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밖나들이/투발루야 기다려!

지극히 사적인 투발루 출장 보고서(2/3)

허재비 2023. 7. 2. 22:49
반응형

3. 투발루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투발루를 향해, 중간 기착지인 피지로 들어가는 날 아침, 호텔 인근의 거리식당에서 버거로 아침을 때웠다. 여행객들이나 출근길 손님이 주요 고객인 듯 아침부터 손님이 많았는데, 반갑게도 가게는 젊은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고 남는 오전 시간에 "로열 보태닉 가든"을 산책하고 조금 일찍 시드니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을 하고 Airside에 들어서 점심을 해결했다. 시간이 남아 면세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 전광판에는 오직 우리 비행기만 보딩 시간이 뜨지 않았다. 피지항공 부스에 들러 보딩 지연에 따른 30달러의 보상 쿠폰까지 받아 스넥과 음료를 마시고 놀다가 오후 시간을 다 보내 뒤에야 겨우 피지의 난디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난디행 피지항공은 편안했고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일정을 챙기다 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나 난디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난디에서 바로 수바행 비행기를 타야지 다음날 아침 투발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이미 수바행 비행편의 출발 시간을 넘겨버린 것이다. 항공사측과 지루한 공방 끝에 난디에서 자고 새벽 비행기로 수바로 이동, 투발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덕분에 우리 일행 등 2~30명의 승객은 난디공항에서 버스로 20여분을 달려 "Double Tree Resort"라는 고급 리조트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짐을 풀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리조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하는 것도 이국적이었고, 리조트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불라라고 외치며 환대해 주던 이벤트도 인상적이었다. 피곤한 몸이지만 나도 모르게 같이 활짝 웃으며 불라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고급리조트에서 자정넘어 저녁을 먹고 새벽 430분에 다시 공항을 향해야하는 짧은 일정이 불만스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혼자 자기에 그리고 고작 3시간만 눈을 붙이고 나오기에는 너무 아쉬운 리조트였다. 새벽에 난디를 출발한 72인승 프로펠라 비행기는 걱정과는 달리 우리를 편안히 수바에 내려 놓았다. 수바 공항에는 우리보다 몇일 앞서 출장와 끼리바시 ODA사업관련 업무를 미리 보고 피지에 도착한 5명의 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강한 모습에 서로 반가운 마음을 나누기도 잠간 투발루행 비행기가 결항이라는 소식이 전해왔다. 연료 수급에 문제가 생겨 투발루행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고, 다음 비행기는 3일뒤에나 있으니 표를 바꾸고 미리 체크인을 하면 그 비행편은 꼭 태워주겠다는 것이었다. 선택지가 없으니 수용할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수바에서 억지로 3일을 머물게 되었다.

공항에서 숙소인 노보텔 수바 라미 베이를 향해 가는 길에 한국인이 하는 식당(The Grace Road Kitchen)에서 점심을 먹고, 유심을 갈고 아래층에 있는 마트에서 간단한 음료 등을 샀다. 일행이 늘어나다 보니 유심을 가는 데만도 시간이 한참을 지체하고 숙소에 들러 양말 등 간단한 빨레를 하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저녁은 호텔에서 10분여 거리에 있는 한식당인 Korea House Restaurant 에서 성대히 가졌다.

62일 금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나머지 일행들은 피지 현지 업체와 미팅이 잡혀 다 나가고 우리 일행 4명만 피지 현지 명예수산관을 만나 한국선원묘지를 참배하고, 한인회 회장단을 만나 피지 한인사회의 소식과 한국정부에 바라는 기대 등에 대해 청취하고, 오후에는 한국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님이 태도국회의가 있는 부산으로 출장을 떠나 있어 참사관을 만나 교민사회의 고민을 공유하고 끼리바시와 투발루 ODA사업 관련한 협력과 지원을 요청했다. 수바에 있는 대사관은 피지를 포함한 5개의 남태평양 소국의 통합 대사관 역할을 하고 있어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수바거리에 K-POP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도 보이고, 대사관 건물에는 한국영화제를 알리는 포스트를 볼 수 있는 듯 다양한 활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 시간에 호텔 로비에서 호텔을 지키는 경비원과 안내인 등이 공식 공연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며 노래를 불렀다. 맥주 한잔에 흥이 올라 같이 박수를 치며 흥얼대면서 수바의 밤을 만끽했다. 행복했다.

