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의 “콩트와 실증주의 인식론의 기초”, [현대철학의 모험]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
<참고문헌>
[서양철학사] 램프레이트, 을유문화사
콩트는 19세기의 과학적 성과를 철학적 사고의 토대로 끌어들였다. 그는 생시몽으로부터 인류 문명의 진보에 대한 확신을 얻고, 스스로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과학적 지식의 엄밀성과 확실성에 대한 확신에 이르렀다. 콩트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확신에서 기반해 실증 가능한 것만을 철학의 영역, 학문의 영역에 남기고 실증 불가능한 지식들, 비과학적 인식론을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들’로 팽개쳐 버렸다.
그는 인류의 사고 단계를 3단계로 나누고, 신학적 단계와, 형이상학적 단계를 이어 과학적 단계로 불렀다. 신학적 단계는 미지의 세계를 인격적 정서에 의해 설명하고, 가상적 공상적으로 이해한다. 형이상학적 단계는 인격적 힘을 이용한 세계 이해에서 벗어나 경험적 현상을 넘어 선 ‘본질’이나 ‘실체’ 등과 같은 추상적인 술어로 세계를 설명한다. 과학적 인식의 단계에 접어들면 현상을 실증적인 소여로 받아들이고 이 현상들의 상호관계를 탐구하여 일반화하는 데로 나아간다. 그와 같이 분류한 인류의 사고 단계를 바로 인류 문화의 발전 단계로 등치 시키면서, 콩트는 자신이 살아가던 당대를 <과학적-실증적 단계>로 이해한다. 그리고 ‘과학적 사고’를 가장 뒤떨어진 영역인 인류의 도덕적, 정치적, 종교적 방면에까지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과학을 사회학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사회물리학” 즉 사회과학을 정립하는 사상적 성과를 낳기도 했다. 이후 사랑하던 ‘보오부인’과의 사별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 개인의 정감활동이 이성의 힘의 지배를 벗어남을 깨닫고 이를 제어하기 위한 교육, 종교적 훈육에 골몰하게 되고 급기야는 <인류교>라는 종교의 창시에 이르게 된다.
그의 주요한 철학적 성과는
콩트의 실증주의는 ‘실학’으로 볼 수 있으며, 상대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실증주의의 상대성은 ‘세계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라는 ‘통일과학’의 이념을 부정하고 과학에서의 다원주의를 인정한다는 데 있다. 그 점에서 실증주의는 과학주의와 차이가 있는데 과학주의가 과학이론은 모두 ‘경험적 명제’로 구성된다는 입장과 모든 학문이 자연과학으로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가진 반면 실증주의는 현실성, 유용성, 확실성, 정확성, 유기적 상대성 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또한 콩트는 과학에서 수학의 역할을 높이사지만 모든 과학지식의 수학화는 인정하지 않는다. 실증주의는 수학적 형식화를 과학의 보편토대로 보지 않고 개별과학의 고유성, 상대성을 인정한다.
나아가 실증주의는 과학을 합리적 허구로 본다. 과학은 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고, 그 연구 과정에서 가설을 도입하나 가설은 수학적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수학은 추상적 허구적 성격을 가지며, 실험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과학은 허구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허구지만 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실증주의가 과학지식은 역사적, 상호주관적, 집체적 동의를 통해 정립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에 대한 상대주의와 역사성의 인정은 지식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부여한다.
콩트는 인식의 추상적인 발생근거 자체보다는 인간의 앎, 지식의 성립 근거를 있는 그대로 탐구했다. 그 과정에서 콩트는 철학의 토대는 인식론이라고 보고 인식론은 과학의 성찰을 통해 구성하고, 과학의 성찰은 과학의 역사에 관한 성찰이라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다. 이를 통해 공상적인 통일성을 부여하는 철학체계를 거부하고, 철학적 주장이 과학의 성과와 모순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핵심 개념>
실증
연역과 종합의 통일
경험과 법칙의 대등화
과학의 상대성
수학의 허구성
<문제제기>
1. 실증적 방법과 과학적 방법의 차이는 무엇일까?
콩트는 과학적 방법을 절대화하는 과학주의를 배격하면서 상대주의적 입장의 실증주의를 피력한다. 실증주의가 학문 영역간 방법론의 상대주의를 인정하지만 과학주의를 배격한다고해서 과학적 방법에 대한 신뢰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실증주의는 과학적으로 검증가능한 것만 인식의 대상으로 제한하며 모든 형이상학적 인식론을 배격한다는 측면에서 과학적 방법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낸다. 나는 어디까지가 형이상학적 방법이고 어디부터 과학적 방법인지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겠다.
2. 실증가능한 것의 범주는 어디까지 일까?
콩트는 물리적 세계를 포함해, 사회적, 정신적 현상까지 실증 가능한 영역으로 보았다. 그가 시큐러리스트(비종교적 도덕주이자)인 점을 보면 신학을 거부한 것으로 보이는데 예술영역까지도 실증적 인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검증(실증) 가능한 것의 영역을 그렇게 넓게 잡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3. ‘경험’의 모호성, 주어진 ‘소여’의 불확실성을 제기하는 다양한 논지에 대해 실증주의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철학은 주어진 경험의 주관적 성격과 모호성, 나의 감성적 인식의 불활실성, 일반화된 지식의 오류가능성 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된 인간 사고의 흔적이다. 그와 같은 인식비판의 기초를 외면하고 곧바로 주어진 소여, 경험, 과학적 검증 가능성이라는 지평으로 철학적 인식론을 한정하는 것은 ‘실용적’ 태도인지 몰라도 인간의 궁극적인 철학적 물음에 대해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실증할 수 없는 많은 것들 - 생명의 신비와 죽음, 영적 경험과 예술적 환타지, 그리고 당장 이렇게 봄비 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우울…- 바로 이것들이야 말로 인간이 철학하는 이유가 아닐까? 과학조차 끝내 건드리지 못한 미지의 영역와 끊임없이 생성되는 신비가 넘쳐나는 세계내 존재인 인간은 항상 주어진 경험 그 이상의 것을 탐구하려는 경향을 가지며 그와 같은 이유로 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고 존속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면에서는 칸트의 인식비판으로부터 후퇴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앞으로 더 공부가 필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