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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온천하면 그래도 뱃부가 제일 친숙한 곳이다.
물론 일본을 언제 여행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 뱃부는 단지 들어서 친숙해진
곳이기는 하지만 알고보니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뱃부의 관광객중 60%가 한국인이란다.
그러면 뱃부는 결국 한국인이 먹여살리는 도시인 셈이다.
그래서 뱃부의 밤거리를 편안하게 헤메보고 싶었지만
매서운 추위한 거센 바닷바람으로 호첼을 나선지 10분도 되기전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고,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호텔방에서
뱃부에서의 밤을 마냥 보내야만 했다.

뱃부의 아침은 아름다웠다.
여기저기 온천에서 내뿝는 수증기로 이국스런 뱃부의 아침은
노을을 닮은 붉은 아침 햇살로 더욱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뱃부 관광에 나섰다.
제일 번저 도착한 곳은 가마도 지옥!
지옥이 웬 말인가 싶었더니 그냥 온천을 地獄이라고 했단다.
아주 옛날부터 온천주위에 정착한 사람들은 
땅속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고, 뜨거운 물이 솟는 현상이
신비스럽다기보다는 거의 공포스러웠을게 틀림이 없다.
그러다보니 온천이라는 온화한 이름보다는 
그냥 지옥이라는 이름이 훨씬더 그네들의 공포심을 잘 표현해주는 명칭이었을 법하다.
그러다보니 아직도 많은 온천이 **온천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가마도 지옥은 넓지 않은 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온천이 공존하는 특이한 곳이었다.
색깔이 다른 온천들이 산재하고, 식음용 온천, 얼굴에 김을 쪼이는 온천, 
100도가 넘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온천.
그리고 족탕 온천까지 짧은 시간에 다양한 온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순전히 온천의 열만으로 삶은 계란을 먹으며 족탕을 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일행들은 벌써 버스에 올라있었다. 
 
뱃부에서의 일정은 가마도지옥 관람이 전부였다.
아직 고속도로 통행금지는 풀리지 않았고,
갈길은 먼데다 또 연수일정으로 우키하마을 방문과
미치노에끼 탐방이 있었다.
그리고 후쿠오카까지 가서 짐을 풀어야되는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경에 묻힌 우키하시의 모습이 아름답다.
산과 들과 도시가 조화로운 아름다운 삶의 터전으로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인구 약 3만 4천의 이상적 모습으로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우키하시를 지나는 국도변에 대규모 농산물 직판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른바 "미치노에끼"(みちのえき, 道の驛)라는 일본 농산물 직거래를 이끄는 대표적인
시설인데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계소 정도 규모로 전국 국도 변에 약 500여개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우키하마을에서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미치노에끼는 초기 사업비 8억엔중 농민이 3.3억엔을 출자하고
나머지는 정부지원으로 제3섹터를 구성하고 이렇게 구성된 제3섹터가 주축이 되어
운영한다고 한다. 우키하미치노에끼에는 인근의 농민이 자발적으로 농산물을
위탁해서 팔수 있는데 온산물의 질과 안전성 등은 자체 검사를 통해
통과된 경우만 참여가 허용되고 이후 반복적으로 잘못이 드러날 경우
퇴출된다고 했다.
미치노에끼의 연매출은 약 7억엔으로 고객의 90%는 현내주민이고
약 10%정도가 외지인 고객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구석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농산물 판매장을 지어놓고 성과가 적다고
실패한 사업이다 어쩐다면서 농업예산자체를 줄일려고만하는
우리 현실과 비교가 되었다.
 
우키하 미치노에끼를 둘러보고 기념품도 구입하고 하는 사이
이날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우키하마을로 우리를 안내할
공무원인 키구키상이 마중을 나오셨다.
키구키상이 모는 승용차를 따라 우리가 탄 버스는 점차 산속으로,
계곡속으로 접어들었다. 도저히 버스가 지나다닐수 없을 것 같은 길인데도 
계속해서 들어가다 보니 계곡을 따라 논들이 보이고 농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곡의 중간쯤되는 곳에 버스가 섰고 그때부터 한 10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일종의 마을 커뮤니티센타였는데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원래는 마을 다랭이 논의 정상부까지 올라가서 동네 풍경도 보고, 
다랭이논 농사에 대한 현장설명도 들을 예정이었지만
심한 경사길에 눈까지 쌓여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우리 일행이 식사를 하는 동안 담당공무원인 키구키상이 식사도 거른채
혼자 걸으서 도로사정을 확인하고 와서 알려준 것이었다.
또 한번 일본 공무원의 그 철저한 서비스정신에 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연수 내내 한번도 즐겁지 않은 식사가 없었지만
이날 우키하에서 받은 식사도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좋은 기분에 모처럼 일본청주 2병을 무려 1800엔을 주고 쏘았는데,
일행인 동윤씨 하는 말 "오래살다보니 송형이 사는 술도 다 먹어보네'란다.
이런~ 돈쓰고 놀림받고 ㅋㅋ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옆방에서 키구키상으로부터 우키하 마을사업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농업 여건이 열악한 다랭이 논을 그냥 방치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고 상품화하여 다른 평지 논에서 생산되는 쌀보다 약 25%비싸게 판매도 하고, 논두렁에 핀 피아나 꽃을 홍보해서 히간바라순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어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경제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한 마을로 이끈 우키하마을의 사례는 참으로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번 연수증 가장 진솔하고 성실한 강의가 아니었나 생각되었는데, 특히 마을의 자원을 결합해 상품화한다는 '곳단자이론'과 '풍경 10년, 경관 100년, 풍토 1000년'이라는 모토는 한 인간이 지역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하는 가치를 생각케해보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내 살고 가면 그뿐인 것이 아니라 1000년가는 풍토까지 생각하며 살아야한다는 이들의 의식은 거창한 역사의식을 들먹이지 않드라도 충분히 공감가는 바가 많았다. 
물론 35농가중 이제 5농가 정도만 남아 다랭이 논 농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씁한 뒷맛을 남겼고, 마을 주민을 누구도 만나보지 못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었던 점은 참으로 아쉬웠다.  


우키하시를 벗어나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곧장 우리의 첫 출발지였던 후쿠오카로 향했다.
후쿠오카를 향해 달리는 2시간 내내 비로서 일본의 산천과 도시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 관광지나 산속 마을이 아니라 들판과 도시 그리고 산이 적당히 어우려져 형성된 삶의 터전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오후 늦게 후쿠오카에 도착했지만 저녁 식사시간은 멀었고, 또 일행중 몇몇분이 산골짜기가 아니라 도시관광도 좀 하자는 요구를 하기도해 버스는 캐녈시티라는 후쿠오카 최대의 도심 복합쇼핑센타에 도착했다. 모두들 산속마을만 돌아다니다가 모처럼 복잡한 도심에 부려지니 어리둥절하니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았다. 일행중 여자2분만 신이나 쇼핑센타를 돌아다니신것 같고 나머지 남자분들은 사실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번잡한 도시가 더 나은지 별로 불만스런 표정은 아니었다.
이어서 텐진거리와 텐진 지하상가를 구경하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가진 이름은 잊어버린 '고기부페'집으로 향했다. 성대한 저녁을 먹고 술까지 한잔씩 걸친 일행은 흐쿳한 표정으로 숙소인  후쿠오카 역앞의 미야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어서 호텔 뒷편 거리의 한 술집에서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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