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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름이 띠띠미란다. 그 이름에 끌려 기억하게된 띠띠미는 산수유로 유명한 마을이다. 수령이 100년에서 400년에 이르는 산수유 나무들이 밭이며 길이며 할것없이 온 동네안에 사람의 발길이 닫는 곳마다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을이름은 산수유와는 무관하게 마을의 골짜기가 문수산으로 막혀 있다고 해서 막다른 마을, 두동(斗洞)이라고도 하고, 뒷드물이라고도 하는데 발음하기 좋게 '띠디물', '띠띠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봉화문학회에서 벌써 5회째 띠띠미마을에 산수유가 만개할 때에 맞춰 시낭송회를 가져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왔지만 올해 처음으로 띠띠미마을을 찾게 되었다. 화창한 봄날 토요일 오후 지인과 아내와 함께 띠띠미 가는 길에 있는 우곡약수터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잠시나마 길을 헤메다가 산불조심 계도 중인 공무원인듯한 분의 안내를 받아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있는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 숲이 낯선 방문객을 반긴다.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고 마을의 자존심을 지켜온 '마을숲'이 남아있는 마을을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괜히 경건해진다. 마을숲이 보전되어 온 마을은 그냥 흔한 그런 마을이 아니라 왠지 더 깊은 유래와 더 넉넉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을로 다가온다. 유구한 세월동안 겪어왔을 온갖 세파와 천재지변속에서도 바로 마을숲이 있어 그 마을은 그렇게 지켜지고 이어져왔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을숲을 지나자 밭을 밀어 임시로 닦아 놓은 주차장에 수십대의 차량이 정열해있었고, 벌써 도착한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한 인사를 나누고 마을 길을 따라 산수유 꽃그늘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늦은 한파에 아직은 만개하지 못한 산수유 꽃봉우리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산수유마을 띠띠미 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산수유가 만개한 띠띠미의 모습 마저 마음에 그려졌다.  산수유나무 그늘을 찾아 걷는 한무리의 사람들의 스쳐지나기도 하고, 행사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공무원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기도하면서 이내 시낭송이 있을 마을의 끝자락의 고택에 당도했다. 


고택을 들어서는 길가에는 봉화문학회 회원의 시에  청초 이순섭님이 그린 시화판들이 놓여져 있었고, 고택의 정문에는 공무원들이 손을 맞는 문지기를 서고 있었다. 반가운 인사를 맞으며 들어선 고택마당에는 벌써 모듬북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진런히 놓여진 관람석은 텅비었지만 다행히 마당안밖에 모여든 사람들은 마당 가득놓인 좌석을 채우고도 남을만했다.


하지만 손님의 면면을 둘러보고 행사 프로그램의 구성등을 눈여겨보니 이 행사가 마을의 행사가 되지 못하는구나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마을 청년회회장님이 연세가 65세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냐마는 그래도 마을의 산수유꽃을  맞이하는 행사가 단지 마을의 옛영화를 추억하거나 이런저런 문화 예술 행사를 위한 사라져 가는 풍광을 제공하는 배경으로만 이용되는 것 같기만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을 부녀회에서 순두부와 파전을 만들어 팔고, 마을주민 한분이 조금의 농산물을 들고 나와 마을길가에서 팔고있는 모습은 볼 수 이써 그나마 다행이었다. 



식전공연이 끝나고 공식적인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고택을 나섰다. 작은 문화행사에서마저 늘어놓는 인사말 잔치가 지겹기도했고, 사실 행사 프로그램보다 '띠띠미마을'이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둘러보는 마을은 한국 농촌의 여느 마을에 비해 전통적인 마을의 풍광이 휠씬 더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에 의한 침식과 시대적 풍조에 따른 이농으로 인해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띠띠미 마을은 남루하고 무기력했다.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사라진 마을에는 노인네들의 발길마저 드물었다. 꽹한 바람이 마을길을 휩쓸고 지나가자 여기저기에 펄럭거리는 폐비닐 조각이 마을을 더욱 스산하게 했다.

 


마을을 한바뀌 둘러보고 집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 멋이 살아있는 농촌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농촌에는 불편함과 가난 때문에 사람들이 살지않게되었다. 더 이상 인적 순환이 불가능해 사그라들고 있는 마을에 도시민이 찾아들어 농촌의 향수를 느끼고 즐긴다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년에 하루 이틀있는 이런 류의 행사가 이 마을에는, 아 마을에 사는 주민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사람의 발길이 그리운 마을에 일년에 단 하루라도 외지인의 발길이 부산하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다면 그나마도 무조건 좋은 일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찬바람만 가득찬 꽹한 마을길에 아이들이 몰려다니고, 쓰러져가는 돌담위로 정겨운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먹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과한 욕심을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어떻게 마을에 새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어디서 마을 재생의 희망이 올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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