63일 토요일 새벽 일찍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서니 7시였다. Suba Nausori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보딩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번 출장 때 투발루 정부와 협상을 이끌었던 직원이 갑자기 투발루인으로 보이는 분에게 달려갔다. 둘은 끌어 안고 반갑게 서로 이사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다음아닌 이번 출장시 협의할 업무 책임자이신 Kitiona Tausi 투발루 수산통산부장관님이셨다. 부산에서 열린 태평양도서국 포럼 참석으로 이번 출장시 면담을 잡을 수 없었는데 우리가 수바에서 비행기 결항으로 일정이 늘어지면서 부산 출장으로 마치고 귀국하던 장관을 투발루로 들어가는 수바 공항에서 조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사는 참 알 수 없다. 새옹지마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비행기 결항덕분에 갑자기 협상의 격이 높아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4. 모든 것이 늘 상상이상인 투발루

투발루 수산해양부 장관 부부와 차관과 함께 72인승 프로펠라 비행기를 3시간 30분 달려 드디어 투발루 상공에 도착했다. 산호로 이루어진 환으로 이루어진 육지와 그 육지로 둘러쌓인 라군 그리고 육지 밖의 남태평양이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풍광이 시야 가득 다가왔다. 사진에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바라다 보는 감동을 가득 안고 비행기는 푸나푸티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를 내려 투발루 땅을 밟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나를 감쌌다. 순간 견디기 힘든 더위를 느꼈지만 이내 편안해지며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소문대로 공항에 연접한 휴게소 같은 곳에는 막 도착한 우리 일행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주민들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세상과 단절된 무료한 작은 섬나라에서 외부의 물문과 소식을 싣고 오는 비행기는 확실한 구경거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를 찍는 사람들을 우리도 같이 사진을 찍으며 함박웃음 지어 보이고 손을 흔들었다.

공항에 들어서자 마자 영국기술자문 Michael Batty 씨가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인사를 나누고 공항 인근의 통신사에 들어가 유심을 교환했는데 16명의 유심교환에 족히 한시간을 넘게 시간이 지체되었다. 어렵게 유심을 갈고 걸어서 바로 인근의 푸나푸티 라군 호텔에 짐을 풀었다. 짐을 풀자마자 한국에서 공수해온 햇반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가볍게 투발루 도착 첫날의 과업을 수행했다. 각 그룹별로 흩어져 그룹별 과업수행을 위한 현지 방문을 수행하고 우리나라가 몇 년 전에 지원했지만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제빙기와 훈연기가 있는 수산청 건물옆 수산물 가공공장을 방문했다. 직원이 없어 설비실을 들어갈 수 없어 한참을 사람을 찾고 난리를 치룬 뒤에 해맑은 청년의 도움으로 기계에 접근이 가능했고, 동행한 기술자가 문제해결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사이 나는 해변을 걷고 태양을 보고 라군을 누렸다. 기술자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은 뒤 우리 일행은 같이 차를 타0여분 달려고우리가 있는 투발루에서 제일 큰 섬인 퐁가페일의 북단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남태평양과 라군에 물드는 석양을 황홀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64일은 일요일이다 보니 정부 관계자와 실무 협의를 진행할 수 없어 제빙기 기술자는 어제 하던 과업을 계속 수행했고, 나머지 인원은 영국인 기술고문과 함께 사업이 시행될 각 사이트와 하역을 위한 부두, 하역장 등을 두루 살펴봤다. 향후 500명 이상의 하객을 모시고 착공식을 진행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투발루의 전반적인 삶의 여건, 상품, 물류 등 행사나 이후 공사 진행과정에서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의 공급과 보관 등의 조건도 알아보고 이후 진행될 공사의 인부 숙소문제까지 전반적인 상황을 기술고문의 안내로 두루 둘러볼 수 있었다. 이날 제일 큰 성과는 확실한 행사장을 발견한 것이다. 최대 1000명은 유치 가능할 정도의 실내 공간이 정부종합 청사 인근에 지어져 있었다. 이후 협의 과정에서 확인해봐야겠지만 일단 공항 등 실외에서 행사를 하게 되면 천막 등 비 대비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야하는 걸 피할 수 있어 무척 다행스러웠다.

