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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2C(봉화, 영양, 영월, 청송)라고 불리는 경북과 강원도의 지자체가 시군간 공동사업의 하나로 '외씨버선길'을 만든다. 주관을 (사) 경북북부연구원이란 곳에서 맡았고, 그 산하에 일종의 '사업단'을 지난 7월 1일자로 발족시켰단다. 이 사업과 관련하여 봉화군민의 한사람으로 지난 5월 제주 올레길 연수에 이어 이번 지리산둘레길 벤치마킹을 다녀왔다. 하지만 두번의 연수를 통해서도  안타깝게도 '외씨버선길'의 성공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다. 그 이유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번의 연수를 통해서도 외씨버선길의 실체에 대해 별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구절에 나오는 '외씨버선'으로 BY2C를 대표하는 걷기길의 이름으로 삼는다는 것과 이 지역의 문화적 자연적 자원을 통합한 '생태관광길'을 만든다는 것과 이미 일부 예산은 내려와 있고, 3년간 총 100억이 투자될 거라는 사실이 내가 아는 '외씨버선길'에 대한 전부다.

2009년 이웃과 떠난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의 마을길걷기

아직은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드는 생각이지만  두번의 연수를 통해 만난 올레길과 둘레길의 사례와 '외씨버선길'은 거의 완전히 서로 대척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치를 찾아 길을 기획하고, 그 가치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 가장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는 길이 올레길과 둘레길이라면 외씨버선길은 어쩌면 가장 개발주의적이고 토목주의적인 사업방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씨버선길'은 길의 실체보다 예산이 먼저 확보된 성과주의적이고  예산따먹기식 사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관과 관변단체가 토목주의적 사업 방식으로 추진하는  '걷기 길 만들기'는 사실 형용모순이다. '걷기길'을 만드는 과정이 바로 그와같은 토목주의,  개발만능주의의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의 모색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몰각한 걷기길 만들기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걷기길은 길의 원초적 폭력성을 극복하고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는 생명의 길, 순환의 길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은 단지 물리적 공간에 놓여있는 길이 아니다. 흙바닥위에 길이 놓이기 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더불어 나눌 가치가 확보되고,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정신의 길, 마음의 길이 먼저 형성되었다. 그와같은 과정없이 뜬금없이 '예산'만으로 만들어지는 길은 말이 '걷기길'이지 기존의 '도로'에 다르지 않다.  '외씨버선길' 만들기에 다리를 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토목공사적 마인드로 접근할 경우 그 결말은 말할 필요도 없이 비극적일 것이다.

그래서 '길의 가치, 길의 정당성에 대한 지역주민의 승인과정이 있는가?' 는 물음은 길을 만드는 과정 끝까지 되풀이 해서 묻고 또 물어야하는 '주문'이다. 그 과정을 무시한 대표적 사업이 바로 MB의 4대강폭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4대강 사업의 비극적 종말을 예견한다.  외씨버선길은 그와 같은 오류을 피해야한다. 시작부터 잘못끼워진 단추라면 다시 풀어 처음부터 다시꿰거나 덜 궨 아랫단추부터라도 재대로 궤어야 한다. 안동의 퇴계예던길의 사례가 바로 지역주민과의 공감없는 사업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멀리보면,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나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이 천년넘어 이어지고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다리를 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토목공사적 마인드로 '걷기길'을 만들어 봤자 끝내 실패하고 말 이유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걷기길은 순례길이고, 치료의 길이고, 화해와 소통의 길이다. 단순화하면 길은 문화고 가치다.

외씨버선길'의 앞날이 순탄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외씨버선길' 정신의 부재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의 정신이 무엇인지 제시하라고 누군가 요구한다면 버벅거릴 수 밖에 없겠지만 '올레주의' '지리산주의'라고 해도 좋을 그 나름의 독특한 가치가 있고 철학이 있다. 그런데 '외씨버선길'은 나름의 고유한 '정신'이나 '가치' 나아가 테마 자체가 없거나 너무나 미약하다. 조지훈이 인지도가 높은 시인이고, 승무가 그의 대표적인 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2% 부족함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외씨버선길' 만들기를 반대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걷기는 시대의 트랜드를 넘어 인간 삶의 필수행위의 하나로 자리잡을지 모른다. 따라서 '외씨버선길'이 단지 올레길이나 둘레길보다 늦게 시작해서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어떻게 외씨버선길을 만들면 좋을까? 앞으로 마을길을 걸으며 수없이 곱씹고 고민해야할 것이다.
단지 현 사업단이 운영되는 3년의 사업기간이 사업의 완성이 아니라 외씨버선길의 초석을 닦는 기간이어야한다는 것과 더불어 '외씨버선길'을 만드는 과정이 단기적 프로젝트의 성공사례나 중안중부예산 따오기의 성공사례가 아니라 수백년을 이어질 명품길을 만든 사례가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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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초에 감자밭에서 풀을 메다가 전화를 받았다. BY2C(봉화, 영양, 영양, 영월, 청송)의 지자체간 협력사업으로 추진중인 '외씨버선길' 추진 사업단에서 지난 봄 제주 올레길에 이어 지리산 둘레길 벤치마킹을 떠난단다. 처진 밭일을 어떻게든 마무리해야한다는 당위와 '지리산'이 발하는 강력한 유혹사이에서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나의 자제력은 오래가지 않았고 동행을 약속하고 배낭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사업단의 일원이 아니라 봉화군의 주민으로서 봉화군청 공무원4명과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간 '외씨버선길'사업의 추진 과정을 간접적으로 넘겨다 보면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부정적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지리산'을  공짜(!)로 갈 수 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동행의 이유가 충분했다.


