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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항구도시입니다.
그 항구를 따라 형성된 길과 시장에 갯내음 물씬 풍기는 오후,
여러 매체를 통해 너무나 친숙하게 된 통영의 새 명소 동피랑을 찾았습니다.
동피랑이 동쪽에 있는 벼랑을 뜻한다고 하는
서피랑과 작을 이룬 산동네입니다.
산동네가 다 그렇듯 동피랑은 가난하고 낙후된 동네,
그래서 개발의 파고가 언제라도 덮칠 수 있는
지킬 것도 없고 지킬 힘도 없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하지만 거센 개발의 파고를 막아내기 위해 지역 예술인들이
힘없는 붓을 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붓으로 포크레인을 막아낸
아름다운 마을로 거듭났습니다.
지금은 통영의 새 명소로 많은 관광갱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개발의 파고를 예술의 힘으로 이겨낸 드문 사례의 하나로
많은 예술인과 문화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 차를 세워두고,
충무김밥집이 밀집해 있는 중앙시장을 끼고 5분 정도를 걸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통영항이고, 왼쪽으로는 통영중앙시장인 해안도로인 이 길은
굳이 동피랑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걸을만한 볼거리가 있고,
풍성한 삶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전통시장의 느낌을 주는 거리입니다.

중앙시장의 끄트머리에 어시장이 있습니다.
펄펄 살아 뛰는 생선과 싱싱한 조개류 등 해물을 팔고 있는 어시장 바로 뒤가
동피랑입니다, 먼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생의 활력을
거저 얻을 수 있는 통영 어시장을 둘러보고
동피랑 보고오는 돌아오는 길에 
통영 횟거리 사고 말았습니다.
똑같은 해양도시인 고향 진해도 시싱한 횟거리를 파는 어시장이
있는데 보기에 반해서 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웃지 못할

그리 크지 않은 어시장을 10여분 둘러보고 바로 동피랑을 올랐습니다.
진입도로가 잘 구분이 안될 것 같았는데
바로 어시장 뒤편 언덕위에 벽화가 그려진 산동네가 눈에 들어오니
어렵사리 진입로를 찾을 수 이었습니다.
골골골목 누빈 흔적을 이렇게 올려봅니다.
설 연휴가 시작하는 첫날,
분비는 어시장과는 달리 동피랑 좁은 골목이
결코 좁아보이지 않을 만치 한산했습니다.
날씨마저 흐리고, 바람마저 일어
산동네 골목골목을 순례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벽화가 그려진 좁을 골목을 누비며 '작품' 하나하나를 보다 잘 보기위해
최적의 관람 지점을 찾기 위해 우왕좌왕 하다보니,
골목의 훈기가 느껴지고 언 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걷기의 힘인지 예술의 힘인지
잔뜩 어깨를 웅크리고 시작한 벽화순례는
이내 즐겁고 신나는 '소풍'으로 바뀌었습니다.
갈라진 벽을 따라 나뭇가지가 그려지고
멀뚱멀뚱 큰고기 눈깔은 멀리 통영항을 넘어 남해
난바다를 바라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을 드러다보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아기자기 하고 이쁜 벽화가 동네 가득 넘쳐났는데,
저 벽으로 둘러쌓인 집안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까,
아니면 벽화가 그려짐에 따라 삶의 느낌이 조금이라도 변하게 되었을까?"

사실 공공미술은 어려운 분야라고 합니다.
대중과 예술가의 접점에 공공작품이 놓여있지만
대중이 이를 거부하거나, 예술가가 대중의 정서를 외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설치한 공공미술작품이 대중의 반발로 철거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하지만 벽화마을 동피랑은 드물게(?)
성공적인 공공미술의 현장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사람도 넘치고 글도 넘치고, 조형물과 이미지마저 흔해 빠진,
 풍요를 넘어 존재의 낭비까지 치닫는 현대 사회에서
'돈만 있으면 되는' 엉터리 공공미술도 넘쳐납니다.
안하니만 못한 벽화를 자주 목격하게 되고,
괴기스럽다 못해 시각적 폭력을 행사하는 조형물들 역시 
도심의 거리 곳곳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벽화마을 동피랑은
동피랑의 존재 방식에 가장 적합한 양식의 공공미술로 벽화를 선택했고,
작품 하나하나 마저 심사를 통해 동피랑의 역사와 현실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들로 마을을 꾸몄다고 합니다.
다 그런 안목과 식견을 가지신 분들에 의해 오늘의 동피랑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사는 세상의 훈훈한 인정을 가슴에 가득담고 동피랑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어시장을 들러 횟거리를 사고,
이어서 환상적인 대장간 순례까지...
동피랑 갔다 온 그날 하루는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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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늦게 까지 숙소에서 놀다가 11시가 넘어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을 들러기전에
먼저 해금강을 가기위해 '바람의 언덕'이 있는 도장포로 향했습니다.
연휴가 시작되고 바람마저 불어 해금강 유람선이 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배는 연휴 뒤에나 운항을 한다고 했습니다.
몇년전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기전에 [바람의 언덕]을 들런적이 있는데
그때 역시도 명절연휴때라 유람선을 타지 못했는데
해금강 유람선은 저하고 인연이 없나봅니다.
어쩔수 없이 눌러쓴 모자마저 날릴듯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름 그대로의 '바람의 언덕'을 올라 보고 급히 내려와
바로 통영으로 향했습니다.
거제도는 바닷가만 보아왔지 한번도 재대로 내륙을 가로질러 본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거제의 중심을 가로질러 구거제대교를 통해 거제를 벗어났습니다.
 
