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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비나리마을에 정착한 뒤 낯설은 마을과 농사일에 적응해나가면서 다른 한편 수원과 서울을 마다않고 새로운 영농기술을 배우기위해 농업기술관련 교육을 찾아 다녔다. 어떤 작목을 할까 마음정하지도 못하고 결행한 농촌살이를 해쳐나가기위해 사과나 버섯같은 작목관련 교육을 물론 친환경농업이나 농업경영 관련한 강좌도 나름대로 열심히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교육비나 교통비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열심히 교육에 임했다. 나중에 수강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대부분의 교육참가자들이 농협이나 자치단체의 교육출장비 지원을 받고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 역시 관공서에 교육비 지원을 문의해 본 적도 있었다.
그뒤 정부지원의 다양한 마을사업을 진행하게되면서 수도없이 많은 농업 농촌관련 교육을 다니게 되었다. 나름대로 전국의 유명한 성공사례가 되는 마을들은 대부분 몇번씩 다녀오게 되었고, 농촌관광이나 도농교류사업 그리고 농경영관련 교육을 포함해 다양한 리더쉽 양성이나 마을공동체 갈등해소방안 관련한 교육까지 안 받아본 교욱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떤 강사의 특정강좌는 이런저런 교육에서 몇번씩이나 수강하기도 해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끼리 '누구누구의 무슨무슨 강좌는 이미 다 외운다'고 우스개소리를 할 정도가 되었다.
지난주에는 경기도 이천 부래미마을에서 '명소'라는 농촌사업관련 컨설팅업체가 주관하는 영농조합법인 운영실무 교육을 다녀왔다. 일정중에 그 마을의 지도자의 한분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다가 그분으로부터 악의없는 일침을 받았다. '아직도 교육받으러 다니세요?' 굳이 그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농번기에 그것도 2박3일간 진행되는 교육을 다녀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교육을 다니는가? 이것이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교육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농업관련 교육의 현장에서 그와같은 교육의 취지가 얼마나 실현되고 관철되고 있을까? 등등
사실 농촌마을 사업은 대부분의 경우 특정마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일부 언론에서 '한마을에 수십억 짜리 사업 중복 지원'등의 선정적인 타이틀을 단 기사가 속출했던 적이 있다. 이들 기사가 농촌마을사업의 낭비적인 관행을 혁파하고 바람직한 행태를 모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농업정책을 무력화시키고 농업 농촌에 정부예산이 투여되는 것 자체에 반감을 가진 친자본적 입장을 관철하기위해 제기된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와같은 비난을 자초한 원인을 농정의 관료적 행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같은 입장의 연장선에서 농업 농촌관련 교육의 난맥상을 짙어볼 수 있고, 그 점은 바로 나 자신이 왜 불필요한 교육에 반복적으로 참가하게 되는가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사는 마을은 농협 주관의 팜스테이마을이다. 또한 팜스태이마을과 동일한 내용의 당시 농림부 주관의 '녹색농촌체험마을'이기도 하다. 이들 사업관련한 예산 지원은 2억을 넘지 않았고 도농교류 관련한 시설투자와 컨설팅 등에 소요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행자부주관의 정보화마을에 선정되면서 7개리 124명의 주민이 PC를 지원받고, 관련 교육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3년전 정보화마을을 이루고 있는 7개리가 단일 권역으로 해서 총예산 69억원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선정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동일 마을에 4개의 사업이 중복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의 눈으로 볼때 팜스태이와 녹색체험마을의 사업 내용만 겹칠뿐 정보와마을 사업이나 종합개발사업의 취지와 성격은 일부 겹치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정보화마을 사업은 농산물직거래나 농촌체험객 유치가 사업의 주목적으로 잘못 정립되어 있지만 사실은 '농촌지역의 정보격차 해소'가 가장 중심적인 사업의 목적이라고 본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농촌공동체의 붕괴가 급속히 진행되는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있는 지역을 선정하여 몇개단위의 리를 한 권역으로 묶어 권역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을 찾아 실행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는 마을의 주민이다보니 각각의 사업마다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비슷한 강좌라도 마을지도자 교육, 마을주민교육, 기초과정 심화과정, 특성화과정 등에 따라 차이가 있고, 각 사업의 성격에 따라 또 조금의 차이가 있다보니 한 사업단위당 일년에 최소 두세번의 교육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요구되는 교육에 대부분 참가하고나서 연말에 정리해보니 1년간 교육받은 날짜가 무려 30일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일단은 농업인도 지속적으로 영농 기술에 등의 변화에 따른 필요한 다양한 내용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 기회가 넓혀진 것은 무조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와같이 농업인 교육의 문호를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몇가지 이유로 바람직한 흐름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먼저 마을의 현실에서 농업인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흔쾌히 참가할 수 있는 주민이 거의 없다. 그것은 그간의 부실한 교육내용의 문제이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탐구하는 자세로 농사를 지을 이유를 찾지 못한 농업인의 책임도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을사업을 주도하는 몇몇 주민이 중복적으로 교육에 참가하게 된다. 주민의 교육 참가가 마을사업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다보니 꼭 필요한 교육이 아니더라도 마을주민중에 누구라도 참가하는 것이 좋고, 결국은 마을사업을 주도적으로 하는 소수의 주민이 반복적으로 교육에 참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피교육자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 종속되어 농번기에도 교육에 불려나가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또한 근년에 들어 이런저런 농촌관련 교육 컨설팅 업체가 우후죽순 처럼 생겨났다. 그리고 대학의 농촌관련 학과에 적을 둔 교수들이 사회기여나 성과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타고 대거 마을사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들중 몇몇은 농업관련 정책 입안에 관여되 있기도 하다보니 그들의 '밥그릇'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된다. 마을사업에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중시되는 분위기는 그렇게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역시 바람직한 측면이 크지만 농업인 교육이나 마을 컨설팅 등이 이권화되면서 교육과잉과 부실교육의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새로운 사업을 선정받아 진행하려는 마을은 마을사업관련한 심사원이기도 한 교수의 강의에 무조건 많은 인원이 참가해야된다는 심적 압력을 받는다. 교육 내용이나 필요성과 무관하게 참가하게 되는 교육에서 주민들이 배우는 것은 없다.
농업인 교육관련하여 교육과잉과 낭비의 관행은 물론 뿌리깊다. 보통 년초가 되면 지자체의 농업기술센타 주관으로 영농기술교육이 군단위나 면단위로 진행된다. 고추나 수박 등을 비롯해 지역의 대표작목 중심으로 진행되는 새해 영농기술교육에는 비교적 많은 수의 주민이 참가하게된다. 하지만 이 역시 리당 몇명의 할당과 점심제공이라는 유인이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역시 농민들이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는 부실한 교육 제공자와 불성실한 피교육자 모두의 문제로 보인다.
상황이 그렇다면 개인의 바람직한 선택은 명확하다. 먼저 자신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 교육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로 교육을 마다하는 주민을 최대한 설득하여 주민들이 고루 교육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간단한 처방을 실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이 마을 사업의 성패, 농업인 자신의 존립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성과있는 교육에 참가하고, 교육을 통해 농업농촌의 새로운 비젼을 찾아나가는 일은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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