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꽃지해변 델마호텔을 나와 드르니항을 향해 출발 방포항과 기지포 해수욕장을 지나 드르니항과 다리 하나를 두고 마주한 백사장항에서 멈춰 럭스팬션텔에서 여장을 풀엇다. |
어제 우리의 발길은 “샛별길” 코스 의 종점이자 서해안의 아름다운 노을을 대표한다는 꽃지에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도착한 꽃지해변은 잔뜩 기대했던 노을을 우리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날씨는 흐렸고, 구름을 비낀 하늘조차 노을을 품지 못했다. 일출이든 석양이든 행운이 따라야만 볼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석양없는 저녁어스름이 내리는 해변을 싣컷 걷고 편안한 잠을 잤다. 늦은 아침 눈을 뜨니 창밖을 자욱한 안개로 오늘 하루 불안한 여정을 예감케 했다. 배낭을 뒤척여 남은 먹을거리로 아침을 해결하고 델마호텔을 나와 오늘의 목적지 드르니항으로 향했다. 꽃지 해변 주차장을 벗어나자 마자 도보용 현수교를 지나 방포항으로 건너갔다. 방포는 수산관련 창고가 늘어선 소박한 어촌마을이었는데 의외의 곳에 마을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크지 않은 규모의 [바다목장체험장]이 들어서 있었다. 작은 규모지만 그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기대하고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다른 농어촌에 즐비한 관에서 지원하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시설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실망감을 안고 나와 방포해변으로 넘어가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높지않은 언덕의 정점에 있는 전망대에서 지나온 꽃지해변을 뒤돌아봤다. 슬픈 사랑을 전하던 할미할애비바위 넘어 끝없이 펼쳐진 꽃지해수욕장에 아쉬운 작별을 하고 방포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인적없는 겨울 방포해수욕장은 아름답고 호젓했고 조금은 쓸쓸하기조차 했다. 꽃지 못지않은 너른 모래사장의 끝은 어디인지 가물가물했지만 우리는 걷고 또 걸으며 겨울 바다의 정취에 취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끝날 것 같지 안않 모래사장은 끝이 나고 우리는 ‘석양길’은 우리를 야트막한 산길로 이끌었다.
내륙지역보다 훨씬 따뜻하다는 서해안 답게 벌써 수확이 끝났어야할 배추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는 산자락에서 농부 한분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고 나 자신도 배추농사 끝내고 모처럼 여행을 왔노라 말씀드렸더니 너무 반가워하셨다. 같은 농부끼리 만나 올해 가물어서 힘들었던 일이며, 폭락했던 가을 배추값과 어떤 배추 품종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참을 대화하다 인사를 나누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끝없는 바닷 풍경에 시린 눈을 쉬기에 적당할만치 산길을 걷자 두에기 해변이 나왔다. 두에기 해수욕장은 방포나 그보다 훨씬 넓었던 꽃지해수욕장과 달리 아담한 가족해수욕장 같은 분위기였다. 겨울 바다의 멋은 꽃지나 방포가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막상 해수욕 철이라면 나는 덜 붐비는 소박하고 아담한 두에기 해수욕장을 찾을 것 같았다. 금새 두에기 해변을 벗어나 길은 다시 밧개해수욕장으로 이어졌다. 서해안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겠냐만 해안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해수욕장은 그 이름조차 기억하기가 힘들었다. 꽃지, 방포, 두에기, 밧개... 밧개해변에서 다시 긴 걸음을 걷고 우리는 다시 바닷 쪽으로 내민 야트막한 야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야산의 정점에는 목재 테라스로 꾸민 작은 전망대가 나왔다. 다리도 쉴 겸 배낭을 벗고 도인들이 유달리 많았다던 두여해변을 눈에 담고, 바닷바람은 가슴에 품었다. 남은 빵과 과일로 점심을 해결하는 중에 한 무리의 트렉커들이 전망대로 들어섰다. 해변길을 걷기 시작한지 이틀만에 첫 여행자를 만난 반가움에 먹던 밀감을 나누고 서로의 행운을 축원하며 헤어졌다.
두여해변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치 모래사장이 끝없이 이어졌다. 꽃지보다 훨씬 긴 해변을 따라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단락 지을 수 없는 해변을 따라 두여해수욕장, 안면해수욕장, 기지포해수욕장, 삼봉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이어졌다. 안내 지도를 보니 그 끝을 가르는 작은 산을 넘으면 오늘의 목적지 드르니항이 자리잡고 있었다.
10리길도 넘어보이는 모래사장을 걷고 또 걸었다. 아무런 에피소드도 돌출적인 볼거리도 예상못한 사건도 없이 그야말로 풍속도 풍향도 변하지 않고 바닷새의 울음소리조차 시계추 같이 주기적인 정물화속에 나 자신이 녹아들었다. 다리는 걸었지만 의식은 낮잠을 자는 듯 몽롱해질 즈음 멀리서 보이지 않던 작은 강이 모래사장을 끊고 우리는 발길을 돌려 해안을 잠시 벗어나 창정교라는 다리를 건너야했다.
다리를 건너 시지포로 이어지는 길은 해안 사구에 형성된 솔숲으로 이어졌다. 낙엽쌓인 모랫길과 간혹 목재 데크로 이어지는 시지포 생태 탕방로를 따라 걷는 길은 의외로 많은 트레커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가능한한 눈길을 피하며 옷깃이라도 스칠까 경계하며 멀찍이 빗겨났다. 이런 기괴한 행동을 통해 우리가 코로나19시대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했다.
해안이 끝나는 지점에서 유카가 무성한 삼봉이라는 작은 산을 비켜 ‘백사장해수욕장’에 도착하고 이내 드르니항이 건너다 보이는 백사장항의 위락지로 들어섰다. 횟집과 호텔이 즐비하고 수산물 가게들도 늘어선 백사장항에서 오랜만에 작은 무리나마 인파를 마주쳤다. 우리도 한 무리가 되어 가게들을 구경하며 숙소를 찾아 나섰고 우리의 취향과는 다른 조금은 낡은 한 모텔을 예약했다. 담배 냄새에 쩔고 어두침침한 모텔은 내가 기피하는 첫번째 숙소임에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골목을 누비다 해안에서 마을 쪽으로 좀 들어간 한적한 식당에서 짬뽕을 먹고 다시 숙소에 돌아와 한 쉼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 8시가 되었다. 배고픈 긴밤을 견뎌야하는 상황이 될까 걱정되어 다시 숙소를 나와 가까운 횟집에서 회덮밥으로 저녁을 먹으니 하루가 저물고 계획한 여정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자각이 몰려왔다. 무심한 시간은 원망하며 남은 일정을 꿈꾸며 깊고 편한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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