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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팔자가 있다고?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류준화의 작품 [경계에 피는 꽃]이 5월5일 문을 연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걸렸다. 

그러고보니 이 작품은 다른 어떤 공간도 아닌

바로 그 공간을 위해 그려진 작품같다.

시간적 선후를 뛰어넘는 어떤 연이 있었을까?

내가 작가라면 2012년에 열릴 공간을 위해

2007년에 미리 그렸다고 우기고 싶다.

[경계에 피는 꽃]은 먼저 태어났지만 애시당초

미래에 올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위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2007년 학고재에서 연 개인전 [소녀야화]에 출품한 작품이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그림을  보고 갖고 싶었다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가정에 걸기에는 걸맞지 않은 그림 크기때문에 고민하시다가

때맞춰 개관하게 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자신의 이름으로 이 그림을 기증하시게 되었다.

그 분은 작가로 부터 그림을 사는 행위를 통해 그림을 한번 가지게 되었지만,

다시 의미있는 공간에 그림을 기증함으로써 사적인 소유를 넘어 공적인 공간에서

진정한 그림의 주인이 되었다.

 

경계에 피는 [꽃]은 꽃이면서 피다.

선지피 뚝뚝 흘러 마른 자국에 피어난 꽃이다.

아직 아물지 못한 칼자국에서 뚝뚝 흘러나오는 핏덩어리다.

붉은 물감이 흘러 마르고,

다시 겹겹히 칠해져 이루어진 얼룩이 꽃이 되었다. 

 

붉은 꽃이 만발한 호수, 피빛 꽃밭을 헤치고 

무명치마저고리 조선의 소녀는 조각배를 저어 나온다.

소녀가 입은 무명치마저고리는 단정하지만

붉은 꽃은 모두 소녀가 흘린 핏자국이다.

피빛 하늘은 그녀가 겪은 공포와 고통,

그녀가 토한 신음과 울음,

그녀가 가슴에 품은 한과 울분이다. 

 

그녀가 감내해야했던 지옥의 시간은

조국의 독립을 통해 끝나지 않았고,

그녀가 입은 깊은 상처는

선진조국 건설을 통해 치유되지 못했다.

야만의 역사는 그녀의 피를 원했지만,

모두가 야만의 역사가 끝났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때

세상은 그녀를 잊었다.

 

하지만 이제 소녀는 담대한 표정으로 경계를 넘는다.

눈물자욱조차 없는  말쑥한 얼굴로

그녀는 손수 노를 저어 경계밖으로 나오고 있다.

아직 세상은 그녀를 두려워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향해 항변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단지 세상이 자신과 함께 이 시대의 경계를 넘어

평화의 땅으로 나아가기를

꿈꿀뿐이다.

 

 

 

경계에 피는 꽃 / 류준화 / 면천에 석회 아크릭 채색, 콘테 / 162*130cm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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