일요일이라고 레스토랑도 운영하지 않는 호텔이지만 리셉션에 근무자가 있고, 맥주 등 음료는 판매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우리는 로비와 접한 식당공간에서 컵라면과 햇반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리셉션 근무자와 친숙해 지면서 투발루에 대해 좀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일고 우선은 간단한 투발루어 인사말에 대해서 묻고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리셉션 근무하시는 분을 통해 배운 인사말은 쉽게 입에 익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찬자리에서 마누이아를 외치고 투발루를 떠나면서 호텔과 공항에서 토파를 외칠 수 있었다. [ 파카탈로파 아투=안녕하십니까(간단하게 TALOPA = Hello), 마누이카=행운을 빈다=건배,   FAKAFETAI = Thank you, AU KO SEE = Sorry, TOFA = Farewell ]

하루가 저물 무렵 몇몇 일행과 함께 바다로 나가 해지는 투발루 라군을 바라다 보았다. 내 생애 참 많은 석양을 보았지만 40년전 해상기지 지원을 마치고 해지는 바다를 바라다보며 진해로 돌아오며 보았던 석양과 몇 년전 지금은 돌아가신 장모님을 모시고 우리식구 다 같이 갈치낚시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해지는 목포 앞바다를 가로질러 갈치 잡이를 나갈 때 보았던 석양과 함께 평생 기억에서 지우지 못할 3번째 석양을 투발루에서 맞이할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10시부터 투발루 정부 측과 실무 협의가 있어 각 팀별로 아침부터 서둘기 시작했다. 사업에 대해 브리핑하기로 한 팀은 밤새 프로젝트 파일을 수정하고 브리핑 문안을 가다듬고 또 연습을 한다고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호텔에서 청사까지 5분 정도 달려 도착하니 투발루 정부측 인사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이내 수산청장을 중심으로 수산통상부 차관이 참석한 협의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시간은 예상외로 길어졌다. 중간에 다과가 나오고 브레이크 타임도 가지며 점심시간을 넘기며 협의가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우리 쪽 준비는 깔끔해서 진행에 무리가 없었고, 투발루 측도 몇몇 추가적인 요구를 제안하기는 했지만 비용 등 여러 가지 불가능한 조건들을 설명하면 이내 수긍해 주었지만 워낙 세세한 사안들이 많다보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특이 사항은 차관과 수산청장은 이전에 협의된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착공식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협의의 중요 사안중의 하나는 10월 예정된 현지 착공식 행사의 성격과 규모 등에 대한 완전한 합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의를 통해 그 사안에 대한 인식차이를 좁히고 사업 수행을 위한 부두사용, 공사를 위한 부대 부지 사용, 기자재 관세 부과 그리고 인허가 진행 등과 관련해 전적인 편의를 제공받기로 합의 하는 등 예상한 것보다 훨씬 훌륭한 협의 결과를 얻고 회의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투발루 출장의 하이라이트는 이날 저녁에 이루어졌다. 수산통상부장관 내외와 차관 그리고 수산청장을 비롯한 수산청 주요 인사를 호텔로 초대해 만찬을 진행했는데 이날이 하필 나의 61번째 생일날이었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는데 이미 동행한 직원들은 내 몰래 이벤트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한참 만찬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갑자기 호텔 직원들이 케이크를 날아오고 저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자 갑자기 수산통상부장광내외가 투발루측 인사를 모두 앞으로 불러내어 축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생애 가장 화려한 생일 파티를 이국 투발루에서 그것도 수산통상부 장관 내외를 비롯한 현지인들의 축가를 들으며 맞이하다니 더없이 행복하다는 말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66일 화요일 아침 10시에 어제 진행된 협의문에 대해 이상 없음을 상호 확인하고 확약서를 교환하는 작은 식을 가진 뒤 바로 출국을 위해 푸나푸티 공항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수산청장이 조개목걸이를 우리쪽 15명의 인사들 한분 한분께 선물로 걸어주었고, 공항에 도착하니 영국인 기술고문이 또 다시 같은 선물을 우리들 목에 걸어주었는데, 마지막으로 수산통상부 장관이 직접 공항에 마중을 나와 우리 모두에게 다시 조개껍질 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주며 우리의 전도를 축복해주셨다. 무려 3개의 목걸이를 목에 걸치니 발길이 무거워져 쉬 투발루를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후 1시경 비행기는 투발루 푸나푸티 공항을 이륙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