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이 전하는 생명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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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너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필자 폴 너스는 효모 연구를 통해 세포 증식이 어떻게 제어되는 지 연구한 성과로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유전학자면서 자신의 연구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고민한 특별한 사람이다.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기반으로 시야를 넓혀, 당대까지의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대중적 과학서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과학이라는 전문 지식과 대중의 상식을 잇는데 성공한 모범적 사례의 하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 가능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특히나 고등학교시절 공부한 [생물] 교과의 내용조차 기억에서 사라진 인문사회학을 전공했던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 책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생명현상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통찰을 토대로 일반인의 수준에서 이해 가능하도록 서술하고 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과학적 지식이지만 다행히 수식이나 화학식 같은 걸림돌도 없고, 섣부른 해석이나 비약없이 최대한 간결하고 담백하게 과학적 사실에 충실하게 서술되어 있다. 흔히 생명의 근원을 따지다 보면 궁극에는 애매모호한 생기론이나 신비주의적 해석에 봉착하기 쉬운데 이 책 어디에도 그런 비과학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지만 어떻게 보면 책을 보는 재미가 덜한 이유일 수도 있다.
과학자로서 세상에 임하는 필자 폴 너스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서술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지만 궁극의 의문은 생명현상에 관한 것임을 고백한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방대하고, 우리의 경외심을 일으키지만, 그 드넓은 우주의 여기 한구석에서 번성하고 있는 생명이야말로 우주의 가장 매혹적이면서 수수께끼 같은 부분에 속한다.”(p.13)
그런 입장은 그의 연구 인생 전체를 관통하고 주로 효모의 생명현상 연구를 통해 그보다 훨씬 복잡한 인간의 생명현상을 이해하는데 까지 밀고 나간다. 그 과정을 통해 폴 너스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세포, 유전자,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화학으로서의 생명, 정보로서의 생명이라는 다섯가지 키워드를 매개로 천착해 들어간다.
그에 따르면 세포이야기는 1665년 로버트 훅에게서 시작된다고 한다. 이후 많은 과학자에 의해 ‘모든 세포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 이라는 이해에 도달하고 나아가 생명의 최소단위인 세포의 연구를 통해 보다 복잡한 생명체의 생명현상을 이해해 나갈수 있다는 입장에 도달한다.
우리가 아는 세포는 활동한다. 즉 움직이고 환경에 반응할 수 있고, 세포의 내용물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세포는 이미 존재하는 세포의 분열을 통해서만 생겨난다. 세포분열은 모든 생물의 성장과 발단의 토대이다. 사실 이 이상의 생명현상은 없다.
이와같은 생명현상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세포라는 존재의 핵심에는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를 이루는 DNA deoxyribonucleic acid는 세포와 전체 생물이 성장하고 유지하고 번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DNA는 A, T, G, C라는 염기의 쌍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염기배열의 순서가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
한 유전자가 약 22,000개의 DNA를 가지고 있고 유전자의 염기 배열에 변이가 생기면 유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선택이 개입한다. 유전자 변이가 초래하는 개체의 변화는 자연선택을 통해서만 승계되기 때문이다.
‘화학으로서의 생명’의 장은 파스퇴르가 말한 ‘화학반응은 세포의 생명의 한 표현이다’는 언명에서 시작한다. 모든 생물의 세포내에서는 수천가지 화학반응이 동시에 일어난다. 분자들을 분해하고, 세포 성분을 순화시키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의 생명활동은 온전히 화학반응이고 이것을 대사metabolism라고 한다. 즉 대사는 생명의 화학이다. 라부에지에는 200여년 전에 발효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묻기 시작한 이래로, 생물학자들은 세포와 다세포 몸의 복잡한 행동조차도 화학과 물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왔다. 궁극적으로 생명은 비교적 단순하면서 잘 이해된 화학적 인력과 척력의 법칙, 분자 결합의 형성과 파괴로부터 출현한다.
생명 개체는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취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관리해야한다. 이 점에서 ‘정보로서의 생명’ 개념이 성립한다. 정보에 기반한 목적 행동은 생명을 정의하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살아 있는 계가 전체로서 작동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정보가 생명을 이해라는 열쇠임을 말해주는 사례는 유전자 조절이다. 우리의 콩팥, 피부, 뇌에 있는 세포들은 모두 동일하게 2만2천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유전자 조절은 콩팥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유전자가 배아의 콩팥세포에서 “켜지고”, 피부나 뇌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유전자들은 “꺼진다”고 한다. 그리고 세포는 생명의 기본단위이고, 생명을 정보라고 보는 관점에 함축된 의미는 세포 너머로까지 확장된다.
폴 너스는 다섯가지 키워드로 생명을 규명한 뒤 생물학의 지식이 세계를 바꾸는데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피력하기 위해 한 장을 할애한다. 먼저 코로나 상황에서 과학의 검증을 통해 산출한 백신에 대해 증거없이 안정성이나 효과를 의도적으로 비하하는 것을 범죄로 단죄한다. 그리고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경계를 하면서도 헌팅턴 병이나 낭성섬유중 같은 유전병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줄만치 안전해지 날이 올 것임을 천명한다. 그리고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GM식품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피력하는데 GMO관련 논쟁이 오해, 로비, 잘못된 정보로 인해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고발한다. 현단계에서 동의할 수 없지만 GMO에 대해 과학적 지식은 전무하고 정서적 거부감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토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장에서 폴 너스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포괄적인 답을 제시한다. 이전 표준적 이해였던 생물이 운동, 호흡, 감각, 성장, 번식, 배설, 영양이라는 특징을 가진다는 정의는 생물이 어떤 일을 하는가를 요약해 줄뿐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진 않는다고 보고 필자 고유의 정의를 제시한다.
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화하는 능력은 필자가 생명을 정의하기 위해 이용할 첫 번째 원리이다. 생명은 진화하려면 번식해야하고, 유전체계를 지녀야하며, 그 유전체계는 다양성을 드러내야한다. 두 번째 원리는 생명체가 경계를 지닌 물리적 실체라는 것이다. 자신의 환경과 분리되어 있지만 그 환경과 소통을 한다. 이 원리는 세포라는 개념으로부터 유도된다. 세 번째 윈리는 실체가 화학적, 무리적, 정보적 기계라는 것이다. 그 결과 살아있는 실체는 목적을 지닌 전체로서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생명은 하나의 전체론적인 연결망으로 이어져 있기에 이 상호연결성은 생명의 핵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과학이 도달한 생명에 대한 이해는 겨우 겉핥기 수준에 불과하고 수십억개의 누런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여 추상적 사고, 자의식, 우리의 자유의지처럼 보이는 것을 생성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보적인 발걸음을 겨우 땐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도 필자는 인문학과 과학이 공통의 언어를 만들고, 접점을 넓혀나간다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된 화학적, 정보적 체계로서의 우리를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될 임을 천명한다. 또한 우리가 생명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수록 인류의 삶을 개선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단언한다.
책을 덮으며 오랫동안 나의 뇌리를 맴돌 두가지 명제를 떠 올린다.
“현재 지구에 있는 생명은 단 한번만 시작되었다”
“생명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