7월 15일 오전 9시 30분 안동 상공회의소 마당에 스무명 남짓의 일행이 모였다. 이내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고 3시간만인 오후 1시경 88고속도로 지리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지리산 자락이 지나가는  남원시 인월면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외씨버선길' 사업을 주관하는 경북북부연구원관계자와 이번 연수를 주관하는 한국생산성본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남원의 특산물인 붕어를 주재료로 만들 '어탕'으로 거뜬한 점심을 들고 식당에서 멀지 않은 '지리산길 안내센타'를 들러 이번 연수의 첫프로그램인 사단법인 숲길의 이상윤 상임이사의 특강을 들었다.  


안내센타는 아직 충분한 안내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보였고, 안내 책자나 여타 지리산길 안내 건텐츠가 구비되어 있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운치를 가진 공간이었다. 산림청의 국유림관리사무소로 사용되던 공간을 사단법인 숲길에서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늘 붐비는데 비해 근무직원도 적고 편의 시설도 부족했다. 하지만 걷는 길을 찾아 오신 분들은 이미 불편함을 감수할 심리적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이라고 본다면  시설의 부족은 별반 문제될것이 없고 단지 안내 시스템의 개선이나 컨텐츠의 확보는 필요해 보였다.


숲질 이상윤 이사의 특강은 인상적이었다. 강사의 외모가 주는 인상부터  '지리산길'이 담고 있는 가치를 체현하고 있는듯, 소박하고 관행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차림의 강사는 강의 스타일 역시 범상하지 않았다. 5분강의 후 질문과 답변으로 채우기로 했던 특강은 강사의 강의가 표명했던 것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충분한 질의 응답시간을 가지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지리산둘레길'의 가치가 어떻게 사업과정에서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었는지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지향하는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구현하고자하는 사람이 있은 연후에 물리적 공간에서 지리산길이 태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실제 외씨버선길 사업을 추진할 주체에게 들려주는 것 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강연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인월안내센타를 나선 일행은 다리를 건너 안내센타앞 하천을 따라 (사)숲길에서 나오신 두분의 '길동무'와 같이 '지리산둘레길'순례를 시작했다.  큰 산아래 큰물이 지고, 큰 하천이 생겨난다고 지리산 아래 오랜 세월 물살에 씻긴 바위가 아름답게 강바닥을 이루고 있는 인월천은 넉넉한 품모를 가지고 있었다. 큰물이 진 흔적을  담고 있고 언제라도 다시 큰물이 지나가도 좋을 넉넉한 인월천을 따라 지리산 둘레길은 '중군리'로, 황매암과 수성재로, 그리고 배너미재를 넘어 첫날의 기착지인 장항마을로 이어졌다.     






길을 걸으며 '길'이 무엇인지, 길을 왜 걷는지 끊임없이 곱씹어 생각했다. 길을 걷는 것은 욕망을 가라앉혀 마음을 쉬게하고 다리를 놀려 몸을 다스리는 수양이자 구도의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날의 걸음은 '새길을 만들기 위한 벤치마킹'이라는 목적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탓인지 끝없이 길에 대해 고민으로 채워졌다. '길은 삶의 흔적'이고, 삶의 흔적은 원초적으로 폭력적이기에 어쩌면 길은 인간의 폭력성의 흔적인지도 모른다는 강사의 문제제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걷기길'을 만들고, 또 걷는가? '현대 과학기술에 의한 극대화된 폭력(도로)을 인간의 원시적 건강성에 기댄 작은  폭력(걷기길)으로 치유한다'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걷기길의 가치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의 복원을 통해 무너져가는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데에 있다. 마을과 마을의 소통, 농촌과 도시와의 교류, 주민과 주민간의, 주민과 도시민간의 소통이 가져올 활력이 기대되는 그런 길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등산로나 도시주변의 산책길, 관광지의 일반적인 관광코스와 다른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리 단순한거 같지 않다. 과연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마을이 둘레길을 찾는 발길이 늘어남으로써 활력을 찾고 공동체성이 강화되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하는 물음에 긍정적 답변을  바로 내어놓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마을방문객이 늘고 민박수요가 늘어나면서 마을내 긴장과 갈등이 늘고 마을의 풍광마저 변해버릴 위험에 노출되는 예들을 무수히 보아왔기에  드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길을 통한 이익없이 마을을 길가에 내어놓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를 전면에 내세워 '걷기 길'을 만들고 관광상품화에 성공한다고 그 길이 지역주민의 삶에, 마을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인가 확신할 수 없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또 길은 길대로 이어져 우리의 걸음은 계속되었다.  잠마철에 걷는 산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무더운 날씨에 숲속가득한 습기속을 걷자마자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일행중 두어명이 더위에 지쳐 빈혈을 일으켜 잠시 긴장하가도 하고 걸음이 지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넉넉한 지리산의 품속을 거닐며 한껏 산기운을 들이마시며 두눈 가득 산하로 채우고 있는 시간은 행복했다.  


이날의 걸음은 짐을 풀고 휴식과 잠을 청할 '장항마을'에서 끝이 났다. 마을 이장님의 배정에 따라 일행은 각자의 민박집으로 흩어지고 마을은 이내 산그늘속으로 둘어갔다. 어둠이 마을을 덮고 멀리 개짖는 소리를 느끼며 빠져드는 잠은 행복했다. 걷기가 주는 육체적 피로감조차 길이주는 축복 임을 절감하며 나의 지리산길과의 첫 날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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