여를 했는데
이날은 멀리 영주나 춘양에서 오던 아이들이
연락이 늦어 참가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명호면 아이들만 근 30명이 비나리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같이 오신 부모님까지 비나리미술관을 중심으로해서
온 비나리동네가 사람사는 훈기로 가득 넘쳤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교육이 영어 등 기능교육이 중시되면서
아이들의 감수성을 개발하고 북돋우는
예체능 교육이 찬밥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산골마을 비나리에서
아이들이 미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친구와 어울리며,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나
수업을 주관하는 강사의 입장에서나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날 수업을 위해 일찍부터 내려오셨어 미술관 청소며 수업준비를 도와주신
김종미선생님, 그리고 자활센타에서 봉고를 몰고 오신 선생님,
수업 진행에서부터 정리까지 도와주신 관용이 어머니와 용수어머니,
그리고 이날 같이 해주신 모든 학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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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지난 한해 봉화문화원 미술교실을 맡아 강의를 해왔는데
 [봉화문화]의 청탁을 받고 그 아름다운 시간을 정리한 글입니다.


아름다운 시간들

-류준화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미술 반 첫 수업이 벌써 일 년 전이 되었다.

작년 초, 그해는 개인전이 잡혀 있는 터라 다른 스케줄은 뒤로 하고 그림에만 올인 해볼 거라고 나름 일 년의 계획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미술 강좌 하나 맡아 달라고 하시면서 ‘바쁘면 더 열심히 살면 되지요. 바쁠수록 더 많은 일을 한답니다.’ 그러시는 문화원 사무국장님의 전화 한 통화에 일 년 계획을 다시 세웠던 기억이 난다.

막상 수업을 하기로 하고 나니 바빠진 일정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수업해할 지가 오히려 더 고민되었다. 무작위 다수를 향한 오픈된 미술수업은 처음이여서 어떤 분들이 강좌신청을 할지도 파악 되지 않았고 대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 년 과정의 미술 강좌를 꾸린다는 게 덜컥 겁이 나기도 했었다.

또 한편으로는 미술의 경험유무와 상관없이 넘쳐나는 시각문화의 홍수 속에서 미술을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미술이 어떻게 다가가야 되는지, 개개인의 미적 감성을 어떻게 발현시킬 수 있는지를 몸의 총체적 감각 안에서 새로운 소통과 체험들로 변화된 시각문화에 접근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도 싶었다. 물론 이런 수업은 보다 체계적이고 훈련된 수업준비가 많이 요구되는 것이라 생각으로만 그쳤지만 미술교육을 고민하는 입장에선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이긴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술이 누구에게라도 주눅 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오래된 습관처럼 우리의 미술수업은 늘 기능중심의 수업이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사물과 똑 같게 표현되어지는 것이 기준이었고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을 구분 짓기만 하는 전혀 창의적이지도 미적이지도 않는 수업이었다. 아마 그래서 그림에 재주가 없는 아이로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학교를 떠남과 동시에 미술과는 벽을 쌓게 되었고 자신의 미감을 절대 발설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것이 지금까지 보아 온 내 주변의 대다수 어른들이 미술을 대하는 태도였다. 몸의 세포 수만큼이나 다양한 감각의 층을 우리의 미술교육은 묘사력 하나로 정리해 버렸다.  

미술은 자유로움이고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떤 창작품이든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미술로 놀고 미술로 표현하고 삶과 함께 일상 속에서 미술은 즐겨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적어도 나의 수업의 목표는 미술로 인해 주눅 들게 했던 벽을 허무는 것이길 원했고, 두려움을 없애고 나를 즐길 줄 아는 시간이 되길 원했다.

나의 예상대로 수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이후 거의 미술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셨다. 우리도 잘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첫 수업시간에 내게 물었다.

그렇게 첫 수업에서 보였던 두려움은 몇 번의 수업 후 금방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그녀들을 억압했던 두려움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시켰다. 난 벽을 허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던 열망들이 곧 열정이 되었고 오히려 내가 학생들의 열정을 따라가기 바빴다.

너무나 즐겁고 신나게 수업을 하느라 학생들 개개인에게 미술이 무엇인지 미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녀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감성들을 끄집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해내는 것에 자유로웠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손끝에서 나오는 희열들을 맘껏 즐기고 있었고 의도대로 그려지든 그렇지 않든 자기 몸의 모든 감각들이 한곳에 집중되는 쾌를 느끼고 있었다. 잠재되어 있던 오감들이 팽창되어 한껏 부풀어 오른 열정으로 충만했고 나는 살짝 건드리기만 했을 뿐인데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았다.

초등학생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까지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인 미술수업은 나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오히려 내가 미술을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배우는 중이였다. 미술반 강의실 앞을 지나가던 누군가는 미술반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고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핀잔 아닌 질투를 보이기도 했었는데 그 유쾌함이 좋았다. 같은 그림을 반복 또 반복하며 최상의 것을 만들려는 노력과 자신의 감성을 계속 유지하려는 의지와 함께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과도 같은 긴 일 년의 수업과정을 끝내고 그간의 결과물들을 모아 소박하지만 커다란 울림이 있는 전시회를 가졌다.

우리도 잘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첫 수업시간에 했던 질문을 아무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잘 그렸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지도 모른다. 이미 모두들 아름다운 시간들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고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이 그림들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은 씨앗을 뿌린 기분이었다. 불과 일 년 만에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을 쏟아 놓으니 다음의 전시가 기대된다. 작은 씨앗 속에 큰 나무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행복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누구도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는 나의 교육목표는 이룬 듯하다.

201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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