이날 통영의 첫 목적지는 중앙동 충무김밥 거리입니다.
고속도로 휴계소 등에서 자주 먹어봐서 잘 알고 있는 [충무김밥]이지만
이전에 충무를 들러서도 결코 본토의 원조 충무김밥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아예 주요 목적지 중의 하나로 [충무김밥골목]을 정하고
사전에 [다음지도]에서 지도까지 출력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충무김밥집은 통영 여객선터미날에서
동피랑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주변 건물들도 다 마찬가지였지만
초라하다못해 조금은 구질구질한 외관에 실내 역시 좁고 어수선했습니다.
그래도 원조충무김밥을 찾는 사람이 많고 가게들이 성업중인것은
갯마을 선술집같은 작고 초라하지만 갯사람의 깊은 정감이 물씬 풍겨져 오는
바로 그 정취때문일 겁니다.

길가에 하고 많은 충무김밥집 중에 우리가 들어서 식당은 [일번지 할매충무김밥].
역시 작고 초라하고 못해, 손님용 테이블 한개, 그리고 방바닥 테이블 한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  김밥을 사서 들고 나가시는 손님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잘오셨다면서 자리를 권했습니다.
이웃 단골이시라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보다 앞서
가게 선전에 열릉 올립니다.

벽 한쪽 전면을 장식하다싶이한 메모지를 가리키며
이 식당에 들런 손님들이 남긴 감사 메모라며
우리도 나갈 때 메모 한장 남기라고 권하십니다.
따로 주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김밥을 말기 시작한 주인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대었습니다.

1인분에 4000원해서 4명 1600원 짜리 밥상이지만
해물된장국 한 냄비가 떡하니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바지락이랑, 홍합을 듬뿍 넣어 시원한 해물 된장국을
떠먹어가며, 통영 본거지에서 먹는 충무김밥은
전날 옥포에서 먹은 4만원짜리 아구찜보다 차라리 나았습니다.
성씨가 고씨인 주인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원래 충무김밥은 연안 고기잡이를 떠나는 뱃사람들이
점심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가던 음식이랍니다.
바쁜 와중에 주변에 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무우김치와 삶은오징어무침, 그리고 
따로 속을 넣지 않은 김밥은 물때를 맞춰야하는
바쁜 뱃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점심 도시락이 되었는가 봅니다.
참,  삶은 오징어 무침에는 어묵이 꼭 들어가야지만
원조 충무김밥이 된답니다.

배불리 먹고 [일번지 할매 충무김밥]집을 나서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피랑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동피랑 언덕 골목골목을 돌고 내려오니
언덕아래 이어지는 골목에 어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싱싱한 횟거리며 갖가지 해물을 담은 다라이를
끊임없이 호스를 통해 공급되는 바닷물이 질퍽하게 흐르는 
노상 좌판에 펼쳐놓고 설대목기댕 들떠있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호객외침이
펄떡이는 생선만치나 힘차게 어시장 여기저기에서 울려퍼졌습니다.
어디가 더 좋고 싸고 할 것도 없이 아무데서나 사려고 하는데
옆좌판의 눈치가 보여 이것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회거리를 3만원어치를 사니
무직하니 양도 많고, 뼈까지 매운탕용으로 얻어담은 비닐 봉투를 드니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통영에서 진해까지는 차로 2시간 정도 걸리지만,
혹시라도 명절 귀향차량으로 길이라도 막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싱싱한 횟거리를 싣고 길에서 몇시간씩 지체하는 일이 일어날까봐
노심초사 신나는 걸음으로 차로 달려갔습니다.


바쁜 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습니다.
중앙동 어시장을 나오자 마자 얼마지나지 않아
옛날 40여년전 저가 초등학교 다니기 시작할 무렵 학교가는 길에
보았던 그런 대장간이 이곳 통영거리에 아직 남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진해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등교길 한 모퉁이를 지날때마다
시뻘건 불과 연신 내려치는 망치 소리가 무섭게 다가왔던
조그마한 대장간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은 희미해 졌고,
그 뒤 고향 진해에서 대장간이라는 것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지만 
기억과 상상이 만들어낸 마음속의 대장간은 항상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장간을 생각지도 않은 통영 거리에서 만나다니
여간 감격스럽지 않았습니다.

손에든 횟거리때문에 빨리 진해로 가야된다는 생각을 잊고
바쁜 대장간 아저씨의 손놀림을 따라 나의 두눈은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어설프나마 카메라로 그 풍경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한참을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있다가
필요도 없는 호미를 한개 사게 되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을 붙들고 보나마나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을 것 같은
대장간 아저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층무공작소라는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는 농사용이 아닙니다. 
간판에는 분명 '농기구'라고 쓰여있지만
밭이 아니라 갯벌에 조개를 캐는 용으로 보였습니다.
뭐 어민들에게 농사는 바다농사 갯벌농사니깐 
'농기구'라는 호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즐거운 하루는 저물고 귀행길은 귀성차량으로 막혔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고향집에 도착했습니다.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모드에서 설날모드로
분위기가 바뀌고 저의 처신도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또 한해의 설날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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